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도전한 과학자들] ⑤황정아 "출연연 연구과제중심제도 개선에도 힘쓸것" <끝>
[편집자주] 동아사이언스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영입된 과학기술인의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이들이 아직 국회에 발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정치에 도전하는 계기, 국회의원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풀어보며 현재 한국 과학기술 현주소를 진단합니다. 정당과 관계없이 이름 '가나다' 순으로 게재합니다.
과학고와 KAIST 출신 토종 여성과학자. 세계 최초로 편대비행에 나선 큐브위성 ‘도요샛’ 개발에도 참여한 우주방사선 전문가. 책과 강연으로 대중과 만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 황정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 책임연구원을 수식하는 표현은 다양하다.
여기에 ‘과학자 출신 정치인’이라는 말이 더해질지도 모른다. 2024년 1월 더불어민주당은 황 책임연구원을 제22대 국회의원선거(이하 4월 총선)를 위한 영입인재 6호로 발표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대거 몰려있는 대전 유성구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그를 2월 28일 국회에서 만났다.
Q. 30년 동안 연구를 하다가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영입 제안을 받은 건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정부에서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한다는 발표가 나온 후였어요. 무려 두 달을 고민했는데 그 동안 R&D 예산 삭감 사태가 점점 심각해졌어요. 일선 연구자들도 사태의 여파를 체감하기 시작했죠.
연구 현장은 이미 2023년 하반기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고 지금은 그때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예산이 삭감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모두들 답답해했어요. 어떤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이 ‘카르텔’이라는 단어만으로 예산이 깎였거든요.
더 심각한 문제는 인재 유출입니다. 연구 과제가 없어지면서 유능한 과학자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예산은 다시 복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번 빠져나간 인력을 돌리긴 힘듭니다.
저는 30년 동안 현장 연구자로 일선에서 꾸준히 연구를 해왔습니다. 지금도 인공위성 만드는 일이 정말 좋고 R&D 예산 삭감 이슈가 없었더라면 국회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한국 연구 현장에 무슨 문제가 있고 이를 극복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제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자가 긍지를 가지고 연구할 수 있는 연구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 동료들이 마음껏 연구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치를 시작하게 된 최우선 목표입니다."
Q. R&D 예산 사태 이전 과학자의 눈으로 본 정치계는 어떤 곳이었나.
"이전에 우주방사선 연구를 하면서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이하 생방법)’을 만드는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2009년 국토해양부에서 진행한 정책 과제 연구를 바탕으로 법이 제정된 것이 2011년, 시행된 게 2012년입니다.
국회에서 무려 4년 동안이나 법안이 표류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자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 법이 만들어지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싶어요. 이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하면서 정치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은 국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야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번 총선은 과학기술이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어요. R&D 예산 삭감의 후폭풍을 막아야 한다는 데 정치계와 대중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과학계의 연구와 요구가 법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Q.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위해 어떤 법안을 준비하고 있나.
"우선 정부 예산 총지출의 약 5%를 R&D 예산으로 확정하는 ‘미래성장동력법(가칭)’을 준비 중입니다. 안정적인 폭의 R&D 예산을 법으로 확정해 이번과 같은 갑작스런 삭감이 없도록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올해 삭감된 R&D 예산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긴급 추경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당장의 연구 현장 상황이 심각하니 하반기에 쓸 R&D 예산을 상반기에 당겨 쓸 수 있도록 조치하고 하반기에 추경으로 R&D 예산을 보충해야 한다고 봅니다. R&D 예산 이외에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 관한 정책적 개선도 추진하려 합니다."
Q. 연구과제중심제도를 어떻게 개선하고자하는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들은 정부로부터 받는 출연금 외에 국가 R&D 프로젝트에 지원해 연구비와 인건비를 충당합니다. 이를 연구과제중심제도라 부릅니다. 특히 응용 연구를 주로 하는 출연연은 국가 출연금 비율이 낮습니다. 그러니 돈을 벌기 위해 실패 가능성이 높고 잠재력이 높은 연구를 하지 못하고 단기 연구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연연 인건비를 고정적으로 확보하는 제도를 마련할 계획입니다."
Q. 과학계 출신 정치인으로서 남다른 목표가 있는가.
"과학계 출신 정치인 하면 독일에서 16년간 총리로 재임한 앙겔라 메르켈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메르켈이 총리가 된 이후 독일 정치는 정책 토론의 장으로써 더 나은 기능을 하게 됐죠. 그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여러 당적을 가진 다양한 과학계 출신 정치인들과 힘을 모아 협치하고 싶습니다.
비례가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이유도 과학계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함입니다. 지지의 기반이 되는 지역구가 있어야 영향력있는 법안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법안을 만드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공청회와 토론, 수정을 거치면 (국회의원 임기인) 4년 동안 법안 하나 만들기가 쉽지 않죠. 쉽지는 않은 길이겠지만 한다면 지역구를 기반으로 다른 분들과 힘을 모아 확실하게 과학자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싶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지금은, 과학자들이 마음 편하게 하고 싶은 연구를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국회에서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더 많은 과학자들이 정계와 공직으로 진출하게 만드는 롤모델이 됐으면 합니다."
[이창욱 기자 changwoo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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