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화 진행중인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2024. 3. 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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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평화의 재발명(11) 허울뿐인 尹의 '자유민주주의'

최근 '자유민주주의'와 관련해 세 가지 소식이 눈에 띤다. 첫째는 3월 18~20일에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2021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1차 회의는 미국 단독 주최로, 2차 회의는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5개국의 공동 주최로 열렸었다. 미국이 아닌 단독 주최국으론 한국이 처음으로 나섰다. 그만큼 윤석열 정부가 이른바 "가치 연대"에 치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둘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가 3월 7일 발표한 보고서 <민주주의 리포트 2024>에 따르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지수'에서 179개 나라 중 47위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17위에서 무려 30계단이나 추락한 것이다.

특히 이 연구소는 민주주의 하락세가 뚜렷한 42개국을 '독재화(Autocratization)'가 진행 중인 나라들로 분류했는데, 한국도 여기에 포함했다. V-Dem은 32개 자유민주주의 최상위 국가군을 따로 분류하고 있는데, 32개국 가운데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로 한국이 유일하게 포함되었다.

또 언론 자유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20개국에도 한국이 포함되었다. 작년 5월 3일에는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을 맞이해 국경없는기자회가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했는데, 한국은 전년도보다 4계단이 떨어진 47위로 나타났었다. 그 이후 윤석열 정부의 언론 검열·통제·탄압이 더욱 강해지고 있어 올해에도 하락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셋째는 윤석열 정부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통일 비전을 마련할 계획이라는 소식이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공식화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대체할 새로운 통일관을 제시할 방침이라는데, 대통령실은 그 핵심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식에서 "북한 정권의 폭정과 인권 유린은 인류의 보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 가치를 보장하는 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정권은 대한민국이 추구해온 것은 흡수통일이라며 '헤어질 결심'을 천명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앞세워 '통일할 결심'을 과시하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거의 동시적으로 전해진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와 한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후퇴,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통일방안 전면화 등 세 가지 소식을 접하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 정상회의의 적실성을 차치하더라도, 윤 정부가 한국 민주주의엔 후진 기어를 놓고선 세계 민주주의 증진에는 기여하겠다며 정상회의를 개최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에 가깝다.

또 정부가 "자유의 북진" 운운하면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주창하는 모습에선 한국의 대북정책이 1950년대로 되돌아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북진 통일'을 주창했던 이승만 정권 이후 군사 독재정권을 포함한 역대 정권들 가운데 이렇게 노골적인 모습을 보인 정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순과 퇴행으로 점철된 '윤석열식 자유민주주의'가 관통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갈라치기'이다. 이는 국제-남북관계-국내에 모두 해당되고 또 연결되어 있다.

먼저 2021년에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창설된 배경에는 세계 질서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립 구도로 바라본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노선이 깊이 투영되어 있다. 그런데 윤 정부는 이에 대한 별다른 문제의식이나 국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 없이 바이든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그대로 올라타고 있다. 그 결과 이념과 체제는 다르더라도 지정학과 지경학에 있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북한·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1990년 이래 최악으로 빠져들고 있다.

남북관계와 국내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이 윤 정부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윤 정부 출범 이후 이러한 현상이 너무 심해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부터 "공산전체주의"라는 표현을 앞세워 북한과 국내 민주진보세력을 동급으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식이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북한이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는 윤석열 정부이다. 윤석열 정부의 비판·저항·경쟁세력은 종북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윤 정부 자신이다. 앞서 소개한 V-Dem은 언론 자유의 심각한 위축, 성평등 공격 및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 전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기 위한 강압적인 조치 등을 한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후퇴 원인으로 지목했다. 하나같이 윤 정부가 해온 일들이다.

또 윤 정부는 외교 무대에선 민주주의를 역설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갈수록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타자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는 관대하면서도 자신을 향한 표현의 자유에는 매우 인색하다. 하여 윤 정부에게 필요한 덕목은 성찰이다. 이게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필요하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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