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계서 ‘무한 진화’ 거북이, 작품 그 자체가 되다 [A 레볼루션]

2024. 3. 15. 10:0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상세계에 사는 거북이 '사우전드(Thousand)'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해당 작품이 전시된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최근 만난 작가는 "AI 학습을 쌓아나가면서 사우전드는 목숨을 잃을 확률을 줄여 나간다"며 "사우전드가 감각한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믿음'을 내면에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우전드는 그가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한 전작 '라이프 애프터 밥(Life After BOB)'(2021)에 등장하는 찰리스의 애완 거북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안 쳉 ‘사우전드 라이브즈’
지금도 배우는 중…작가도 결말 몰라
이안 쳉, 사우전드 라이브즈(Thousand Lives), 2023. [글래드스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가상세계에 사는 거북이 ‘사우전드(Thousand)’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의 AI(인공지능) 세상에서 새로운 사물과 마주치며 자기만의 행동 양식을 실시간 머신러닝(기계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거대한 화분 사이에 몸이 낀 사우전드는 수십 차례 바둥거리다 끝내 죽기도 하고, 그렇게 다시 환생한 사우전드는 햇볕이 내리쬐는 따뜻한 창가 근처로 갔다가 목이 타 물을 찾기도 한다. 이내 지루해진 사우전드는 미지의 공간으로 탐험에 나서기도, 그러다 거대하고 낯선 사물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치기도 한다. 정해진 시나리오는 없다. 초깃값을 설정하면 그 이후엔 사우전드 스스로가 삶을 만들어나간다.

이 모든 사우전드의 일상을 관람객이 볼 수 있도록 만든 AI 시뮬레이션 작업이 작가 이안 쳉(40)의 신작 ‘사우전드 라이브즈(Thousand Lives)’(2023)다.

글래드스톤에 전시된 사우전드 라이브즈 작품 전경. [글래드스톤]
글래드스톤에 전시된 사우전드 라이브즈 작품 전경. [글래드스톤]

“한 차례 죽고 다시 태어난 사우전드는 이전 삶에서 학습한 내용의 20%를 축적한 채로 환생합니다.”

해당 작품이 전시된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최근 만난 작가는 “AI 학습을 쌓아나가면서 사우전드는 목숨을 잃을 확률을 줄여 나간다”며 “사우전드가 감각한 것을 토대로 ‘자신만의 믿음’을 내면에 축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믿음이라는 개념은 그가 개발한 모델링으로 구현됐다. 체질·에너지·방광·체온·수분·고통 등 6가지 신진대사를 갖춘 사우전드는 음식·물·휴식·증오·따뜻함·온전함·확실성·능숙함 등 8가지 내적 욕구를 가진 거북이다. 여기에 행위자 기반 시뮬레이션 기법이 더해졌다. 목표를 가진 사우전드가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안에서 내적 동기에 따라 무엇에 더 집중할 것인지 결정하고 자신의 행동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우전드가 추구하는 내면의 신념은 행동 양식으로 드러난다. 가령 어떤 행동을 하는데 더는 주저하지 않는 모습을 새롭게 보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안 쳉, 사우전드 라이브즈(Thousand Lives), 2023. [글래드스톤]

“사우전드를 구성하는 내적 욕구 가운데 확실성·능숙함 항목이 가장 중요합니다. 확실성 수치가 높아진 사우전드는 더 탐험하고 싶어 하는 행동을 보이죠. 어떤 행동을 반복해 실패하면 능숙함 수치가 낮아지면서 더는 위험 부담이 있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이를 관찰하면 사우전드의 믿음이 보일 겁니다. ”

이처럼 사우전드는 살아 숨 쉬는 듯 작품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 낸다. 이는 원하는 결과값이 나올 때까지 AI를 밀어붙이는 다른 작가들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이안 쳉 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다. 작가는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시뮬레이션 하는 데 관심이 많다”며 “한 발 더 나아가 개별 관람객이 가진 관점이나 경험에 따라 시뮬레이션 되는 예술의 미래를 꿈꾼다”고 말했다.

작가 이안 쳉. [글래드스톤]

사우전드는 그가 리움미술관에서 전시한 전작 ‘라이프 애프터 밥(Life After BOB)’(2021)에 등장하는 찰리스의 애완 거북이다. 찰리스는 아버지 닥터 윙에 의해 AI를 신경계에 심게 된 인간이다. 효율적인 인생 경로를 살아가는 찰리스가 점점 삶에 관심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이야기가 전작의 핵심 서사다. 그렇다면 그의 이번 신작에서 등장하는 사우전드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이안 쳉이 예전에 “심리학자 에릭 번의 ‘인생 각본’ 이론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던 점을 고려해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에릭 번의 인생 각본 이론은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 각본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어렸을 적 부모에게 큰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어린 두 딸을 키우는 작가는 실제로 인생 각본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사우전드 역시 작가가 의도한 초기 학습 내용을 토대로, 지금 이 순간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수정해 나가고 있다.

dsun@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