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학전 “정신은 이어질 것”
한국 공연문화 산실, 가수·배우 배출
재정난, 김민기 투병으로 운영 중단
개보수 후 7~8월 새 공간으로 개관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아침이슬’ 중)
서른셋, 이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에 원치 않는 설움을 맞았다. 배우 황정민은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북받치는 감정에 울음을 삼켰다. 관객은 어느새 하나가 됐다. 터전을 잃은 실향민처럼, 뿌리를 찾으려는 이방인처럼 공허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학전(學田)’의 마지막 외침이 ‘아침이슬’과 함께 사라지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공연문화의 산실, 학전이 이제 문을 닫는다. 14일, 2주간 이어온 ‘학전 어게인 콘서트’의 마지막 회차가 마무리되며 학전은 역사 속으로 떠났다.
‘학전’은 1991년 3월 15일 ‘아침이슬’, ‘상록수’를 만들고 부른 김민기 대표가 만든 공간이다. 만성 적자와 그의 암투병으로 문을 닫는 학전은 ‘가장 학전답게’ 떠날 방법을 고심하던 중 총 20회의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열고, 그들의 생일날 문을 닫겠다고 밝혀왔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는 윤도현을 시작으로 김현철, 윤종신, 장필순, 동물원, 나윤선, 유리상자, 박학기 등 대중음악 가수를 비롯해 배우 황정민, 설경구, 김정은이 함께 했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한 20회의 릴레이 공연은 티켓 예매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회당 150여명의 관객이 찾았고, 릴레이 콘서트 기간 3000명이 넘는 관객이 다녀갔다. 티켓 수익금은 모두 학전에 기부됐다.
학전의 마지막은 ‘김민기 트리뷰트’ 무대로 이어졌다. 학전과 김민기에 얽힌 서로의 기억을 보듬고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을 비롯해 가수 박학기, 권진원, 정동하, 알리가 학전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를 부르며 “우리가 40년간 노래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이름을 지어주고 1지 기호기도 해준 김민기 선배님 덕”이라고 했다. 권진원은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엔 어떤 고결함과 숭고함이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선생님이 쓴 노래엔 사랑이란 가사가 없다”며 “노랫말엔 없지만 그 누구보다도 세상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날 공연엔 김민기와 학전의 스타들이 머무르던 ‘아지트’ 역할을 한 학림다방 이충열 대표도 함께 했다. 이 대표는 무대에 올라 “1987년 김민기 형을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형이 갖고 있지 않은 판(LP)을 갖고 있던 게 계기였다. 그걸 틀었다가 아주 혼났다. 그게 자기 노래였기 때문”이라며 “김민기 형은 술에 취해도 음이 틀리면 바로바로 지적할 정도로 음감이 정말 뛰어났다”고 떠올렸다.
‘못자리 농사’라는 의미의 학전은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워 추수한다는 뜻을 담는다. 이름 그대로 이 곳은 모두에게 배움의 공간이었다.
이른바 ‘학전 독수리 5형제’(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로 불리는 ‘천만배우’ 황정민은 “학전 극단이 만들어지면서 1기 오디션에 합격해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며 “나의 20대를 기술이나 테크닉 없이 오롯이 열정 하나로만 보낸 기억이 있다. (김민기) 선생님에게 기본이라는 게 뭔지를 다시 배웠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학전에서 배운 것은 기본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나의 자부심, 자존심, 원동력이었다”며 “학전은 당장은 문을 닫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것이라 믿기에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기획한 박학기는 “‘싱송생송’이라는 싱어송라이터 모임에 형님(김민기)과 학전 폐관 소식을 알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게 이번 공연이었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이수만 선생님이 학전의 마무리를 위해 큰 금액을 기부하셨다”고 알렸다.
학전은 다음 달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을 맡아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난다. “공연예술인의 터전 역할을 해달라”는 김민기 대표의 뜻은 이어가나, 학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독자적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는 마음을 담아 극장 개보수를 거쳐 7~8월경 재개관할 예정이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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