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에게 보내는 갈채

서울문화사 2024. 3. 1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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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마크 XX의 매끈한 모습 뒤편에 있는 역사와 고민과 멋.

IWC 마크 XX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IWC에서 내는 ‘마크’라는 시계의 20번이라는 뜻이다. 이 시계를 처음 본다면 질문이 따라올 것이다. 마크라는 시계의 20번째 버전이라는 이야기인가, 마크 19도 있고 18도 있어서 거슬러 올라가면 마크 1도 있나, 그렇다면 첫 마크부터 지금의 마크 20까지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이 시계는 가장 최근의 마크이면서 가장 좋은 마크인가 등등.

IWC 마크는 브랜드의 대표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여기서 ‘마크’는 아이언맨 수트에 마크 1, 2, 3, 4를 붙이는 것과 같은 개념의 세대를 뜻한다. 마크는 11부터 시작이고, 마크 11의 역사를 처음부터 짚으려면 시간을 꽤 뒤로 돌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영국 국방부가 파일럿을 위해 발주한 시계가 마크 11의 시초다. 국방부의 발주가 끝난 후에도 IWC는 ‘마크’라는 이름의 시계를 계속 출시했다. 1990년대의 마크 12는 단순하고 깨끗한 생김새로 유명했다. 그 후 마크 시리즈가 계속 출시됐다. 불길한 숫자라고 추정되는 이유로 13, 14, 19는 나오지 않았다. 마크 15, 마크 16, 마크 17, 마크 18을 거쳐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마크 20이 발매되었다.

자동차든 백팩이든 모든 스테디셀러는 비슷한 고민에 닿는다. 시대에 맞춰 조금씩 변해야 한다. 그런데 스테디셀러의 모든 유산을 바꿀 수는 없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길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까? 마크 20처럼 담백하게 생긴 시계도 세부를 뜯어보면 고민이 보인다. 완제품을 보고 구조를 파악하는 역설계처럼, 이 시계를 보며 제작자들의 고민 요소를 예상해보는 게 이런 스테디셀러를 감상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시계에서 남아 있는 것들은 파악하기 쉽다. 일단 마크 + 숫자라는 이름이 남았다. 역대 IWC 마크를 관통하는 디자인 요소들도 그대로다. 그 요소들은 손목시계 장르 중 ‘파일럿 시계’라 부르는 시계의 요소이기도 하다. 파일럿 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일럿들이 실제로 차던 시계를 말한다. 특징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디자인. 그 시절의 항공기 운전은 하늘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는 일에 가까웠기 때문에 언뜻 봐도 눈에 잘 들어오는 디자인이 중요했다. 그래서 시곗바늘이 굵고 숫자가 컸다. 당시 군용품의 기능적 디자인은 오늘날 패션 산업 곳곳에서 디자인의 원형이 된다. 마크 20 디자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2020년대의 마크 20과 1990년대의 마크 12를 비교하는 건 당시의 BMW 3시리즈와 지금 3시리즈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디자인 총론이 그대로라면 각론은 많이 변했다. 2020년대의 마크 20과 1990년대의 마크 12를 비교하는 건 당시의 BMW 3시리즈와 지금 3시리즈를 비교하는 것과 비슷하다. BMW 3을 비롯한 지금의 스테디셀러 자동차들은 그때의 자동차보다 물리적으로 더 크고 디자인 요소가 선명해졌다. 마크 20도 같다. 케이스 크기는 마크 12의 지름 36mm보다 10% 이상 커진 40mm다. 핸즈의 모양도 마크 12와 15 때까지는 사각형이었다가 마크 16부터 지금의 뾰족한 형태로 변했다. 다이얼의 숫자 폰트도 꾸준히 바뀌었다. 마크 12와 15 시절에는 폰트의 끝이 각졌는데 17부터 폰트의 끝이 둥글게 마무리됐고, 마크 20은 상대적으로 폰트가 통통해졌다.

이 모든 변화를 한마디로 정리해야 한다면 나는 대중성이라 답하겠다. IWC는 마크 시리즈뿐 아니라 전 라인업에서 특유의 진지하고 수수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점차 화려해지는 오늘날의 추세에 맞추려는 노력을 보인다. 마크 시리즈야말로 그 노력의 산 증거다.

그 노력의 또 다른 증거가 다이얼 색이다. 마크 시리즈를 포함한 원래의 파일럿 시계들은 검은색 다이얼에 흰색 폰트가 사실상의 원칙이다. IWC 마크의 다이얼도 계속 검은색이었다. 마크 18부터 흰색 다이얼을 도입했고, 현재 출시되는 마크 20은 기본 검은색과 지금 보는 흰색 외에도 푸른색 다이얼과 초록색 다이얼 버전까지 있다. 원칙주의자 애호가는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호가 세계를 벗어나 더 넓은 곳으로 나가야 애호가를 위한 하드코어 모델도 만들어지는 게 현대사회다.

실제 생활에서는 어떨까. 착용감은 훌륭하다. 손목에 달라붙듯 결착되어 흔들리지 않게 자리 잡는다. IWC 파일럿 워치는 말안장처럼 두껍고 튼튼한 가죽을 쓴다. 이날 본 샘플 시계는 내 시계가 아닌 만큼 감기는 느낌이 덜했다. 반대로 이 시계가 내 시계가 되어 가죽이 내 손목 곡선에 맞게 길든다면 착용감도 더 좋아질 것이다. 가격이 800만원 가까운 시계의 착용감이 당연히 좋아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시계도 생각보다 많다. IWC 마크 20 정도면 일상생활에서 편안하게 차는 데 무리가 없다. 전작(60m)에 비해 향상된 방수 성능(100m)도 더 마음 편안해지는 요소다.

파일럿 워치 마크 XX 레퍼런스 IW328207 케이스 지름 40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버클 핀 버클 스트랩 이즈X- 시스템을 장착한 소가죽 스트랩 무브먼트 32111 기능 시·분·초·날짜 표시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만8800vph 한정 여부 없음 가격 770만원

마크 XX의 스트랩을 해체한 모습. 쉽게 해체하고 재조합하며 원하는 스트랩이나 브레이슬릿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
IWC 이즈X 시스템이 적용된 가죽 스트랩. 쉽게 갈아 끼울 수 있고 단단하게 체결된다.
백케이스. IWC 마크 시리즈의 사상적 원형을 보여준다. 원래 파일럿 시계는 항자성을 높이기 위해 두툼한 백케이스를 쓰고, 그런 이유로 파일럿 시계 중에는 상당수의 시계가 유리로 덮는 아직도 금속 백케이스를 쓴다. 가운데 비행기를 새긴 점도 IWC답다.
측면에서 본 모습. 내구성을 위해 두께를 유지하되 최대한 얇아 보이게 하려 디자인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조금씩 변해왔지만 기본적인 레이아웃은 여전한 마크 시리즈의 전통적인 다이얼. 튀지 않는 만큼 단정해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스트랩에 대해서도 따로 한 번 말하고 넘어갈 만하다. 오늘날 시계 스트랩은 점차 교환이 간편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시계 브랜드는 각자의 교환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 소소하게 세상에 알리고 있다. IWC의 줄 교환 시스템에는 이즈X라는 이름이 붙었다. 줄 뒤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쉽게 교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줄 교환이 일상화된 요즘 손목시계 착용 경향에 맞춘 행보라 할 수 있겠다. 줄뿐 아니라 핀 버클을 쉽게 교환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막상 교환하려면 버클 교환이 귀찮을 때가 많은데, 그런 부분까지 배려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착용감과 실용성과 디자인까지 생각했을 때 이 시계가 모두에게 적당히 만족스럽다 해도 너무 과한 아부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마크 20은 대중성을 강화하며 어디에나 잘 어울리는 시계가 되었다. 크기는 성인 남자라면 거의 다 어울릴 지름 40mm 케이스다. IWC 특유의 디자인 균형감 덕에 어느 옷차림에나 잘 어울릴 범용성도 갖췄다. 이 정도의 시계를 구입할 만한 남자들이 입을 법한 비즈니스 캐주얼에 아주 잘 어울린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준점 삼았을 때 그보다 헐렁한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그보다 딱딱한 정장을 입어도, 혹은 밀리터리 룩에 가까운 옷을 입어도 이 시계는 잘 어울릴 것이다. 상황에 맞는 스트랩으로 갈아 끼운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이 기사를 쓰는 내가 목돈 들여 시계를 사려는 소비자인데 이 시계 앞에 선다면 살까? 모르겠다. 나는 1990년대나 2000년대의 시계를 더 좋아하고 그때의 IWC는 상당히 좋아한다. 그때의 IWC는 지금과 조금 다르게 정말 남자의 도구 같은 느낌이 있었다. 지금보다 덜 반짝였다. 로고는 지금보다 작았다. 바보 같은 남자가 아니라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방수 성능 같은 것에 공을 들였다. 모두 준비하고도 생색을 내지 않는, 자신의 디테일을 애써 가리는 걸 멋으로 여기는 남자의 정서 같은 시계였다.

“착용감과 실용성과 디자인까지 생각했을 때 이 시계가 모두에게 적당히 만족스럽다 해도 너무 과한 아부는 아닐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의 IWC가 실용성에 가치를 두는 사람을 위해 디자인되었다면, 지금 IWC는 외향적인 사람을 위해 디자인된 것 같다.” 사람 마음이 비슷한지 빈티지 시계 애호가로 유명한 미국 음악인 존 메이어도 2015년 IWC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미국 시계 전문지 <호딩키> 에디터 안토티 트라이나는 이 말에 공감하며 ‘그때 IWC는 뭔가 다른 남자들을 위한 시계’라고 표현했다. 그 다른 남자들이 추구하던 건 “안티 롤렉스, 안티 럭셔리(적인 자세로 인해 도리어 만들어지는) 럭셔리”였다. 그때 IWC에는 이런 말이 아깝지 않은 멋과 품위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세상이 변한 걸 안다. 저 말을 한 안토니 트라이나마저 세상이 변한 만큼 IWC 마크가 더 친근하고 접근하기 쉬운 시계가 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한다. 나도 동의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만큼 더 타협할 필요가 있다. 시장 추세에 맞춰 더 반짝이게, 로고는 조금 더 크게, 디자인은 조금 더 친근하거나 귀엽게. ‘IWC 마크’가 영광의 이름임을 평생 모를 사람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게. 그게 목적이라면 IWC 마크는 옳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 사이에 여전히 IWC 특유의 성실함과 수수함이 있다. 실물을 만져본다면 그 성실성을 느낄 수 있으며, 마크 20은 IWC의 시계들 중에서도 그 담담한 요소가 가장 잘 느껴지는 시계 중 하나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완고해서 멋있었지만 ‘저렇게 완고해서 어떻게 사나’ 싶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느낌. 그 친구는 세상과 타협하며 조금 느끼해졌지만 그래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려 어떻게든 애쓰고 있다. 그 결과 예전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여전히 예전의 기운이 남아 있다. 내게 IWC 마크 20은 그런 시계처럼 느껴진다. 그 느낌 때문에 이 시계를 조금 더 응원하게 된다.

끌림 요소

+ 일상적인 시계로 사용하기 좋은 단정한 모양새

+ 자세히 봐도 거슬리는 곳이 없는 은근한 고급스러움

+ 마크 11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요소들

망설임 요소

- 작아지는 시계 케이스 트렌드에 역행하는 40mm 케이스

- 남성적이라기에는 조금 귀여운 척하는 느낌의 디자인

- 각종 스펙이나 디테일에 비해 상당히 비싼 가격

Editor : 박찬용 | Photography :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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