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흠’이 윤석열·한동훈 것보다 크지 않다?
양당 공천은 마무리 국면이다. 과연 한국 정치는 ‘다이내믹 코리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의 호사가들은 공천 갈등으로 ‘이재명의 더불어민주당’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론조사상 지지율 하락은 실제 심각한 사태를 예고하는 듯 보였다. 이재명 대표가 지도부에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층의 대체재
반전은 예상치 못한 데서 일어났다. 여론조사상 무응답층이 되거나 제3지대 정당으로 빠져나갔어야 할 ‘이재명의 민주당’에 실망한 친민주당 성향 유권자층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를 외치는 조국혁신당이라는 대체재를 찾으면서 민주당 지지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민주당의 준(?)위성정당과 약 10~15%에 이르는 조국혁신당 지지율을 합치면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얻는 지지율과 유사한 수치가 되고, 이는 국민의힘이 얻는 지지율과 오차범위 내 수준이라는 게 최근 여론조사 결과의 흐름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창당을 선언한 2024년 2월 중순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주요 언론이 사설 등을 통해 조국 전 장관의 행보를 비판했다.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총선 참여로 정치적 복권을 노리는 것은, 사법부의 최종 판단을 거부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정치 윤리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비판은 여전히 타당하다.
그러나 한 달 만에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그 기간에 유권자가 조국 전 장관의 ‘흠’을 잊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선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의 항변을 들어봐야 한다. 이들은 “조국 전 장관의 흠이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흠보다 크지 않다” “민주당이 정권과 제대로 싸우지 못해 답답하다”고 주장한다.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불안, 민주당 지지층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강한 분노가 새로운 구도를 창출한 원동력인 것이다. 즉, 지지자들은 조국 전 장관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 대표가 불안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싫어서 조국혁신당을 지지하는 셈이다.
언론은 대개 이재명 대표의 열성 지지층에 주목하지만, 범민주당 지지층의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한 불안은 여러 형태로 표출돼온 거로 보인다. 가령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 투표율은 전국 최하위였다.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부정평가율이 60%에 육박하는데도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이 유의미하게 상승하지 않았던 것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최근의 공천 갈등은 불안의 원인인 ‘이재명의 민주당’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지지층 분열이라는 후유증을 남길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불안을 해소할 길이 열리고 조국혁신당의 지지율이 오르자, 지지율이 오른 사실 자체가 추가 지지율 상승을 견인하는 선순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투표에 임박한 시점에야 민주당 지지층에 합류할 가능성이 컸던 중도층 일부까지 조국혁신당 지지층으로 재편되는 현상도 일부 관측된다.
긴장한 보수 진영… 여당에도 전략 변화 요청
보수 진영은 상당히 긴장하는 모양새다. 가령 <조선일보>는 2024년 3월8일치 3면에 ‘민주·조국당 합치면 여야 지지율 팽팽… 출발선으로 돌아갔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 12일이 되자 <조선일보> 3면 기사 제목은 ‘민주당에 실망한 野표심, 조국으로… 총선 ‘야권 파이’ 더 커졌다’가 됐다. ‘위기론에도 한동훈만 쳐다보는 與’라는 제목의 기사도 같은 면에 실렸다. 여당도 무언가 전략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취지다.
물론 조국혁신당의 선전이 범민주당 지지층의 확장을 가능하게 할지에는 평가가 엇갈린다. 각종 여론조사에 잡히는 조국혁신당 지지층의 가장 큰 특징은 40·50대가 주력이라는 거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연령대는 원래 민주당 지지층이 강세다. 반면 20대 지지율은 신통찮다. 결국 “민주당 지지율을 나눠 가지는 것뿐”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셈이다.
만일 국민의힘이 중도 공략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면 조국혁신당의 파괴력은 ‘지지층 확장’이라는 숙제 앞에서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오히려 퇴행적인 모습이다. 지지층 확장에는 마찬가지로 실패하고 있는 거다.
우선 ‘조용한 공천’의 뚜껑을 열어보니 너무나 보잘것없다. ‘잡음 없는 공천’을 추구하다보니 현역 의원이 교체되지 않았고 이게 ‘친윤 공천’으로 귀결됐다는 비판이 보수언론에서도 제기된다. 불출마한 장제원 의원이 최근(3월7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나마저 희생 안 했다면 당 쇄신에 대해 궁색하게나마 할 이야기조차 없지 않았겠나”라며 생색냈을 정도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대거 낙천했다는 점을 들어 이른바 ‘윤심 공천’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원모 전 인사비서관과 주진우 전 법률비서관은 각각 경기 용인갑과 부산 해운대갑에 전략공천, 단수공천을 받았다. 경선에서 드물게 현역을 꺾고 부산 수영구 공천이 확정된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받았노라 자랑했다. 이들은 모두 국민의힘이 우세하거나 해볼 만한 지역으로 평가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조용한 공천’은 애초 정권심판론을 희석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친윤 공천’으로 이런 시도는 다소 빛이 바랬다. 더 문제인 것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탈여의도’ 레퍼토리 역시 바닥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 위원장은 뭘 물어봐도 오로지 이재명 대표를 걸고넘어지는 특유의 화법과 ‘종북-색깔론’으로 일관하는데, 메시지 전략에서 전임 김기현 지도부보다 나은 게 뭔지 의문이란 얘기가 나올 법하다.
여기에 친박 퇴행 공천 논란까지 더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대구 달서갑에 단수공천을 받았다. 대구·경북 지역의 유권자 정서를 고려했다는 해석이 따라붙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국정농단을 수사한 검사 출신이라는 사실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수사 대상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을 고려한 특별 위로(?) 차원이 아니겠냐는 거다.
‘탈여의도’ 부르짖던 한동훈도 ‘종북-색깔론’ 일관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유영하 변호사 공천에 대해 “탄핵은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가야 유능해지고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했지만, 당장 ‘야당 후보들에 대한 비판을 할 때는 20년 전 일까지 거론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비판에 직면했다. 가령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즐겨 언급하는 이재명 대표의 음주운전은 2004년의 일이다.
이런 난국은 도태우 변호사 공천 취소 논란에서 극에 이르렀다. 대구 중·남구에서 경선으로 현역을 꺾어 공천이 확정된 도태우 변호사가 과거 5·18 폄훼 발언 등을 했다는 사실이 <한겨레> 보도로 밝혀지자, 3월11일 일부 비대위원이 사실상 공천 취소를 요구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회의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보자”며 여지를 뒀으나, 논의 내용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자 공천관리위원회에 공천 재검토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다.
그런데 3월12일 공관위의 결론은 도태우 변호사의 공직후보자 자격을 유지하는 거였다. 하지만 비판이 거세지자 공관위는 3월14일 도태우 변호사의 공천 취소를 의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도태우 변호사 관련 논란에 대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오랜 기간 공들여온 국민의힘의 ‘서진정책’이 박살 나는 소리”라고 했는데, 이런 시각에 따르면 결국 한동훈 비대위의 ‘조용한 공천’이란 2021년 김종인 비대위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나 다름없는 셈이다.
어찌 됐건 양당 모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선거는 결국 지지층 확장에서 승부가 난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이를 어찌할 것인지는 선거대책위원회 구성에서 엿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3톱 선대위’를 출범시켰다. 이재명 대표, 이해찬 전 대표, 김부겸 전 총리가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다는 거다. 이해찬 전 대표는 군기반장 역할을, 김부겸 전 총리는 공천 과정에 대한 유감 등을 표하면서 민주당에 실망한 지지층을 끌어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조국혁신당의 뜻하지 않은 급부상으로 급한 불은 껐으니, 약점을 보완하고 전열을 정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름 적절한 처방이다. 공천 갈등의 뇌관이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고민정 최고위원이 복귀한 것도 갈등 수습의 과정으로 보면 긍정적 요인이다. 무엇보다 이 구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재명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구 선거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정치적 공간을 허용해 통합과 포용의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원톱(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하되 안철수, 나경원, 원희룡 등의 대권주자에 윤재옥 원내대표까지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선대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집중되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면서 각 거점에서 조직을 챙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다만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이 윤석열 대통령과 잘 지내보려다 실패한 인사들이라는 기억을 유권자가 아직 갖고 있다는 점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것보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는 윤석열 대통령 리스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공수처 수사와 출국금지 조처를 사실상 무력화한 채 출국해버린 게 여기에 해당한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정권심판론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공수처 수사건 출국금지건 신경 쓰지 않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국민의힘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당이 심각한 수준의 문제제기를 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이종섭 특검법’을 당론 발의하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태도다. 국민의힘은 이런저런 미봉적 변명을 하는 것 외엔 사실 대응 방법이 없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로 시도했던 ‘이재명 대 한동훈’ 구도를 만들겠다는 등의 구상이 대통령의 무리수 덕에 전부 무위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는데, 야당 입장에서 보면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정권심판론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그렇다, 오직 정권심판! 한국 정치는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인 듯하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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