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은 이재명·조국의 식민지 아니다[이용식의 시론]
제헌헌법 농지개혁에 큰 역할
5·16 뒤 대선에선 박정희 지지
권력 부패와 독재 항거에 앞장
비명 횡사, 종북 숙주, 방탄 정당
DJ 정신도 호남 역사도 짓밟아
묻지 마 지지는 호남 착취 자초
지역에 따라 정치 정서가 다른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지역감정이나 지역주의가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발전 경쟁의 동력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0개 이상은 아예 레드(공화당)·블루(민주당) 스테이트로 분류된다. 오는 11월 대선 경우엔 스윙 스테이트가 6개 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엔 스코틀랜드 독립을 내건 스코틀랜드국민당이 제3당이다. 독일의 보수 정치 세력은 기독교민주연합과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의 연합 정당 형태다. 바이에른 지역의 독특한 정서 때문에 기민련은 바이에른을 제외한 지역, 기사련은 바이에른에만 후보를 낸다. 이를 보면 영·호남 정서도 그리 유별난 게 아니다.
문제는 대의명분이다. 호남 정서의 연원에는 이순신 장군의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있다. 해방 뒤엔 나라의 주춧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지주였던 김성수(고창)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면서 농지개혁을 적극 지지해 성공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혼합된 제헌헌법은 ‘김준연 헌법’이라고 할 만큼 김준연(영암)의 막판 역할이 컸다.
5·16 쿠데타 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호남은 박정희를 지지했다. 윤보선과의 표차는 15만여 표였는데, 박정희는 호남에서만 35만여 표 이겼다. 산업화가 경부 축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호남 소외가 시작됐고, 박정희-김대중 대결이었던 1971년 대선을 계기로 호남의 설움이 본격화한다. 5·18을 거치면서 호남 정서는 반독재를 넘어 이념적 진보로 기울더니 1990년 평화민주당을 배제한 3당 합당으로 더 굳어졌다. 호남의 압도적 김대중 지지는 대의명분이 충분했다. 김대중은 그런 호남 정신을 위대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된 뒤 “피해 당사자가 화해 적임자”라며 박정희·전두환·노태우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역사를 관통하는 호남 DNA는 호국·자유민주·화해이다.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 조국의 조국혁신당이 호남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크게 일탈한 현상이다. 이들은 김대중 정신과 무관할 뿐 아니라 모독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김상현·이기택 등 비주류 측에 과도한 지분을 보장해 줄 정도로 당내 민주주의를 중시했다. ‘비명횡사’ 공천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도덕적 사법적으로 파렴치한 짓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정당을 개인 비리 방탄에 동원할 일도 없었다.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을 인지하자 국가안전기획부에 신고하고, 자신도 밤샘 수사를 받았다. 노태우 정부였음에도 공권력을 존중했다. 이재명과 조국은 범죄 혐의 방탄을 위해 ‘검찰 독재’ 운운한다. 종북 세력의 국회 진입 숙주 노릇을 넘어 공생 관계가 됐다. 동교동계는 물론 친노·친문 인사까지 쳐내고 이재명 친위 체제를 구축하면서 “인동초 정신”을 외친다.
이런데도 호남인들은 적극적 지지를 보낸다. 이낙연(영광)을 제쳐놓고 영남 출신인 이재명·조국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윤석열 정부와 선명하게 싸울 세력”이라고 한다. 어떤 정책이 잘못됐고 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각론은 없다. 반세기 이상 김대중과 후계 세력을 지지해온 관성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이재명·조국 세력에 ‘가스라이팅’당한 측면이 강해 보인다.
광주·전남의 유력 언론인 남도일보에는 지난 12일 ‘제2의 김대중을 키워야 한다’는 칼럼이 실렸다. “민주당에서 전라도 출신 정치인이 핍박받는 것은 아이러니한 현상”이라면서 기동민(장성) 박광온(해남) 임종석(장흥) 박용진(장수) 윤영찬(전주) 이수진(완주) 홍영표(고창) 등 비명횡사 명단을 열거했다. 선거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호남 정치인은 성장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문재인은 데릴사위적 정치인’이었으며, 그로부터 받은 상처가 깊었다고도 했다. 노무현도 대통령 당선 뒤 ‘호남이 노무현 좋아서 찍었나, 이회창 미워서 찍었지’라며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외부 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노리고 특정 지역 정치를 쥐락펴락한다면, 그곳은 정치적 식민지이다. 식민 지배를 위해서는 말 잘 듣는 관리인만 있으면 된다. ‘묻지 마 지지’가 계속되는 한, 호남 대의명분을 저버린 당권 세력의 정치적 착취도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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