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 인력 늘려도 금융사고 줄지 않았다
준법감시인력 2년새 23% 증가
횡령·배임 등 계속 발생, 부실 우려 커
외부 준법감시인 선임 등 변화 요구
주요 시중은행이 내부통제 업무를 수행하는 준법감시 인력을 최근 2년 새 대폭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반적인 인력 감축에도 각종 금융사고 발생으로 인한 ‘내부통제’ 필요성이 커진 데다, 당국의 인력 강화 압박도 더해진 영향이다.
다만 내부통제 강화가 본격화된 이후에도 횡령, 배임 등 크고 작은 규모의 금융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단순한 준법감시 인력 증원보다 내부통제 업무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외부 출신 준법감시인 선임 등 체질 변화를 단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부통제 더 조였다” 4대 은행 준법감시 인력 2년 새 22.6%↑=15일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최근 3개년치(2021~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회사에 속한 준법감시 인력(법무인력 포함, 자금세탁방지 인력 제외)는 2023년말 기준 총 319명으로 2년 전인 2021년말(260명)과 비교해 59명(22.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말(284명)과 비교해서는 35명(12.3%) 늘어난 수치다.
이는 비용 절감 및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전반적인 인력 감축을 지속하는 방침과는 반대 양상이다. 실제 같은 기간 4대 은행의 총임직원수는 5만7245명에서 5만5475명으로 2800명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총임직원 대비 준법감시 인력 비중은 4대 은행 평균 0.45%에서 0.57%로 0.12%포인트 증가했다.
은행들이 준법감시 인력 확충에 나선 것은 수백억원대 횡령 등 대규모 금융사고가 이어지며, 내부통제를 위한 관련 인력 증원 요구가 계속된 영향이다. 금융당국은 2022년 4월 우리은행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벌어지자 같은해 11월 전 은행권을 대상으로 한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나섰다.
이에 따르면 은행들은 내년말까지 자금세탁방지 인력 등을 제외한 준법감시 인력 비중을 총임직원 대비 최소 0.8% 이상(소규모 은행은 1%)으로 유지해야 한다. 현재 연차보고서 등을 종합해 추산한 주요 시중은행들의 준법감시 인력 비중은 ▷국민은행 0.61% ▷신한은행 0.53% ▷하나은행 0.56 ▷우리은행 0.57% 등으로 기준에 미달한다.
은행들은 향후 관련 인력 증원 속도를 끌어올려, 당국서 요구하는 목표치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갈수록 내부통제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이니만큼,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더라도 내부 충원, 외부 전문인력 확보 등 인력 강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증원뿐만 아니라, 변호사 등 전문인력을 확충하며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고 있다. 금감원에서 준법감시 인력 중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인력 비중 20% 이상을 의무화하고 나선 데 따라서다. 예컨대 국민은행의 경우 2021년 내부통제 관련 법무인력이 17명에 불과했지만, 2023년말 기준 31명으로 두 배가량 늘렸다. 이 중 변호사만 2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조적 변화를 꾀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초 은행 내부통제 컨트롤 타워인 준법경영부를 신설하고, 각 지역본부 내에 전속 내부통제팀장을 배치하는 등 인력 구조 변화를 시행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전 부서 및 외부 전문 변호사가 참여하는 ‘내규체계정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해 내규 개선 작업을 시행했다. 우리은행은 전 직원이 내부통제 관련 부서를 1년 이상 거쳐 가게끔 인사 제도를 손봤다.
▶지속되는 은행권 횡령·배임...내부통제 ‘부실’ 우려는 계속=다만 준법감시 인력 증원이 본격화된 지난해에도 금융사고는 꾸준히 이어졌다. 각 사 경영공시에 따르면 4대 은행의 2023년 분기 평균 금융사고 발생 건수는 12건으로 2022년(9.5건)과 2021(10.8건)과 비교해 소폭 늘어난 것으로 났다. 이달 들어서도 농협은행과 국민은행 등에서 100억원대 부당대출 배임 사고가 발생하며, 내부통제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단순 인력 증원이 아닌, 준법감시 부서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체질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4대 은행의 준법감시인은 모두 은행 내부 출신이다. 전문성보다는 현장 경력에 중심을 둔 인사가 진행된 영향이다. 이에 내부 세력을 견제하지 못하고, 단순 상품 관련 법적 검토 등 단순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만을 수행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또한 지난해 11월 준법감시인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의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 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은행 준법감시인의 자격요건은 관련 경력(준법, 감사, 법무 등) ‘2년 이상’에서 ‘3년 이상’으로 강화된다. 선제적인 변화 움직임도 시작됐다. 지난해 불법계좌 개설 사고를 일으켰던 대구은행은 지난달 선제적으로 외부 출신 법률 전문가를 준법감시인으로 선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 준법감시인의 임기가 만료되는 국민·신한·하나은행 등에서도 외부 출신 준법감시인 선임이 이뤄질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된다. 다만 내부에서는 이같은 흐름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만 하더라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의 역량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무작정 외부 전문가를 선임하는 것보다, 내부에서 적절한 시스템이 작동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우 기자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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