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도 김창완도, '사람'은 쉽게 자르는 게 아니다 [연記者의 연예일기]
[OSEN=연휘선 기자] 사람이 무나 두부도 아니고, 단칼에 잘라댄다. KBS에서 '옥문아들', '홍김동전', '역사저널 그날'까지 이어지던 개편을 빙자한 무례한 칼바람이 '전국노래자랑' 김신영 하차 통보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SBS에서는 김창완이 '아침창' 마지막 생방송을 마쳤다. 방송인을 사람답지 못하게 대하는 방송가 분위기가 실망감을 자아내고 있다.
올해 들어 무수한 칼바람이 방송가를 휨쓸고 있다. 시작은 지난 1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 문제아들(약칭 옥문아들)'과 '홍김동전'의 잇따른 폐지였다. 다음 달에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이 시즌 종영했다. '역사저널 그날'의 시즌 종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명절 연휴에 갑작스러운 종영 소식은 보는 이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가장 많은 이들을 폭발하게 만든 사건은 KBS 1TV 예능 '전국노래자랑' MC 김신영의 하차. 세상을 떠난 고(故) 송해 선생의 뒤를 이어 1년 6개월 가량 활약한 김신영이지만 하루 아침에 하차 통보를 받고 새 MC로 방송인 남희석이 확정됐다.
여기에 14일 오전 SBS 라디오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약칭 아침창)'에서 DJ 김창완이 마지막 생방송을 가졌다. 비록 그는 휴식기를 가진 뒤 또 다른 SBS 라디오 러브FM으로 자리를 옮긴다고는 하나 23년 동안 이어온 '아침창'을 떠나며 흘린 눈물은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심지어 같은 날 오후 SBS 간판 교양 '순간포착-세상에 이런 일이' 종영설까지 제기됐다.
봄 시즌을 방송가 사람들은 '춘궁기'라고 부른다. 봄만 되면 시청자들이 좋은 날씨에 나들이를 즐기며 TV에서 멀어지는 만큼 시청률 회복은 힘들고 추락만 쉽다는 말이 통용되는 여파다. 과거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도 이를 대비한 특집이 구성됐을 정도다. 자연스레 봄을 앞두고 이뤄지는 개편 칼바람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방송가의 하차, 폐지 등은 유독 살벌하다. 특히 '안정감'이 색깔이기도 한 KBS와 지상파에서 먼저 시작된 폐지 바람이 더욱 스산하게 다가온다.
이를 감안해도 최근 방송가들의 변화에 많은 이들이 유독 분노하고 있다. 당장 하차, 폐지 시점을 두고 촉박하다는 지적이 크다. 법적으로 근로자들을 해고 하기 전에는 최소 한달 전에는 통보해야 한다. 프리랜서 형태인 방송 근로자들도 마찬가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 한달 전에는 통보 해야 하는 규칙이 있지만 방송일 기준인지, 마지막 녹화일 기준으로 한달인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찌감치 녹화가 준비되는 프로그램들의 경우 방송일로는 한달이 남았지만 녹화일 기준으로는 당일에 가깝게 하차 통보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수신료 분리징수 위기, 방송 광고 시장 1조원 미만 추락의 우려 속에 방송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메야 하는 속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산업이 흔들리는 마당에 출연자, 제작진 개개인과 작은 집단을 챙기려다 방송사 기뚱 뿌리가 뽑힐 수도. 그 정도로 최근 국내 방송가 사정이 녹록하지는 않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금전적 당위성을 강요하는 무례한 칼바람 속에 콘텐츠 산업의 본질인 '이야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극적인 영화나 드라마가 됐건, 웃음을 주는 예능이 됐건, 노래와 춤으로 무대를 꾸미는 가요가 됐건 적어도 세계 어디를 가도 콘텐츠 산업의 본질은 한 편의 그럴싸한 이야기 혹은 이미지를 팔고 그 안에서 씹도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거리들을 선사하는 것에 있다. 그 매력에 이끌린 사람이 모야 이 바닥의 돈이 된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사람'을 산업의 톱니바퀴, 파편 하나 쯤으로 치부하는 단면이 보이지 않는 장막을 거두게 한다. 방송사가 파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믿고 즐기겠다는 대중과 화면 사이 무언의 약속을 처절하게 깨부순다. 당신이 즐기는 어떤 드라마, 영화, 예능, 노래 모든 게 누군가 돈을 벌고 수익을 내기 위한 산업이라고 폭로하는 순간, 어떤 콘텐츠라도 매력은 휘발되고 콘텐츠의 가치는 반감된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우스갯소리로 방송은 숨 쉬는 것도 가짜라고 했던가,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얼마나 그럴싸하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지가 방송의 만듦새, 작가의 개연성, 감독의 연출력, 출연자의 연기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어떤 콘텐츠는 그 만듦새를 예술적인 경지로 끌어올려 보여줌으로써 수상 트로피를 거머쥐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함으로써 명예를 가진다.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대중예술과 '프로그램 폐지'나 '출연자 하차', '개편'이라는 당연하지만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실체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소속 아티스트와 소속사 간 결별을 'FA'와 '아름다운 이별'로 표현하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이직, 고용주의 변화 같은 돈의 문제도 스타를 위한 팬심을 생각해 살뜰하게 표현하는 게 예의이고 생리이다. 방송가 하차에도 세련된 이별, 예의 바른 마무리가 필요하다. 더 이상 제 발로 누군가의 웃음이나 꿈과 희망을 '와장창' 박살 내버리는 사람들에게 대중이 시간을 할애할 이유도 애정도 없지 않을까. 적어도 손 쉽고 간편했던 하차, 개편 따위의 말들로는 이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다. / monamie@osen.co.kr
[사진] KBS, SBS,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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