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佛·美 등 외세에 저항한 ‘천년 수도’… 폐허 딛고 첨단도시 변신[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2024. 3.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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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34) 하노이
939년 中서 1000년만에 독립
1009년 리 왕조가 나라 세워
일주사·문묘·국자감 등 건축
1883년 佛에 점령당한 이후
호찌민, 독립운동 주역 등장
1980년대 이후 눈부신 발전
베트남 현대문학 거장 바오닌
“끝없는 전쟁 견딘 온순한 민족”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쩐꾸옥 사원과 서호(West Lake).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온후함’이야말로 베트남 민족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온순한 민족이 끝없이 전쟁을 견뎌야 했다는 사실은 큰 비극입니다.”

현대 베트남 문학의 거장 바오닌은 말했다. 베트남 역사의 큰 흐름은 단 넉 자로 요약할 수 있다. 북거남진(北拒南進), 북으로 중국에 저항해 나라의 독립을 지키고, 남으로 참파(남베트남)로 나아가서 영토를 확장한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가 남비엣(南越)을 멸망시키고 그 속주로 삼은 이래, 베트남 역사는 외세의 침입과 이에 대한 저항을 상수로 삼아서 움직였다. 삼국시대 오나라는 이 땅에 교지군(交趾郡)을 설치했고, 당나라는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그 덕분에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이 베트남 사람들의 핏속에 흐르게 되었다.

“쇠로 만든 말 한 마리, 검 한 자루, 갑옷 한 벌, 쇠로 만든 투구 하나를 주시면 제가 사나운 적을 무찌르겠습니다.” ‘특이한 베트남 사람 이야기’에 실린 소년 영웅 타잉종의 전설은 베트남 민중의 저항정신을 선연히 보여준다. 세 살 때까지 말하지도, 걷지도 못하던 이 소년은 중국 은나라가 쳐들어오자 ‘하늘의 장수’라고 외치고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급격히 성장해 적군을 물리친다.

939년 베트남은 약 1000년에 걸친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1009년 리 왕조의 태조 리꽁우언(李公蘊)이 다이비엣(大越)을 건국하고 황제에 올랐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로 장기적, 안정적 왕조(1009∼1225)가 들어선 것이다. 이듬해 다이비엣은 하노이 땅에 수도를 정한 후, 그 이름을 탕롱(昇龍)이라고 지었다. ‘용이 날아오른다’는 뜻이었다.

하노이의 건물과 스카이라인. 게티이미지뱅크

리 왕조 아래에서 중국의 유교 및 불교문화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하노이는 발전을 시작했다. 일주사(一柱寺), 문묘(文廟), 국자감(國子監) 등 현재의 하노이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이 모두 이 시기에 건설됐다. 중국의 발달한 문명은 받아들이고, 독립성은 유지해야 하는 이중 과제가 이 나라의 지정학적 운명이었다. 다이비엣 건국 후에도 송나라, 몽골, 명나라, 청나라, 프랑스, 일본, 미국 등 제국의 침략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끔찍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베트남인들은 독립을 지켜냈다. 천년의 수도 하노이는 항상 자존의 중심에 있었다.

하노이 중앙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를 비롯해 하이바쯩, 리트엉끼엣, 쩐흥다오 등의 거리명은 저항의 역사를 상징한다. 하이바쯩은 40년쯤 중국 지배에 맞서 봉기했던 쯩 자매를, 리트엉끼엣은 10세기 말 송나라 침략을 물리쳤던 리트엉끼엣을, 쩐흥다오는 몽골 침략을 무찔렀던 쩐흥다오 장군을 기리는 이름이다. 호안끼엠은 환검(還劍), 즉 ‘검을 돌려준다’란 뜻이다. 호수 이름은 레 왕조를 창립한 레러이의 전설에서 나왔다.

1407년 명나라가 쳐들어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았다. 전설에 따르면, 레러이는 강에서 나온 보검을 들고 일어나서 명나라를 물리쳤다. 1427년 다이비엣을 건국한 레러이가 수도 탕롱의 호숫가에 이르렀을 때, 물속에서 거북이 올라와 보검을 돌려받았다. 1789년까지 베트남을 다스렸던 레 왕조는 남으로 참파를 정복하고, 라오스에 원정해서 현재 베트남의 정체성을 갖춘다.

레 왕조의 수도 탕롱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17세기엔 인구가 약 10만 명에 이르렀다. 1802년 비엣남(越南)을 세운 응우옌 왕조는 남북 통합을 위해서 수도를 중부의 후에(포化)로 옮긴 후, 1831년 탕롱의 이름을 하노이(河內), 즉 홍하(紅河) 한가운데에 있는 도시로 바꾸었다. 그러나 곧바로 프랑스 침략을 받아 나라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

“선의 뿌리는 자기 마음에 달려 있으니 / 마음이 재주보다 세 배는 더 중요하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 ‘쭈옌끼에우(翠翹傳)’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통속 소설 ‘금운교전(金雲翹傳)’을 시인 응우옌주가 베트남 고유의 한자 표기법인 쯔놈을 사용해 우아하게 고쳐 쓴 작품이다. 주인공 투이끼에우는 집안의 몰락 이후 음모에 빠져 몇 차례나 팔려 가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불행에 굴하지 않고 인내와 끈기로 이겨내 끝내 행복을 되찾는다.

이 여성의 운명에서 베트남인들은 운명에 패배하지 않는 법을 발견했다. 모자란 재주를 걱정하거나 기울어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굳센 마음으로 선행을 쌓아가는 건 봉건 폭압과 외세 침략에 시달려온 베트남인들이 잘하는 일이었다. 이 작품이 베트남 국민문학이 된 이유다.

1858년 기독교 박해 금지, 통상 대표부 설치를 내세운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와 1883년 베트남 전역을 점령했다. 하노이는 1945년까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다. 식민 지배에 대한 베트남인의 반발은 거셌다. 하노이를 중심으로 민족운동과 게릴라전이 이어졌다. 쑤언지에우는 ‘청년’에서 이 암울한 시대에 여전히 약동하는 젊음의 감성을 열정의 언어로 노래했다. “이 심장으로, 이 머리로, 이 마음으로, / 이 몸으로, 모든 직관으로 살자! / 잠에서 깨워라. / 살자! 살자! 충분치 않은 것처럼!”

반식민지 투쟁이 격렬해지고 프랑스 탄압도 심해지는 가운데, 호찌민의 이름이 서서히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엄동설한의 초라함이 없다면 /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도 결코 없다. / 불운은 나를 단련시키고, /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한다.”(‘옥중일기’에서) 초라함에서 찬란함을 생각하고, 불운에서 굳셈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고난을 영광으로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프랑스가 무너지자, 1941년 5월 호찌민은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越盟)을 건설해서 프랑스와 일본을 동시에 타도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1945년 호찌민은 ‘8월 혁명’을 일으켜 베트남 전역을 장악한 후,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 통치하려고 했다. 호찌민은 또다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격렬했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과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중국을 등에 업은 캄보디아와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른 후 베트남은 끝내 승리했다.

하노이 한 마을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기찻길.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그 상처는, 특히 명분 없는 전쟁에 끼어들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미국이 남긴 상처는 너무나 깊었다. ‘전쟁의 슬픔’에서 바오닌은 말했다. “이 땅에 살아갈 권리가 있는 우수하고, 아름답고, 누구보다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쓰러지고, 갈가리 찢기고, 전쟁의 폭압과 위협 속에 피의 제물이 되고, 어두운 폭력에 고문당하고 능욕당하다 죽고, 매장되고, 소탕되고, 멸종되었다.”

전쟁 직후, 미국의 공습으로 폐허가 되었던 하노이는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이 도입된 후 눈부시게 발전해서 고층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서는 등 최첨단 도시로 변모 중이다. 평안한 삶과 평온한 하늘과 고요한 바다 같은 날이 찾아왔지만, 이 번영이 베트남 민중의 숱한 희생의 결과라고 말해선 안 된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가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인간의 모든 유혹을 경계하길 바란다.” 폭력은 폭력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노이의 붉은 강은 오늘도 죽은 자들에 대한 피와 눈물을 머금고 흐르고 있다.

출판평론가

■ 용어설명 - 도이모이(Doimoi)

변화를 뜻하는 도이(doi)와 새로움을 뜻하는 모이(moi)를 합친 말로, ‘혁신 또는 쇄신’을 의미한다. 1986년 도입한 경제정책으로, 베트남에 절망적 침체를 가져온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포기하고, 민간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장려하는 시장 경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정책을 계기로 급속한 경제성장, 문화개방, 생활 수준 향상이 이루어지면서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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