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가노라∼”… 학전, 3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학전과 인연 깊은 배우·가수 등 20차례 마지막 콘서트 열어
문화예술위원회가 새단장 후 이르면 7월 재개관 예정
“내가 없으면 학전은 없다”는 김 대표 뜻을 존중해 학전 이름 사용 않기로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14일 저녁 마지막 콘서트가 열린 서울 종로구 학전블루 소극장. 학전 설립자 김민기(73)의 대표곡이자 많은 국민의 애창곡인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천만 배우’ 황정민과 한영애, 권진원, 박학기, 노래를찾는사람들, 알리 등 학전과 인연이 깊은 배우와 가수 출연진이 진심을 담아 불렀다. 관객들은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며 따라 불렀고, 황정민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권진원은 주먹을 쥐고 노래하다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서는 북받치는 감정에 끝내 흐느꼈다.
‘배울 학(學) 밭 전(田)’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문화예술계 인재를 키우는 못자리 역할에 충실하며 서울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대표해 온 ‘학전’이 이날 공연을 끝으로 3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다.
학전은 ‘아침 이슬’, ‘상록수’ 등을 만들고 부른 김 대표가 1991년 3월15일 세운 소극장과 극단으로 라이브 콘서트,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올렸다. 대학로의 원석을 발굴해 대한민국 공연계와 가요계를 빛내는 인재로 키워낸 곳이었다.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린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를 비롯해 방은진, 이정은, 김무열, 최덕문, 안내상 등 인기 스타가 된 많은 배우에게 학전은 성장 발판이 됐다. 특히 4000회 넘는 공연으로 소극장 뮤지컬의 역사를 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배우들의 등용문이었다. 설경구는 학전에서 포스터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돼 본격적인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유명 재즈 가수 나윤선도 같은 작품으로 데뷔했다. ‘의형제’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조승우는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한 살 나이에 학전에서 무대가 주는 아름다움과 모든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배움의 터전이자 집 같은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물원, 들국화, 김광석, 유재하, 강산에, 박학기, 유리상자 등 실력파 가수들이 꾸민 학전 라이브 콘서트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9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학전 소극장에서만 1000회 공연을 채운 김광석은 학전이 낳은 최고 스타였다.
학전은 2004년 ‘우리는 친구다’를 시작으로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 별로 돈이 안 되는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에도 힘쓰며 입시 경쟁 등에 지친 그들을 위로했다.
이날 학전은 폐관을 아쉬워하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출연자들은 ‘김민기 트리뷰트’를 주제로 ‘친구’, ‘그 사이’, ‘가을 편지’, ‘그날’, ‘작은 연못’, ‘상록수’, ‘봉우리’ 등 김민기의 명곡들을 들려줬다.
이번 콘서트를 기획한 박학기는 “‘싱송생송’이라는 싱어송라이터 모임에 형님(김민기)과 학전 폐관 소식을 알렸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게 이번 공연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수만 선생님이 학전의 마무리를 위해 큰 금액을 기부하셨다”고도 했다.
1995년 자신의 첫 단독 콘서트를 학전에서 열었던 권진원은 “김민기 선배의 노래에는 고결함과 숭고함이 있다”며 “그런데 선배의 노래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도 선배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이 세상에 대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다. 후배들에게, 그리고 저에게 음악으로 등불이돼 주신 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앞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학전 자리를 빌려 새로 단장한 뒤 이르면 오는 7월 재개관한다. “내가 없으면 학전은 없다”는 김 대표의 뜻을 존중해 학전 이름은 사용하지 않되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와 어린이극 등 학전의 기존 사업은 유지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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