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팔지도 못할 땅에 수백만 원 투자" 노인과 서민 울리는 기획부동산, 왜 처벌 못 하나

권영인 기자 2024. 3. 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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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좋은 땅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이따금씩 받게 되는 '좋은 땅' 투자 권유 전화. 어차피 지킬 수 없는 내 번호지만 그들에게 전화번호가 알려진 게 일단 별로 기분 좋지 않고, 느닷없이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탐탁지 않고, 욱 하고 순간 뭔가 치밀어 오르다가 갑자기 그런 좋은 땅 한 조각 없다는 현실에 난데없는 허탈함이 몰려오는 그 전화. 이른바 투기꾼들의 온상, 기획부동산 광고 전화입니다. 이들의 역사는 사유 재산 개념이 생긴 이후의 인류 역사와 맞먹을 겁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치 없는 물건을 거짓으로 속여서 비싸게 팔고 그냥 사라지는 겁니다.

국세청이 이 기획부동산들을 조사했더니 역시나 탈세로 의심되는 건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23개 부동산 업체, 96명이 조사를 받게 됐습니다. 가능성도 없는 개발정보를 흘려서 사람들 눈멀게 하고 자기들이 사들인 땅을 몇 배, 몇십 배 더 비싸게 팔아버린 사람들이 세금을 제대로 낼 생각이 어디 있기나 하겠습니까.
 

무슨 상황인데?

이번에 드러난 곳은 경기 남부권이 많았습니다. 서울 주변 웬만한 땅은 이미 건물이 올라섰고, 최근에 GTX나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이슈로 들썩이고 있는 게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기획부동산 일당이 손댄 곳은 경기도 화성에 있는 땅인데 철길이 지나가는 논이었습니다. 철길 주변에 역이 들어서고, 개발이 될 거라면서 그 땅을 산 지 한 달 만에 6명에게 쪼개서 되팔았습니다. 한 달 만에 뻥튀긴 돈은 3배. 그 땅은 개발 자체가 어려운 하천부지고, 개발 계획은 당연히 될 턱이 없는 안이었습니다. 이 땅을 산 사람 중에는 일용직으로 돈을 모은 70대 할머니도 있었는데, 어렵사리 모은 수천만 원을 여기에 묻었다고 합니다. 기획부동산이 할머니를 비롯해 6명에게 쪼개서 팔았기 때문에 이 땅은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팔 수도 없는 땅이 돼 버렸습니다. 그 기획부동산은 그 땅 주변에서만 수십 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땅을 팔았고, 마찬가지로 쪼개팔기로 재산권 행사도 어렵게 돼 버렸습니다.

세금은 어떻게 안 냈을까요? 가장 쉬운 건 없는 비용을 있는 것처럼 만든 겁니다. 기획부동산은 법인으로 돼 있고, 텔레마케팅이란 마케팅 영업을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일하지도 않는 텔레마케터를 허위로 잔뜩 고용해 놓고 월급을 준 것처럼 '비용' 처리하면 세금을 손쉽게 피해 갈 수 있는 겁니다. 이제 조사에 막 들어간 단계라 정확한 숫자를 말해주진 않지만, 경기 남부권에서만 이런 기획부동산이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혔고, 피해자는 6, 7백 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일용직 70대 할머니 말고도, 연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사람들까지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설명하면

왜 아직도 이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나 싶어서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소개받았습니다. 공인중개사 협회에서 일하는 분인데 기획부동산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였습니다.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우선 요즘은 기획부동산들이 참 열심히 일을 해서 땅을 매우 잘게 쪼개 판다고 설명했습니다. 몇억씩 큰돈 없이 몇백만 원으로도 땅을 살 수 있게 판을 잘 깐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큰 목돈이 아니다 보니 경계심이 낮아져서 덜컥 덜컥 계약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기획부동산들이 시골로 많이 침투했다고 합니다. 고령화되고 있는 시골에 가서 판단력이 다소 흐려진 할아버지 할머니를 속여서 돈을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또 요즘 워낙 지역 개발 계획들이 난무하다 보니 기획부동산들이 내놓는 계획들이란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게 됐다고도 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는 거죠.


개인정보까지 버젓이 드러내놓고 영업하는 게 기획부동산인데 왜 잡아가진 못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또 어렵답니다. 우선 이 기획부동산을 잡아가려면 사기죄를 적용해야 하는데 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법이 '나도 속았다'라는 겁니다. 나도 정말 그 땅이 개발되는 줄 알았고, 진실하게 그 땅이 좋은 땅이라 생각했다, 개발될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판 가격은 오히려 싸다고 봤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단속이 어렵다는 겁니다. 말만 듣고 있어도 뚜껑이 열릴 것만 같은데도 처벌은 또 법에 따라야 하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그리고 개발 계획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투자자를 모은 그 광고도 사기냐 과장 광고냐 그 사이에서 정확히 구분이 안 된다는 겁니다.
 

한 걸음 더

무자격자의 불법 중개행위로 따져보는 것도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원래 땅을 사고파는 중개업은 반드시 등록을 한 자만 가능하게 돼 있는데, 무허가 기획부동산이 땅을 사고팔다가 잡히더라도 반복해서 이 일을 계속 해온 '업'이 아니라 이번에 잠시 한 번 땅을 소개해 준 사람일 뿐이라고 잡아떼면, 그냥 내 땅을 '어쩌다 한 번' 남에게 판 것과 다름이 없어서 그것도 처벌이 어렵다 합니다. 이게 수법은 정말 뻔하고 간단하지만, 불법 입증과 처벌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권영인 기자 k0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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