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1천 년 전 강감찬과 현종처럼…배우 김동준 성장시킨 최수종의 힘

2024. 3.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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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즐레] '고려거란전쟁' 마친 김동준 배우 인터뷰


(SBS 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지난 10일 종영한 KBS 2TV '고려거란전쟁'은 KBS가 공영방송 50주년을 기념하며 27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하사극이다.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특히 '사극 제왕' 배우 최수종이 강감찬 역을 맡아 10년 만에 대하사극으로 컴백한다는 점에서 방영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최수종이 강감찬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소화할 거란 건, 40년 가까운 그의 지난 연기 세월을 통해 굳이 뚜껑을 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에 중요한 건, 최수종의 강감찬과 좋은 앙상블을 보여줘야 하는 현종 역을 어떤 배우가 맡냐는 것이었다. 19세에 왕이 된 나약한 어린 황제가 거란 침략의 대위기를 딛고 성군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최수종과 함께 '고려거란전쟁'의 한 축을 책임져야 하는 중책을 누가 맡게 될지 기대와 관심이 쏠렸다.

제작진이 선택한 그 주인공은, 당시 군대를 갓 전역한 김동준이었다. 2010년 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데뷔한 후 아이돌 활동과 각종 예능에서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였지만, 배우로서 능력치는 물음표인 그였다. 드라마 '보좌관', '경우의 수'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긴 했으나, 김동준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나 대표 캐릭터가 없었다. 이는 주연 배우로서의 역량을 아직 확인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총 32부나 되는 긴 호흡에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하 사극을 그가 어떻게 이끌지, 최수종을 비롯해 베테랑 배우들이 즐비한 작품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각인시킬 수 있을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서 출발한 '고려거란전쟁'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TV 대하사극에서 보기 힘든 좋은 퀄리티라는 호평을 얻은 장면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수신료의 가치를 했다"는 칭찬도 있었다. 반면 역사 왜곡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원작 작가가 "삼류 드라마가 됐다"며 작심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호평과 혹평의 엇갈림 속, 양측 모두가 부정하지 못했던 한 가지는 바로,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력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김동준도 포함이었다.

김동준은 초반 사극에 적응하지 못한 모습으로 연기력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작품 안에서 눈에 띄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자신이 연기하는 현종 왕순처럼, 배우로서 스스로 '성장캐'가 되며 결국에는 호평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제 김동준 하면, 현종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그에게 '고려거란전쟁'이란 대표작이 생겼다.

"성군 현종, 내가 소개하고 싶었다"

군대를 제대할 때쯤 되면 사회에 나가서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전역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고려거란전쟁' 대본을 받은 김동준도 그런 열정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 걱정과 부담보단, 도전과 극복 의지가 더 뜨거웠다.

"살면서 열정이 가장 최고조였을 때였어요. '고려거란전쟁' 대본을 받았을 때 먼저 감사함이 컸고, 부담은 되지만 내가 이걸 도전하지 않는다면 이 부담감을 지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그래서 선택했어요. 선배님들을 만나면서 부담을 지우기도, 다시 부담이 생기기도, 그걸 반복하며 다듬어 나갔어요. 현종이 성장하는 만큼, 저도 촬영장을 다니고 선배님들, 감독님과 소통하면서 '인간 김동준'으로서 성장한 시간이지 않았나 싶어요."

대하사극에 참여하는 배우에게는 연기할 캐릭터에 대한 공부가 필수다. 실존했던 인물인 만큼, 더 세밀하고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대중적으로 강감찬은 익숙한 위인이지만, 정작 그 시대의 왕이었던 현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많다. 김동준도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현종을 접했다. 그리고 그에게 깊이 동화되며 남다른 책임감이 생겼다.

"현종이란 인물을 처음 제안주셨을 때, 솔직히 그때 그 시절에 대해 제가 잘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찾아보며,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성군이고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지켜준 분인데, 이토록 몰랐다는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감히 이런 분을 연기해도 될까, 부담도 됐고요. 최수종 선배님과 감독님을 만나며, '이분들과 함께라면 같이 그려나갈 수 있겠다', '한 번 해보자'는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내가 드라마를 통해 현종을 대중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게 나였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실존 인물이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감이 컸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순간순간 그 부담감을 놓지 않으려 했어요. 그래야 더 잘 설명하고, 잘 소개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김동준은 시청자의 피드백도 꼼꼼히 확인했다. 칭찬이든 비판이든 모두 작품에 대한 애정이라 받아들였다. 역사에 조예가 깊은 시청자들은 현종의 업적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에 대해 풀어냈다. 김동준은 여기서 힌트를 얻어 연기에 적용하기도 했다.

"저도 계속 찾고 공부했지만, 그 이상의 정보들을 댓글 같은 걸로 알려주는 분들이 있었어요. 너무 감사했죠. 그중에 제가 드라마에 표현한 부분이 있어요. 귀주대첩이 끝나고 연회장에서 현종이 강감찬 장군의 손을 놓지 않아서, 장군이 한 손으로만 술잔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대요. 드라마에서 연회 장면이 나오진 않았지만, 제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강감찬 장군의 손을 일부러 계속 잡고 있었어요. 그렇게라도 그런 일화가 표현되면 좋겠다 싶어서요."

김동준이 그린 현종의 '성장'

극 중 현종 왕순은 어릴 적 절로 쫓겨나 자라다가 19세의 어린 나이에 고려 황제에 즉위한다. 처음에는 연약하고 미숙한 왕이었으나 강감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자주적이고 강인한 군주로 성장해 나가고, 결국에는 거란을 몰아내고 내부 결속을 다지며 고려 번영의 기틀을 마련한다. 32부에 걸쳐 진행되는 현종의 이런 성장 대서사를 그리기 위해, 김동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접근했다.

"왕이 되기 이전, 왕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다른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초반 왕순을 연기하며 감독님과 얘기했던 게 '지금 왕이 되면 안 된다', '내 모습은 왕이 아니라, 패기 넘치는 10대일 뿐이다'라는 거였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32부작을 찍으며 변화 폭이 크게 느껴질 거라 여겼죠. 처음 절에서의 모습, 궐에 들어온 후의 불안감, 왕이라기에 미숙한 모습들, 그러다 하나하나 배워가며 나중에 진짜 왕이 되기까지, 그 변화를 잘 그려내고 싶었어요. 처음엔 신하들 앞에서 소극적이고 불안하게만 보였던 현종이 마지막에는 왕답게 명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목소리와 발성에도 변화를 줬어요."

'고려거란전쟁' 방영 초반, 김동준의 연기가 최수종, 이원종(강조 역) 등 중견 베테랑 배우들의 무게감있는 연기와 어울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종의 초반 캐릭터가 미숙한 10대의 모습이라 더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현대극 위주로 연기해 온 김동준이 대하 사극 스타일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김동준은 자신의 연기를 향한 이런 비판적인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흐름대로 가고자 했다.

"그렇다고 뭔가 더 다르게 하거나, 일부러 바꾸려 하진 않았어요. 그때도 현장에서 촬영을 계속하고 있던 터라, 흔들리거나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신에 집중해 잘 만들어내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변화는 극 안에서 일어나니까, 왕순의 변화에 맞춰 그 흐름대로 가고자 했어요. 다행히 시청자분들도 나중에는 '이 친구가 그래서 이랬구나' 공감해주신 거 같아요."

현종이 정전에 설 때면 문무백관 노장들이 허리를 숙이고 예를 갖춘다. 그 앞에서 현종은 정치적 이견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두려움과 절망감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현종이 아버지뻘 신하들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실제 김동준의 상황도 조금은 유사했다.

"선배님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처음에는 부담됐는데, 그게 왕순의 처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갑작스럽게 왕이 돼 신하들 앞에 선 어린 왕순이 긴장하고 날이 서 있는 그런 모습들이요. 그래서 처음 정전에서 많은 선배님들과 연기할 때, 오히려 그 부담감을 이용해 왕순에게 붙여 연기하려 했어요."

결국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대선배들을 대하는 게 부담이라면 현장에서 계속 부딪치면서 편함을 찾아야 하고, 연기에 어려움이 생긴다면 이 역시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풀어가야 한다. 현장의 경험은 배우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기회다. 그리고 그 현장에 최수종 같은 배우가 있다면, 그곳은 양질의 배움터가 된다.

"교과서 같은 최수종 선배님이 계시니까, 많이 여쭙고 배워야겠단 생각이 컸어요. 최수종 선배님이 강감찬을 해주셔서 제가 현종이란 인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현장에서 정말 매 신마다 여쭤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여쭌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해요. (웃음)"

아버지 같은 은인 최수종

김동준은 최수종과 만나는 신마다 자신이 준비해 온 연기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그때마다 최수종은 "이런 부분은 좋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왕순스러울 거 같다"며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줬다. 발성이나 발음 같은 기술적인 면에서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발성이나, 장단음에 대한 차이도 알려주셨어요. 현대물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지만, 대하 사극에서는 장단음을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 부분을 좀 더 깨우친다면 연기를 준비하는 데 훨씬 더 편안해질 것이라 말해 주셨죠. 그래서 그 부분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연기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배웠지만, 무엇보다 김동준은 최수종의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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