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폰을 10시간 끼고 살았다고?”… 5년 만에 돌아온 국민 생활시간조사, 직접 해봤다
“대한민국 국민은 하루 24시간 어떻게 쓰나”
2019년 수면 8시간12분·여가 2시간26분 등
조사원 “표본 되면 자부심 갖고 응해주세요”
ICT기기(스마트폰) 사용 시간 10시간30분, 취침 10시간, 넷플릭스 시청 3시간, 노래 듣기 50분, 인스타그램 구경 3시간, 이동 1시간50분, 타인과 함께 있는 시간 5시간20분….
3월 10일 일요일 기자의 생활시간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국민의 생활상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는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시기가 5년 만에 돌아왔다. 표본으로 선정된 가구의 10세 이상 구성원들은 이틀 동안 꼬박 10분마다 자신이 한 행동을 기록해야 한다. 통계청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인들의 ‘평균’ 행위 시간을 집계한다. 사계절 중 ‘봄철’의 생활 양식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15일 시작됐다. 생활시간조사 통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엿보기 위해 기자가 실제 표본 가구들에 배포되는 조사표를 직접 작성해 봤다.
◇ 이틀 꼬박 ‘10분마다’ 내가 한 일 기록하면 돼
조사표는 하루 24시간이 10분 단위로, 즉 144개 칸으로 쪼개져 있었다. ‘일·월요일’, ‘화·수요일’, ‘목·금요일’ 등 통계청에서 정해준 이틀간의 일상을 여기에 꼼꼼히 기재하면 된다.
가장 먼저 ‘넷플릭스 보기’, ‘취침’, ‘씻기’ 같은 ‘주로 한 행동’을 쓰고, 해당 행위를 하면서 스마트폰·태블릿·PC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기를 사용했는지를 체크한다. 한 번에 여러 행위를 했을 경우 그 옆에 ‘동시에 한 행동’을 기입하고, 여기에도 역시 ICT기기 사용 여부를 쓰면 된다. ‘자기 집’이나 ‘직장’ 등 행위가 이뤄진 ‘장소’도 채워야 한다. 만약 어딘가로 이동하는 길이었다면 ‘이동 수단’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함께 있던 사람’을 써야 한다.
3월 10일 일요일의 하루를 기록해 보니, ICT기기를 끼고 사는 시간이 무려 10시간30분에 달했다. 취침 시간과 맞먹었다. 하루의 5분의 1은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냈으며, 이동하는 데는 총 1시간50분을 썼다. 하루에 50분 동안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하루를 모두 기록한 뒤에는 그날의 기분이 어땠는지,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과 가장 스트레스를 받은 순간 등도 함께 쓰게 돼 있었다. 소득 수준과 집의 종류·면적 등 경제적 형편을 기록하는 란도 있었다.
김경희 통계청 사회통계기획과장은 “굉장히 촘촘하게 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면서 “예를 들면 고소득층 삶의 만족도는 어떤지, 집이 넓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지 등 여러 측면에서 교차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저소득층 같은 취약 계층에서 자녀들에 대한 돌봄 복지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등 정부 정책의 효과도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원한다고 해서 누구나 이 조사에 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가장 보통의 모습’을 포착해야 하므로, 통계청이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체 추출한 ‘표본 가구’에 선정돼야만 참여할 수 있다. 통계청으로부터 지정된 표본 가구는 한 계절당 약 3000곳 정도다. 1년에 총 1만2750가구의 시간표가 모이게 된다.
이렇게 제출된 조사표들은 각기 주관적인 언어로 쓰였지만, 추후 통계 조사원들의 손을 거쳐 ‘코드’로 변환된다. 모든 행동을 153개(소분류)의 숫자로 나타낸 국제 분류표에 따라 작성자가 기입한 행동 옆에 조사원들이 숫자를 매기는 것이다. 가령 응답자가 ‘샤워하기’라고 적어두면 조사원이 ‘개인위생’에 해당하는 코드(141)를 옆에 기입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비로소 우리나라 국민이 어떠한 행동에 몇 시간을 할애하는지, 특정 시각에 어떤 행동을 많이 하는지 등을 통계로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 국민 24시간 생활상·삶의 질 측정하는 ‘유일한’ 통계
1999년 처음 실시된 생활시간조사는 5년 주기로 이뤄진다. 올해로 여섯 번째다.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24시간에 대한 시간 사용 형태를 분석하고,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조사다. 특히 이번 생활시간조사에선 처음으로 봄철 조사가 이뤄진다. 그간엔 예산 문제로 여름·가을·겨울만 실시했었다. 신학기를 맞은 부모와 아이들의 생활상 관찰이 최초로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의 하루들이 모여 작성된 통계 결과는 국가 정책 수립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김 과장은 “미취학 자녀나 노인 돌봄 등 가족 내 돌봄 행태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관련 정책 수립에 활용할 수 있고, 남녀 가사 노동 시간 격차를 측정해 저출산 관련 정책에 쓸 수도 있다”며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청을 언제 많이 하는지 등도 수집되기 때문에 민간 기업의 사업 전략에도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직전 실시된 2019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12분, 일한 시간은 3시간13분, 여가 시간은 2시간26분으로 집계됐다. ‘가장 기분 좋은 행동’으로는 ‘식사하기’란 응답이 1위였고, 가장 기분 좋지 않은 1~3위는 모두 ‘일’과 관련된 행동들이었다. 성인 남성의 가사 노동 시간은 56분으로 여성(3시간13분)보다 2시간17분 적었는데, 이 간극이 2시간 이내로 좁혀질지가 올해 조사에서 눈여겨 볼 포인트 중 하나다.
다만 낯선 이를 경계하고 사생활을 노출하기 꺼리는 세태 탓에, 점점 협조하지 않는 가구가 많아진다는 점이 요즘 통계청 조사원들의 큰 애로사항이라고 한다.
이형일 통계청장은 “우리나라 가구 전체를 대표하게끔 설계된 표본에 선정되신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참여 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면서 “응답자의 소중한 정보는 통계법에 따라 철저히 보호되고, 오직 통계 작성 목적으로만 사용되니 안심하셔도 된다”고 했다. 올해 실시된 생활시간조사 결과는 내년 7월 공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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