[꼬꼬무 찐리뷰] 불길 뛰어들어 구한다더니…양양 일가족 방화범의 충격적 실체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4일 방송된 '크리스마스의 악몽'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개그우먼 엄지윤, 배우 윤태영, 래퍼 치타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크리스마스의 악몽
때는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강원도 양양의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아주 자그마한 성당이 하나 있어. 성당 안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어. 신부님 앞에는 3명의 어린이가 서 있었어. 오늘은 세례성사날이야. 그날 '요셉, 마리아, 야곱'이라는 세례명을 받은 세 아이는 친남매 사이야.
이건 그 아이들의 가족사진이야. 엄마 박미연(가명) 씨와 아빠, 11살 첫째 어진이, 9살 다은이, 6살 막내 우진이까지. 사랑스러워 보이는 가족이지?
가족들은 3년 전에 이 마을로 이사 왔어. 초등학교 전교생이 6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야. 처음에 이 가족이 이사 왔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다둥이 가족을 환영했어. 특히 막내 우진이가 예쁨을 많이 받았어. 당시 이 가족과 같이 성당을 다녔던 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게.
"막내는 완전히 밤톨같이 너무 귀여웠어요. 너무 잘 웃어서 보기만 해도 예쁜 애. 어디 가기만 해도 해피바이러스 같은 애였어요. 미연 씨 가족 때문에 저희도 행복했고, 우리 공동체도 되게 좋았어요. (미연 씨가) 학부모회도 열심히 했거든요. 그중에 핵심은 그 사람이었어요. 애가 셋이 있고 힘들게 시골에 왔고, 우리가 조금만 같이 해줘도 이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
-민영숙(가명), 성당 지인
영숙 씨는 미연 씨와 같은 성당을 다녔고, 같은 학교 학부모이기도 했어. 엄마들끼리 밴드를 만들어 활동도 했대. 작은 학교다 보니 다들 엄청 친했어. 삼 남매의 엄마 미연 씨는 굉장히 밝고 선한 사람이었대.
우진이네는 24일 이브와 25일 성탄 미사, 심지어 28일 일요일 미사에도 참석했어. 그날 영숙 씨는 다음 주 미사에서 만나자며 미연 씨와 헤어졌어. 그런데, 그다음 날인 12월 29일. 영숙 씨에게 평생 잊지 못할 밤이 찾아와.
"늦은 시간에 학부모 중 한 명한테 들은 거예요. '거기에 화재 사고가 났다더라, 그게 어진이 엄마 집인 거 같다'라고… '살아만 있어라' 이런 마음으로 간 것 같아요.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화재 현장) 보고 오열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살아만 있어라' 이런 마음으로 간 거죠. 그렇게까지 다 탔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던 거예요. 근데 갔더니 이렇게 다 덮어 놨더라고요. 시신들을 빼서 (천으로) 덮어 놨더라고요."
-민영숙(가명), 성당 지인
"어젯밤 강원도 양양의 2층 주택에서 불이 났습니다. 화재로 어머니와 어린 세 자녀 등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中
착하고 사랑스러웠던 네 식구가 모두 세상을 떠난 거야. 장남 어진이와 막내 우진이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어. 자그마한 몸에 화재 흔적이 아주 심하게 남아 있었대. 엄마 미연 씨, 둘째 다은이는 발견 당시에는 숨이 붙어있었지만, 병원 이송 후에 결국 숨을 거뒀어. 고작 6살, 9살, 11살이었던 아이들. 그리고 엄마 미연 씨도 당시 겨우 39살이었어.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미연 님은 몸이 하얗게 창백했던 얼굴이 기억나고 막내 우진이는 조그맣고 단단한 고구마가 까맣게 탄 것처럼 몸이… 그 모습 그대로 탔더라고요. 누워있는 그 모습이… "
-민영숙(가명), 성당 지인
근데, 삼 남매의 아빠는 어디 갔을까? 아빠는 무사했어. 사실 아빠는 당시 가족과 같이 살지 않았거든.
▲ 의문의 화재 사건
불이 난 우진이네 집 구조야. 불이 난 시각은 2014년 12월 29일 밤 9시 30분경. 엄마와 둘째 딸은 작은방에서, 막내 우진이는 부엌 옆에서, 그리고 어진이는 소파 앞에서 시신이 발견됐어.
그런데 이걸 봤을 때, 시신들이 발견된 위치가 너무 이상해. 불이 났는데 출입문 쪽이 아닌 방에 그대로 있었다는 게.
"웅크린 자세도 아니고 그냥 누워있어요. 어떤 출구를 찾아 돌아다니는 형태가 아니었어요."
-김진범, 당시 출동 소방관
집에 불이 났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탈출하려고 애를 썼겠지? 그런데 우진이네 가족들은 탈출하려고 애쓴 흔적이 없어. 이건, 살해를 당한 것일 수도,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할 것일 수도 있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 다만 한 가지, 이건 절대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니라는 거야.
우진이네는 건물 2층에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어. 1층은 공실이었대. 그날 밤 9시 30분경, 동네 사람들이 두 번의 폭발음을 들었어.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보니, 유리창이 깨져 족히 4~5미터는 날아갔고, 안방 창틀은 아예 통째로 튕겨 나간 상태였어. 깨진 창문으로 불길이 활활 치솟는 중이야.
밤 9시 38분, 119로 신고가 접수되고, 5분 만에 소방차가 도착해. 집에 들어가 보니, 집 안은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있고, 쓰러져 있는 네 가족을 발견해. 집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영숙 씨는 온몸이 벌벌 떨려. 주민들 모두가 걱정과 공포에 사로잡혔어.
같이 밴드 활동을 했던 진희언니란 분은, 심지어 불길 안으로 뛰어들어가려고 했어. 미연 씨네랑 가장 친한 사이였거든. 사람들은 진희언니를 간신히 뜯어말렸어. 화재 현장은 눈물바다야. 까맣게 그을린 네 가족이 병원으로 이송되고도 불길은 쉽게 잡히지 않았어. 결국 1시간 반 뒤에야 불은 완전히 꺼졌어.
대체 어쩌다 이렇게 큰 불이 난 걸까. 화재의 원인을 밝혀야지. 당시 양양에는 경찰서가 없어서, 속초 경찰서 형사들이 출동했어. 그중에 이재혁 형사도 있었어. 이 형사는 수많은 강력사건을 접했지만, 이 사건만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대.
"범죄 행위가 어마어마하다 보니까 평생 기억에 남는 사건이죠. (피의자를) 체포, 검거하고 나중에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제가 사람을 대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아 본 게 처음이었어요. 악마구나. 그냥 악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재혁, 사건 담당 형사
단순 화재가 아닌 이 사건에는 한 인물이 등장해. 강력반 형사가 '악마'라고 부르는 그 인물. 그게 과연 누굴까.
▲ 아빠가 수상하다?
최초 신고자가 폭발음을 들었다고 하니, 처음에 경찰은 LPG 가스폭발을 화재 원인으로 의심했어. 하지만 확인해 보니 가스통은 멀쩡해. 전열기구나 전기 쪽에 문제가 있나 확인해 보니, 그것도 아니었어. 과학수사반은 현장 감식에 들어갔고, 형사들은 주변 탐문을 시작했어.
미연 씨네 가족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이상한 징후는 없었는지 물었어. 동네 사람들은 미연 씨에 대해 한결같이 얘기했어.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답답할 정도로 순박했다"고. 그리고 좀 딱한 사정도 있었어. 남편이랑 같이 안 살았다는 것. 처음엔 남편이 좀 왔다 갔다 하더니 요샌 통 안 보였대.
미연 씨 부부는 양양에 이사를 올 때부터 부부 사이가 좀 삐걱거렸는데, 1년 전에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사이가 더 멀어졌대. 남편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온몸에 철심을 박고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거든. 남편은 횡성 시댁에서 요양을 하고, 미연 씨 홀로 삼 남매를 키워왔어. 식당 알바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면서. 항상 씩씩해 보였던 미연 씨는 제일 친했던 진희언니한테는 힘든 속내를 조금씩 털어놨대. 너무 힘들어서 이혼할 결심을 하고 있다고.
형사들이 그렇게 탐문을 다니던 그때, 이 형사한테 전화가 걸려왔어. 화재 원인이 나왔는데, 휘발유래. 안방, TV 앞, 장남 어진이가 누워있던 전기장판 아래에서 휘발유 성분이 검출됐어. 그런데 진짜 소름 돋는 건, 장남 어진이 몸에서 물결무늬의 화상 흔적이 발견됐다는 거야. 화상이 물결무늬로 남는 건, 몸에 인화성 물질을 직접 뿌렸을 때야.
누군가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는 건, 이 사건이 방화 살인이라는 거야. 먼저 경찰은 원한 관계가 있었는지 조사했어. 미연 씨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날 집에 다녀간 사람은 없었는지. 그렇게 탐문 조사를 이어가는데, 어디서 이런 말이 튀어나와.
"그 사람이 다녀갔대, 그리고 나서 불이 났대."
"나도 들었어. 웬일인지 그날 오랜만에 왔다 갔다더라고."
사람들이 수군대던 그 사람은, 세 아이의 아빠이자 미연 씨의 남편. 가족들 중 유일하게 화재 현장에 없었던 아빠 이 씨야.
"떨어져 살던 남편이 사건 당일 집을 다녀갔단 얘기를 들었어요. 같이 살지 않는 남편이 왔다 갔다? 어떻게 된 건지 사실을 파악하게 된 거죠. 남편은 강원도 횡성에 있었어요. 횡성에서 출발해서 피해자 가족들이 있는 집에 들렀다가 몸이 아프다 보니까 친남동생이랑 같이 왔었어요. 그래서 수사 방향이 남편한테 쏠렸었어요."
-이재혁 형사
확인해 보니 그날 진짜 남편이 다녀갔어. 그리고 아이들과 속초에 있는 마트로 가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줬어.
"수사를 하면서 CCTV를 보고 다 확인을 했는데, 애들 아빠가 그때 크리스마스 직후여서 애들 선물을 사주려고 대형마트에 애들을 데리고 갔는데. 막내가 조그만 장난감을 사고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던 게,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최철민, 사건 담당 형사
경찰은 아빠 이 씨와 동생에게 연락한 후, 가족들이 있는 병원으로 오게 했어. 그리고 그날 양양 집에서 몇 시에 떠났고, 그 이후에 뭘 했는지 물었어. 범인으로 의심하는 것에 어이없어하며, 아빠 이 씨의 동생은 "그날 양양에서는 오후 5시쯤 떠났고, 강릉 숙소에 도착해서 계속 거기에 있었다"고 답했어.
경찰은 또 아빠 이 씨의 몸수색을 요청했어. 형사가 몸수색을 하려 한 건, 휘발유로 방화할 경우 방화범에게도 흔적이 남기 때문이야. 손이나 얼굴에 화상을 입거나, 하다못해 솜털 하나라도 그슬리기 마련이야.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경찰을 따라가. 그리고 속옷만 남긴 채 옷을 모두 벗었어. 그런데 깨끗해. 아무것도 안 나와.
아빠 이 씨의 당일 CCTV 기록을 확인해 보면, 그날 이 씨는 오후 2시 58분 양양에서 속초로 가고, 오후 4시 22분에 속초에서 다시 양양으로 와. 그리고 5시 29분 양양에서 강릉으로 갔어. 동생의 진술과 일치해. CCTV와 통신기록을 다 확인해 봤더니, 아빠 이 씨는 화재가 일어난 그 시각 강릉에 머물렀던 알리바이가 입증돼. 그렇게 아빠 이 씨는 용의점을 벗었어.
아빠 이 씨의 입장에선,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었는데 오히려 그 가족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은 상황이야. 얼마나 억울하고 기가 막히겠어. '꼬꼬무'가 그 삼 남매의 아빠를, 직접 만나봤어.
"밤이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동생이 전화를 받고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형 지금 나랑 잠깐 어디 좀 가자' 해서 차에 탔는데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좀 다친 것 같다고… 병원에서 기억나는 게, 간호사 분이 오셔 가지고 첫째하고 셋째가 마저 응급실로 왔는데 '보고 놀라지 말라고' 해서 갔더니, 아이들이 새까맣더라고요… 그리곤 기억나는 게 없어요. 지금은 이해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 셋하고 와이프를 한 번에 잃었는데, 경찰서에 앉아서 조사를 받는 게. 속옷만 입고 사진을 찍는 게,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힘들고.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조리 있게 설명이 안 되네요…"
-이숭희, 삼 남매 아빠
아빠 이숭희 씨는 오랜 고민 끝에 '꼬꼬무' 인터뷰에 응하셨어. 그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너무 고통스럽지만, 이 이야기를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셨대.
▲ 엄마가 수상하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어. 아빠의 혐의는 벗겨졌으니, 새로운 용의자로 초점이 맞춰져. 경찰도 차마 조사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야. 두 번째 가능성, 엄마 미연 씨였어. 혹시나 신변을 비관한 엄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 않겠나, 한 거야. 일단, 애들 아빠부터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어.
"집사람은 마음이 굉장히 약하고요. 모질지 못한 성격이라서 그렇게 계획을 세우거나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사람이고요. 그리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그렇게 한다는 건 더군다나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이숭희, 삼 남매 아빠
생활고? 넉넉하진 않아도 생계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어. 주변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친정 식구들도 있었어. 그리고 사건 당일에 친정 집에서 김치도 몇 통 얻어왔고, 화재 3시간 전에는 친정 엄마한테 전화해서 김치를 잘 먹겠다고 연락도 했어.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극단적인 선택의 가능성이 있을까?
그런데 다른 증언을 하는 사람도 있어. "가족들은 잘 몰랐을 거다. 저한테 휘발유를 어디서 구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라는 꽤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어.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엄마의 잘못된 선택일 가능성도 생겨.
이런 와중에, 국과수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어. 바로 '부검 결과'. 부검에서 네 가족 모두 공통점이 나왔어.
"화재사. 기도, 기관지 '매' 부착"
'매'는 그을음 매(煤)야. 네 가족의 기관지에서 그을음이 발견됐다는 거야. 불이 났을 때, 숨을 쉬고 있었다, 즉 살아있었다는 뜻이지. 그럼, 살아있었던 사람들이 왜 불이 났는데 탈출하지 못했을까? 그 답도, 부검 결과에서 밝혀져. 네 식구 몸에서 '졸피뎀'이 나왔어.
졸피뎀은 불면증 치료에 사용되고, 먹으면 수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 이 약은, 향정신성의약품이라 의사의 처방 없이 구입은 불가능해. 그런데 미연 씨는 처방을 받은 기록이 없어.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네 가족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불을 질렀단 거지.
그럼, 네 명한테 어떻게 수면제를 먹였을까? 비밀은, 맥주와 소다맛 음료수였어.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이 물건들에서 전부 졸피뎀이 발견됐어. 맥주는 엄마 미연 씨가 마신 거 같고, 아이들은 음료수를 마신 거 같아. 어린애들이 있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 최소 면식범이거나, 굉장히 친밀하고 가까운 사람일 거야.
경찰은 양양, 속초, 강릉까지 돌며 졸피뎀을 구입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재혁 형사는 놓친 게 있는지, 수첩을 보며 다시 생각해. 그러다 문뜩, 궁금증이 생겨. 처음에 남편을 의심한 이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동네 소문 때문에. 그리고 오랜만에 집에 왔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정작, 성당 지인이나 친정 식구들 중에서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어. 그럼 동네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안 걸까?
▲ 소문의 출처, 가장 친했던 언니
이 형사는 그 소문의 출처를 따라가 보기로 했어. 그렇게 소문을 차근차근 따라가 보니, 소문의 끝에 한 사람이 등장했어.
진희언니. 미연 씨와 같은 학교 학부모이자 엄마 밴드 멤버. 누구보다 네 식구를 챙겼던 절친. 경찰한테 미연 씨의 우울증을 진술했던 사람. 그리고 화재 당일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까무러친 그 여자. 41세 이진희(가명) 씨야.
하지만 아직 섣부른 단정을 할 수 없어. 진희언니는 그 동네에서 평판이 최고였어.
"좋은 사람이었죠. 누군가를 배려하고 도와주고. (이진희의) 아이 중에 한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었어요. 그런 아이를 돌보고 있었단 걸 우리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민영숙(가명), 성당 지인
경찰은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진희언니를 불렀어. 그날 애들 아빠가 온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미연 씨가 알려줘서 알았대. 확인해 보니, 미연 씨가 메시지를 보내 알려준 게 맞아. 불이 난 시각에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니, 혼자 바람을 쐬러 하조대 해수욕장에 갔었대.
그런데 이 진희언니라는 사람, 의심하기가 좀 미안해. 가장 크게 상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거든. 미연 씨네 장례식장에서 너무 울어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었어. 아빠 숭희 씨를 누구보다 위로한 사람도 진희언니였어. 그런데 그렇게 위로하다가, 어떤 날은 또 이상한 행동을 해. 친정 식구들과 같이 울고 있다가, 아빠 숭희 씨를 째려봐. 막 경기를 일으키며 뒤로 쓰러졌다는 거야.
진희언니, 계속 말이 바뀌고 있어. 휘발유 이야기를 하며 애들 엄마가 저지른 일인 거 같다고 했다가, 또 언제는 아빠가 의심스럽다고 해. 그런데 진희언니한테서 더욱 수상한 점이 발견됐어. 아까 그 휘발유 진술이 생각해 보니 좀 이상했어.
"전날 제가 확인한 게, '휘발유에 의한 화재'로 감식 결과를 받았거든요. 근데 화재가 난 건 누구나 알 수 있는데, 그 화재가 휘발유로 인해 난 건지 다른 이유로 난 건지는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갑자기 그다음 날 (피해자가) 자살한 것 같다고 하면서 '휘발유를 어디서 구입했는지…' 라며 (이진희가) 휘발유 이야기를 꺼냈었거든요. 화재 원인이 휘발유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인데 이분은 그걸 추정하고 화재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휘발유를 뿌려서 자살한 걸로 저한테 이야기를 해서 상당히 의심이 갔던 부분이었어요."
-이재혁 형사
휘발유 검출이 발표되기 전에 진희언니가 먼저 휘발유 얘기를 꺼냈다는 거야. 경찰은 의심스러운 진희언니의 사건 당일 행적을 파헤치기 시작해.
▲ 드러나는 진실
먼저 사건 당일인 12월 29일 오전 8시 50분. 진희언니는 강릉으로 향해. 병원에 갔다가 아들 휠체어 때문에 의료기 매장에 들렀대. 확인해 보니 병원에 간 것과 의료기 매장에 간 게 맞았어. 하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게 있었어. 바로, 그 병원에서 뭘 했는지야.
12월 29일 이진희의 병원 처방전을 보면, 졸피뎀 성분의 약이 포함돼 있어. 공교롭게도 사건 당일 이진희는 졸피뎀을 처방받았어. 그것도 무려 28알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확실한 증거는 될 수 없어. 이진희가 불면증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이 약을 먹고 있었거든.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
"사건과 전혀 상관이 없으면 숨기거나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직접 구체적으로 그날 행적에 대해서 몇 시간에 걸쳐서 진술을 확보하고. 그리고 나서 그 행적에 대해서 저희가 CCTV를 다 확인했어요."
-이재혁 형사
먼저 그녀의 아파트 CCTV야. 오전 9시 20분경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나서. 오후 2시 10분경 강릉 한 병원의 약국에 도착해.
"강릉 ㅇㅇ 병원에서 진료받고, 그곳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다녀오고. 그리고 사건 당일 강릉에 있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하는 걸 저희가 CCTV로 다 확인했어요."
-이재혁 형사
그날 오후 3시 20분경 이진희가 강릉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 1.8L를 구입한 걸 확인했어.
"'휘발유 좀 살 수 있어요?' 하더라고요. '얼만큼요?' 하니까 조금만 쓴다고 하더라고요."
-주유소 직원
오후 3시 42분쯤에는 주문진 인근 마트에 들러 음료와 맥주를 구입했어.
"이진희가 마트에서 산 음료수와 범행 현장에 있던 음료수가 동일. 일치하는 제조번호로 확인 됐고요."
-이재혁 형사
그리고 오후 6시 13분 이진희는 거주 아파트로 돌아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며 태연하게 얼굴을 단정하기도 해. 그 후에 다시 집을 떠난 이진희.
"다른 곳에서 혼자 바다를 보고 있었다고 했었는데, 확인해 보니까 치킨을 사서 피해자 집으로 가요. 범행 현장을 갔다가 나왔다고 하고, 이런 부분이 한두 개면 의심하게 되는데, 3개, 4개, 5개, 6개, 10개 이렇게 되면. 범인으로 확정이 되는 거죠."
-이재혁 형사
그런데, 아직도 놀라긴 일러. 유족들도 주민들도 심지어 경찰들도, 이런 장면은 처음 본대.
화재 당일 오후 9시 44분, 현장 부근 초등학교 앞에서 찍힌 장면이야.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가 있고, 그 뒤를 쫓는 차량 한 대가 있어.
"나중에 확인해 보니 어떻게 된 거냐면, 이진희가 피해자의 집에 가서 범행 이후에 차를 끌고 나와서 바로 유턴을 해요."
-이재혁 형사
이진희는 미연 씨네 집에 불을 내고 도망친 게 아니야.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시동을 끈 채 대기하고 있던 거야. 거기가 마을로 진입하는 길목이거든. 그렇게 몰래 상황을 지켜보다가, 소방차가 지나가자 그 뒤를 쫓아서 다시 현장을 찾은 거야. 왜? 목격자인 척을 해야 하니까. 네 가족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하는 목격자.
"자기가 불을 지펴서 방화하고, 소방관들이 진화할 때 '사람 있다' 그러고 들어가려고 울부짖고.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었죠."
-이재혁 형사
사건이 발생한 그날부터, 모든 것이 이진희의 연극이었어.
▲ 잔혹한 연극
증거가 확보됐으니 경찰은 이진희를 체포하기 위해 그녀가 살던 아파트로 달려가. 그런데, 가보니 차가 안 보여. 집에도 없고. 긴급하게 차량 수배를 내렸어. 이진희가 강원도를 벗어나 서울로 간 게 확인돼.
"확인해 보니 서울에 있는 병원에 아들을 데리고 갔더라고요. 그래서 급히 서울로 올라가서 강남역 부근에서 이진희를 체포하게 됐어요."
-이재혁 형사
사건 발생 열흘 만인 2015년 1월 8일에 이진희는 서울에서 긴급 체포됐어.
이진희는 처음에 혐의를 부인했어. 하지만 하나씩 증거를 들이밀자, 그제야 범행을 시인해. 근데 그날 술 마시다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다고, 미연 씨가 장애가 있는 자기 아들을 비하해서 우발적으로 그랬다는 거야. 근데 우발적인 범행이라기엔 준비한 게 너무 많지. 맥주와 음료수, 수면제, 휘발유. 이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리고 조사해 보니, 이진희는 사건 당일인 12월 29일뿐만 아니라, 3일 전엔 26일에도 휘발유를 구입했어. 이진희는 "그때 한 번 샀다가 마음이 약해져서 버렸다"라고 말해. 근데 휘발유를 사서 무언가 하려는 자체가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잖아? 그래서 뭔가 더 자세히 질문하려고 하면, 이진희는 바닥에 막 쓰러지고 혼절하기도 해.
"어디 아픈 줄 알았는데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땐 특별한 증상은 없었어요. 추측하건대 자기의 방어 본능이었던 것 같아요."
-이재혁 형사
도대체 범행 동기는 뭐였을까? 답은 의외의 장소에 있었어. 불타버리는 집 안에서 몇 안 되는 멀쩡한 곳에 그 답이 있었대. 신발장이었어. 무슨 일인지 신발장이 자물쇠로 잠겨있었어. 뜯어봤더니, 이런 게 나와.
피해자 미연 씨가 이진희에게 돈을 빌려줬다는 일종의 차용증이야. 금액은 1,800만원. 매달 이자와 원금을 상환하기로 했지만, 처음 석 달을 제외하고는 돈을 갚지 않았어. 경찰이 이 차용증을 들이밀자, 그제야 돈 문제로 미연 씨 가족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해. 1,800만원 때문에 네 사람을,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죽인 거야.
미연 씨는 당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어. 돈이 필요하니, 이진희에게 돈을 갚으라 했겠지. 하지만 이진희는 듣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계획을 준비해. 미연 씨의 남편이 다녀간다는 말을 듣고, 미뤄놨던 범행을 결심한 거야.
이진희는 미연 씨한테 애들 좋아하는 치킨을 사갈 테니 술 한잔 하자고 말해. 그리고 미연 씨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한 손엔 아이들에게 줄 과자와 음료수를, 다른 한 손엔 휘발유를 들고서. 휘발유가 든 봉지는 집 앞에 두고 들어갔대. 맛있게 치킨을 먹는 아이들을 보며, 수면제를 탄 음료를 내밀어. 그리고 고작 몇 분 만에 잠들었을 가족들은, 그렇게 화마에 휩싸였어.
부검 당시 미연 씨의 발바닥에는 그을음과 재가 잔뜩 묻어있었대. 탈출을 못할 정도로 수면제에 취한 상태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둘째 딸을 데리고 작은 방으로 피신했던 거 같아. 거실엔 두 아들이 화마에 휩싸여있고. 엄마는 자기 목숨보다도 귀했던 천사 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점점 의식을 잃었을 거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가족은 물론 주변인들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미연 씨와 이진희 두 사람 모두와 친분이 있던 민영숙 씨는 충격과 함께 죄책감이 함께 몰려왔대. 게다가 미연 씨한테 이사를 권유한 적도 있거든.
"이사 권유 이야기를 한 거 자체를 제가 몇 년 동안 후회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씨한테 빌려준 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그냥 있었으면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겠다. 내가 잘하고자 했던 말이 그런 사건의 디딤돌이 될 줄 몰랐죠. 그때부터 어디다 대놓고 울 수가 없죠. 그 사람(피해자)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은 다 마음이 안 좋으니까.. 저녁에 해가 지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민영숙(가명), 성당 지인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 또 다른 화재 사건
경찰은 이번 범행에 또 다른 공범은 없었는지 조사했어. 이진희의 통화 기록을 살펴보는데, 사건 전후로 유독 자주 통화한 사람이 있어. 강릉에 사는 장 씨라는 남자야. 이 남자를 경찰이 추적해 보니, 장 씨는 병원에 입원 중이야. 왜? 화상을 입어서. 이 남자 집에도 불이 났거든.
"(단순) 화재로 신고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본인은 죽을 뻔하다 보니 병원에 입원했었고. 저는 당시 수사관의 입장이다 보니까 '다른 게 있겠구나' 의심했었죠."
-이재혁 형사
강릉 화재 사건 조사 기록에서 사진이 찍힌 날짜를 보면, 2014년 12월 26일이야. 이진희가 휘발유를 샀다가 범행을 포기하고 버렸다는 그날이야.
"2014년 12월 26일 거주자 장규식(가명)은 최초 도착 구급대에 의해 현관문 앞에서 만취 상태로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발견되어 외부로 대피 및 병원에 이송되었으며…"
-강릉 화재 사건 조사서 中
강릉 화재 시각은 오후 3시였어. 대낮에 왜 장 씨는 만취해 있었을까? 화재 직전, 장 씨의 집에도 방문객이 있었어. 바로 이진희. 장 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어.
"이진희가 학생일 때부터 제가 버스 운전을 했기 때문에 어린 학생일 때부터 알았습니다. 12월 25일에 제가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이진희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아저씨 돈 빌려줘서 아이 수술 잘 받았어요'…"
-장규식(가명)
장 씨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던 이진희가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게 안쓰러웠대. 그래서 여러 번 돈을 빌려준 거야. 그런 장 씨에게 고맙다며 이진희가 찾아온 게 12월 25일이야.
"고마웠는데 해드릴 건 없고 약주를 대접하겠다고 그래서, 혼합해서 부어주는 술을 2/3 정도 마셨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장규식(가명)
술을 권해 마셨는데,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이진희를 돌려보냈어. 그런데 다음날인 26일 이진희가 또 찾아와.
"1시쯤 이진희에게 전화가 걸려 옵니다. '몸이 안 좋아서 죽을 것만 같다, 쓰러질 것만 같다'라고 얘기했더니. 자기가 '약을 사다 준다' 하더니 잠깐 있다가 집으로 찾아왔어요. 그리고 피로회복제라고 준 걸 마시고 그냥 쓰러졌었죠."
-장규식(가명)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땐, 사방이 온통 연기투성이었어.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살겠단 일념 하나로 온 집안을 헤집어. 그러다 손에 문고리가 잡혔어. 운 좋게 문 앞까지 간 거야. 그렇게 장 씨는 살아남았어. 병원에 실려간 장 씨는 그날 상황이 기억이 잘 안 났어. 그리고 이진희가 다시 찾아왔어. 이진희는 장 씨에게 이렇게 물었어.
"어쩌다 불이 난 거예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근데… 그날 기억은 좀 나세요?"
장 씨가 먹었던 그 피로회복제에서도 졸피뎀이 검출됐어. 이진희는 3일 만에 무려 5명의 목숨을 노린 거야. 그럼 이진희는 왜 장 씨를 노린 걸까? 돈을 빌렸기 때문만은 아니었어.
"범행 전에 장 씨의 사망 보험금을 본인 앞으로 돌려놓아요. 이진희 본인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돌려놓은 걸 확인하고 보험 내역을 봤어요. 범행의 목적이 이거였구나를 확인하게 되었죠."
-이재혁 형사
장 씨가 그날 사망했다면, 이진희는 사망 보험금으로 1억 6천만 원을 받았을 거야. 이 범행을 실패해서 미연 씨 가족을 노린 건지, 애초에 두 사건 모두를 계획했는지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분명한 건, 둘 다 돈을 노린 범죄라는 거야.
▲ 그녀의 실체
이 무서운 이진희라는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평범한 가정, 평범한 주부. 특이한 점은 특별히 없었어요. 장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 고생하는 엄마. 그 정도였던 거 같아요."
-이재혁 형사
이진희에겐 특별한 직업이 없었어. 그렇다고 생활이 빠듯한 것도 아니었어. 남자친구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월 300~400만원을 받았어. 아파트에 살고 중형차도 끌고 다녔는데, 무슨 영문인지 10년째 기초생활 수급자였대. 거기에 장애가 있는 아들의 지원금까지 더하면, 월 500만원 정도의 고정 수입이 있었어. 그걸 다 어디에 쓰고 다녔는지 안 밝혀졌는데, 여기저기 빚진 돈만 1억 원 정도였대. 그래서였을까. 이진희의 엽기적인 행각은, 범행 후에도 계속 됐어.
미연 씨의 장례기간 때였어. 이진희가 유족을 찾아와서 이걸 건네줘.
오히려 숨진 미연 씨가 자신한테 1,800만원의 빚을 졌다는 가짜 차용증이야.
"이진희가 그렇게 했던 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역주장, 두 번째는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자기한테 더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계획했던 면도 있을 것이고. 이진희가 상황을 유지하거나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전혀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이숭희, 삼 남매 아빠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난 후에도 이진희는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해. 심지어 현장 검증을 나가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미연 씨 탓을 했어. 웬만한 중범죄자들도 이쯤 되면 미안하다고 한다는데, 이진희는 달랐어. 죄다 남의 탓이야.
이게 통하지 않자 이진희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어. "장애아인 우리 아이는 이제 어떡해요. 불쌍한 우리 아들을 봐서라도 선처 좀 부탁드릴게요"라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없이, 끝까지 자신만 생각한 거야. 어떤 날은 심지어 이런 부탁도 했대.
"검거되고 나서 형사들한테 했던 말이 '부탁을 한다. (자신의) 강아지들을 잘 부탁한다'…"
-최철민 형사
이진희의 임상심리평과 결과, 의외로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대. 대신, 이런 결과가 나왔어.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신 병리를 과장할 가능성이 있고 자기중심적이며 연극적인 (히스테리성) 성향과 수동 공격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 성인 재범위험성평가 결과 총점 12점. 재범 위험성 높음."
재범 위험성이 높고, 연극성 인격장애를 가졌다는 진단이야. 이건 사이코패스보다 더 알아차리기 힘들대. 그리고 평소엔 너무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대. 연극성 인격장애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너무 중요해. 타인의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하면 못 견뎌. 그래서 마치 어떤 배역을 부여받는 것처럼, 특정 이미지나 캐릭터를 계속 만든대. '좋은 사람', '멋진 사람', 그것도 안 되면 '불쌍한 사람'이라도.
"저하고 대화할 때는 평범한 부모로 그렇게 저한테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티가 많이 나는데, 티가 전혀 안 났어요."
-이재혁 형사
"그렇게 4명을 살해한 피의자라고 전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너무 평범하게 보이니까. 그런 부분이 오히려 더, 소름 돋고, 섬뜩하고 그랬습니다."
-최철민 형사
전문가들은 이진희를 상대로, '꾀병 탐지 검사'를 진행했어. 정신장애의 위장을 선별하기 위한 검사야. 이게 보통 사람들은 3~4점이 나온대. 6점만 나와도 높은 점수야. 근데 이진희는 무려 20점이 나왔어. 전문가들도 이런 점수는 처음 본대.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죄 없는 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살인 미수를 저지른 이진희. 검찰은 그녀에게 사형을 구형했어. 그리고 재판에서는 무기징역과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선고받았어. 어차피 무기징역인데, 전자장치 부착 명령은 왜 내려졌을까? 무기수라도, 교도소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20년 뒤부턴 가석방이 가능하거든. 혹시 20년 뒤 가석방이 되더라도, 이 죄수는 재범의 위험성이 굉장히 높으니 전자장치를 부착시킨다는 거야.
아이들의 아빠 숭희 씨는, 이 사건 이후로 '5 빼기 4'는 '0'이 됐어. 다섯 식구 가운데 네 사람을 잃고 나니, 모든 게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거야. 미안함, 그리움, 그 모든 감정 때문에. 아빠는 성치 않은 몸으로 하루 몇 시간을 하염없이 걷곤 했대. 어느덧 시간이 흘러 몸은 회복됐지만, 10년 전 그날.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좋아했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해.
"둘째는 적당한 선에서 강아지 인형을 골랐고, 셋째는 장난감 총을 골랐고. 첫째는 계속 눈치를 보고 있길래, 제일 미안한 마음이 커서 좀 좋은 걸 사주고 싶었고. 그래서 무선 헬기를 사줬죠. 좋아했죠, 좋아했고. 그리고 그날… 그날이 사고 난 날이네요. 지금쯤 편하게 지내겠죠 범인은. 하루 세 번 주는 밥 먹고 운동까지 하면서 편하게 지내겠죠? 저는 죽을 때까지 집사람과 아이들 여기 가슴에 담고… 힘들어하고 그렇겠죠? 보고 싶네요.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1년 지나고 나서, 그날 저녁에 아이들이 꿈에 나와서 저를 안아주고 가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안아주고 싶어요.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숭희, 삼 남매 아빠
오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해야 할지, '꼬꼬무'는 아버지와 많은 상의를 했어. 유가족이 가장 공개하고 싶은 건,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이야.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그럴 수가 없어. '이진희'도 가명이지. 그래서 아버지는 어려운 결심을 했어. 가해자의 이름을 알 수 없다면, 피해자인 우리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라도 기억해 달라고.
이어진, 이다은, 이우진… 이 작고 예쁜 아이들의 이름과, 이 사건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해 달라고 말씀하셨어. 그리고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아내였던 엄마 박 씨까지. 네 가족이 진정한 안식을 찾았길 바라.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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