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결사의 자유 침해"(종합)
정부 "협약 위반 언급은 없어"…민주노총 "정부가 ILO 권고 폄훼"
(제네바·서울=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고미혜 기자 = 2022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파업 당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으로 대응한 데 대해 국제노동기구(ILO)가 한국 정부에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ILO는 "업무개시명령은 결사의 자유 침해"이라고도 판단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협약 위반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법적 구속력과 직접적인 제재가 없다고 강조했다.
ILO는 1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350차 이사회를 열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제기한 진정사건에 대한 'ILO 결사의자유위원회(결사위)'의 권고안을 채택했다.
화물연대는 2022년 11월 24일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정부는 29일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 화물연대는 12월 9일 총파업을 종료했으며, 이후 업무개시명령과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개시 등 정부 대응이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인 87호와 98호를 위반했다며 국제노동단체와 함께 진정을 냈었다.
ILO 결사위는 이날 웹사이트에 개시한 보고서에서 공공운수노조 등의 주장과 한국 정부의 답변 등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판단과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결사위는 "(업무개시명령) 불응자는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위원회는 업무개시명령 발동이 파업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와 화물연대의 노조권을 침해했다(infringed)고 본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에 대한 결사위의 권고는 총 5가지로, ILO는 우선 화물연대 구성원에게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권고안은 "화물기사와 같은 자영업 근로자(self-employed workers)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가 그들의 이익을 증진·방어할 목적으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의 원칙을 충분히 누리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LO는 또 파업 참가자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아울러 화물연대 조합원 정보를 절대적인 비밀로 보장할 것도 권고안에 포함됐다. 공정위는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 당시 운송사업자 사이의 운송 방해가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화물연대에 사업자 명단 제출을 요구했다.
ILO는 화물연대 개별 조합원의 행동을 이유로 공공운수노조나 화물연대 등의 단체에 제재를 가한다면 이는 결사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조합원에게 운송업체들이 내리는 보복성 조치나 반노조 성향의 차별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제재를 정부가 내려줄 것을 권고 사항에 포함했다.
정부는 이같은 ILO 판단과 권고에 대해 ILO 협약을 어겼다는 언급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은철 고용노동부 국제협력관은 연합뉴스에 "특수형태 고용종사자도 노조 설립 및 가입이 가능해지는 등 여러 차례의 법개정으로 결사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다"며 "화물연대는 노조 설립 절차를 거치지 않아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따라서 ILO 권고안은 모든 근로자에게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원론적 권고를 내놓은 것이라는 취지다.
김형광 노동부 국제협력담당관도 "통상 ILO 결사위 권고문을 보면 구체적으로 어떤 협약의 몇조 위반이라고 기술하는 유형이 있고, 협약이 지향하는 가치나 정신 위반이라고 기술되는 유형이 있다"며 "이번엔 협약 위반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은철 협력관은 또 "당시 명령 불이행만을 이유로 형사 기소를 한 사례는 없다"며 "공정위가 요구한 자료를 화물연대가 제출하지 않아 비밀이 실질적으로 침해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15일 "정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권고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사실관계 및 정부 조치의 정당성에 대해 ILO에 적극적으로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진정을 제기한 민주노총 측은 결사위가 "제소문 기재 주장의 핵심을 인정"했으며 "공공운수노조 등의 제소 요지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렸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또 "노동부가 ILO 결사위의 판단과 권고를 의도적으로 폄훼했다"며 "정부가 가입한 국제기구의 위상을 훼손하고 위원회 권고의 진의를 왜곡하면서까지 노동 기본권을 탄압하겠다는 의지"라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이번 ILO 권고가 최근 전공의 업무개시명령에도 적용될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이성희 차관은 "전공의들이 ILO에 '인터벤션'(intervention)을 요청한 것은 (정식 제소가 아닌) 의견조회의 성격이 강하고 87조, 98조가 아닌 강제근로와 관련한 29조에 대한 것"이라며 "29조는 국민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은 적용 제외 대상으로 하고 있고, ILO도 지금까지 비슷한 해석을 해왔다"고 말했다.
prayerahn@yna.co.kr,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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