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si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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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blot
위블로 빅뱅 메카 10 무브먼트 HUB1201
고급 시계는 많으니까 고급 시계 무브먼트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브랜드도 적지 않다. 요즘은 자사 무브먼트도 자사 무브먼트 중 자신들만의 설계를 거친 것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나가려면 무브먼트를 얼마나 잘 설계했는지를 넘어서 ‘어떤 방향성으로 설계했는가’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위블로의 빅뱅 메카 10은 이 면에서 훌륭한 시도다. 언뜻 보기에도 시계의 톱니바퀴들을 붙들고 있는 뼈대 부분이 일자로 세 개 뻗은 걸 볼 수 있다. 톱니바퀴들을 배열하고 브리지를 설계할 때부터 일정한 조형미를 계산해 디자인했다는 의미다.
셋으로 뻗은 저 뼈대는 위블로가 만들어낸 실험 정신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보통 시계의 무브먼트는 ‘베이스 플레이트’라 부르는 판 위에 톱니바퀴를 배열한 뒤 ‘브리지’라는 부품을 덮고 나사로 고정한다. 이 시계는 베이스 플레이트가 모듈형이다. 사진에 가려진 O자형 뼈대가 있고, 그 위로 사진에 보이는 일자형 뼈대가 세 개 붙는다. 판형 베이스가 아닌 모듈형 베이스라는 점에서 보통을 뛰어넘는 시도고, 그 결과 이 시계만의 고정밀 기계 같은 기능적 미감이 완성된다. 현대적인 시계인 만큼 후면 장식 역시 한층 절제된 점도 눈에 띈다.
Bulgari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무브먼트 BVL 138
무브먼트의 면면으로 고급 시계를 가늠할 수 있다. 설계부터 직접 한 자사 무브먼트인지, 설계한 무브먼트가 특정 기록을 달성했는지.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자사 오토매틱 시계 무브먼트가 들어 있다. 보통 오토매틱 무브먼트는 별도의 추(로터) 모듈을 붙인다. 두께까지 두꺼워지니 얇은 시계에는 들어갈 수 없다. 불가리는 얇은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위해 사진 오른쪽처럼 별도의 작은 홈을 만들고 작은 추를 넣었다. 이런 로터는 작은데도 잘 움직여야 하므로 비중이 높아야 한다.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 부품에 플래티넘을 썼다.
고급 시계 무브먼트의 또 다른 조건은 장식이다. 옥토 피니씨모 무브먼트는 장식 점수도 높다. 사진에 보이는 세로 무늬는 ‘제네바 스트라이프’라 부르는 전통적 고급 시계 무브먼트 장식법이다. 톱니바퀴를 걷어내도 무브먼트의 베이스 플레이트를 모두 페를라주 기법으로 장식했다. 특정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새로운 설계를 했고, 공학적 목표를 달성하는 각 부품의 공예적 완성도까지 높다. 그 면에서 봤을 때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는 두말할 나위 없는 고급 시계 무브먼트다. 럭셔리는 말로 때우는 모호한 이미지가 아니라 세세한 디테일의 총합이다.
Vacheron Constantin
바쉐론 콘스탄틴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무브먼트 4400AS
바쉐론 콘스탄틴이 세간의 ‘5대 시계’ 등으로 꼽히는 이유는 모든 부분에 정밀 세공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무브먼트 전면의 눈에 띄는 세로 무늬는 예의 ‘제네바 스트라이프’다. 금속 부품의 모서리를 보면 별도의 미세한 광택 처리 마감을 한 것도 볼 수 있다. 소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깎아내는 챔퍼링 공정이 적용되었다는 의미다. 기계식 시계의 세계에선 이 공정을 프랑스어 ‘앵글라주’라 부르며, 이 역시 고급 시계 무브먼트의 장식적 요소 중 하나다. 이 시계에서 보이는 나사의 광택까지 의도된 것이니 명품 만들기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다.
이 모든 우수성의 표식이 무브먼트 10시 방향에 새겨진 방패 무늬다. ‘제네바 인증(Poincon de Geneve)’. 제네바주 정부의 주도로 186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증 제도다. 베이스부터 나사까지 이르는 기계식 시계의 모든 부분이 ‘제네바 안에서 높은 수준을 만족시키는지’를 확인하고, 오차나 방수 등 기능적인 부분을 검수해 합격한 고급 시계에만 부여한다. 공예적 우수성뿐 아니라 기계적 정확성까지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고급 시계의 확연한 증표다. 스위스 시계의 전통과 역사는 이런 인증에서 온다.
Omega
오메가 스피드마스터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무브먼트 오메가 1869
오늘날의 모든 스위스 시계는 크든 작든 역사의 산물이다. 기계식 손목시계가 상용화된 지 100년이 넘어도 스위스인은 곳곳에 자신들의 역사를 남겨두었다. 이는 역사의 자연스러운 연속성이기도 하고, 스위스인의 의도적인 보존이기도 하다. 그 결과 스위스 시계는 첨단과 전통이 절묘하게 섞인 오늘날의 취미거리이자 귀금속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역사가 백수십 년씩 된 회사들이 그때 그 이름으로 건재하다는 건 이들이 과거와 현재를 잘 섞으며 살아남았음을 뜻한다. 사진 속 무브먼트에 새겨진 ‘오메가 1869’라는 글씨 역시 역사의 증거다.
최신형 시계처럼 보이는 스피드마스터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 블랙 세라믹 버전에도 이들의 전통이 들어 있다. 시계 속 무브먼트는 오메가 1869인데, 1869의 전신은 그 유명한 문 워치에 들어간 오메가 861이다. 861의 전신은 이제는 없어진 스위스 회사 르마니아의 1873이다. 르마니아는 1960년대에 이 멋진 수동 크로노그래프를 만들었다. 르마니아라는 이름은 사라졌어도 이들이 만들어낸 멋진 구조가 21세기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1869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부를 검은색으로 치장한 버전이다.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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