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외환위기에 접은 예술가의 꿈, 퇴직 후 ‘활짝’
법학도에서 예술 찾아 떠돌던 ‘자유로운 영혼’
생계 때문에 꿈 접고 사업에만 20년 몰두
한국화 명인 인정받고 대금연주자로 재기
시야 넓히려 메타버스 시민대학 수료까지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화실. 서정병(62)씨가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주위에는 한지 위에 수놓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4년 전 국제문화예술명인명장회가 한국화 명인으로 인증한 그다. 이런 서 화백에게 한국화를 배우려고 찾아오는 어르신도 적지 않다고 한다. 평생을 한국화에 빠져 지냈을 것만 같은데, 조심스레 여쭤보니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완성차 회사의 한 협력사에 다니던 근로자였단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 그림을 좋아했을 뿐이라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어떤 연유로 한국화 명인이 됐을까. 서씨로부터 흘러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0년대 초, 동국대 법학과에 다니던 서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학을 자퇴하고 말았다. 군대에 다녀온 뒤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같은 대학 불교회화과에 편입했다. 평소 가졌던 예술에 관한 갈증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던 것. 배움은 즐거웠지만 졸업 후를 떠올리면 막막함이 밀려왔다.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할 곳도 마땅하지 않았을 터. 그러던 중 문득 그는 대금 연주를 배워 연주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민속관이나 문화회관이 많이 생기던 시절이라 대금 연주를 배워 공연으로 먹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대금에 대해 전혀 모르던 그였지만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금 연주자를 찾아가 열심히 배울테니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밤낮없이 매진하니 몇달 만에 공연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연주 실력이 늘었다. 이후 부산의 동래 민속관에 정식으로 소속돼 활동하게 됐다고.
수입은 넉넉지 않았지만 연주 생활은 즐거웠다. 결혼 전까지는. 막상 결혼하고 자식까지 생기니 돈 쓸 곳은 늘어만 갔다. 좀 더 넉넉하고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던 서씨는 결국 회사원이 됐다. 그곳이 바로 퇴직 전까지 다닌 자동차회사의 협력사였다. 좀 더 많은 돈을 모으고 싶었던 그는 파키스탄이 원산지인 옥을 수입해서 국내에 파는 부업도 시작했다. “열심히 뛴 만큼 수입이 늘더라고요. 회사 일에 부업까지 하면서도 가족들 생각에 피곤한 줄도 모른 채 일했어요.”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온 나라가 휘청거렸고 서씨의 사업도 타격을 입었다. 물건을 받은 업체가 대금을 내놓지 못하면서 서씨는 빚더미에 앉았다. 수습하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이제껏 모아왔던 재산도 모두 잃었다. 가정을 유지할 수 없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이혼까지 했다. 그동안 벌여왔던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다니던 회사 한 곳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서씨는 한 눈 팔지 않고 회사 업무에만 집중했다. 그가 몸담은 회사에는 자동화설비가 막 도입되고 있던 참이었다. PC를 전혀 다룰 줄 몰랐던 그였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나갔다. 대금을 연주할 줄 몰랐던 그가 대금 연주자가 됐던 것처럼. 그땐 좋아서 뛰어들었다면 이번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20여 년이 흘렀다. 서서히 퇴직을 준비하던 그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접어뒀던 한국화를 향한 열정을 꺼내들었다. “결국 붓을 다시 잡았지요. 유명한 선생님의 제자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퇴직 2년 전에는 화실을 열었다. 작품 활동을 활발히 벌인 끝에 여러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2019년 퇴직한 뒤에는 화가 겸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화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교습비만으로도 생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 됐다. 2020년에는 국제문화예술명인명장회 인증을 받아 공식적인 한국화 명인이 됐다. 그 무렵 대금 연주자로도 재기했다.
서씨는 최근 새로운 배움에 뛰어들었다. 3차원(D) 모형과 메타버스다. 벽 한 면을 뒤덮는 화면에 펼쳐지는 미디어아트 작품을 본 뒤 예술과 기술의 융합에 매료된 것이다. 첨단 기술을 사용해 직접 예술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는 부산대에서 진행하는 ‘메타버스시민대학’을 찾아갔다. 서씨는 이곳에서 증강현실(AR)이나 메타버스 관련 프로그램, 서비스 등을 배우며 시야를 넓혔다. 시민대학은 지난달 수료했지만 그의 학구열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다음은 인공지능(AI)예요. 배운 것을 작품 활동에 적용하면서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할 생각입니다.”
박지현 기자 claris@rni.kr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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