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예술? AI, ‘작품이 주는 감동’까지 지배하게 될까 [A 레볼루션]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2022년 11월, 인공지능(AI)이 세계 최고의 미술관을 점령하는 세기의 사건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1층에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이 제작한 8m 높이의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이 설치되면서다. 이는 모마가 200년간 수집한 미술품을 학습한 AI가 새로운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AI를 활용해 제작한 미술품은 과연 예술일까. 숱한 논쟁을 불러 일으킨 당시 사건 뒤에도 AI는 미술계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당장 오는 20일 뉴욕에서 개막하는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휘트니 비엔날레의 구성만 봐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AI가 그린 아티스트의 뒷모습이 당당히 전시장에 내걸렸기 때문이다. 관람객 개개인이 입력한 키워드에 따라 AI가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는 온라인 갤러리도 문을 열었다.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가 주목하는 주제도 AI다.
리움미술관에서는 42개의 센서가 탑재된 인공두뇌가 주변의 소리를 모아 만들어낸 목소리를 작품으로 구현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글래드스톤 서울에는 AI 세계에서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하는 가상의 거북이 ‘사우전드’가 작품 그 자체가 돼 지금 이 순간에도 무한 진화를 하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는 AI가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오류에 천착해 이를 회화로 그려낸 노상호 작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후죽순 등장하는 AI 작품을 한 가지의 미술 형식으로 뭉뚱그려 바라보기 전에,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작품에 AI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됐는지 그 방법을 구분해 달리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①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모델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경우와 ②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AI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작품이 되는 경우는 엄밀히 다르다.
전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뛰어난 AI 모델을 기술적으로 개발해 냈는 지가 관건이다.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작가의 사고 체계가 AI 모델을 작동시키는 여러 가지 기준으로 정밀하게 세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AI를 작동시키는 작가의 기준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경향은 미술의 비물질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개념미술을 다루는 방식과 흡사하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장안의 화제인 챗GPT,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과 같은 생성형 AI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작품 그 자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가 창작의 영역에 일부 개입했다면 작품성에 대한 논의는 더욱 복잡해진다. 해당 작가들이 “AI를 유화, 아크릴, 브론즈 등과 같은 미술 도구로만 썼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창작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그리는 행위’를 AI가 대신했다면, 그림의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더이상 무의미해진다. 실제로 미국 저작권청도 AI가 생성한 이미지에 대해서만큼은 저작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AI가 수집한 데이터의 저작권과 편향성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인류에게 상상 이상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차세대 기술인 AI의 개발 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게 중론이다.
이는 대다수의 작가들이 기자 간담회나 언론 인터뷰, 작가 노트에서조차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데이터를, 무슨 기준으로 분류해, 어떤 방식으로 AI를 학습시켰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거나 함구하는 일련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와 관련 미국 저작권청은 최근 성명을 통해 “흔히 생성형 AI로 불리는 기술이 생산하는 데이터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사람이 만든 데이터와 AI가 만든 데이터로 구성된 저작물이 모두 저작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이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며 “이러한 논의는 더 이상 가상에 존재하는 질문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아직 AI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가 법적 담론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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