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클락 유예? 영원히 하지말자는 뜻인가? 공부 안하고 시험 보이콧 하는 격[BB Inside]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시범운영을 시작한 피치클락을 둘러싸고 현장의 논란이 거세다.
투구 시간 제한은 주자 없을 때 18초, 있을 때 23초. 제도 시행중인 메이저리그의 각 15초, 20초보다 3초씩 더 주어진다.
타석 간에는 30초 이내에 투구가 이뤄져야 한다. 포수는 피치클락 잔여시간이 9초 남은 시점까지 포수석에, 타자는 8초가 남은 시점까지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한다. 위반 시 수비 쪽에는 볼, 공격 쪽에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된다.
시범운영 중에는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다.
정식 시행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KBO는 올시즌 시범운영 후 내년 도입을 고민 중이다. 후반기 시행 시 예민한 시즌 막판 순위 변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치클락과 연동된 투구판 이탈(견제) 제한 역시 시범운영 중 페널티는 없다.
시범운영일 뿐인데도 현장은 무척 예민하다. 입장에 따라 첨예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범경기 부터 각 구단 사령탑이 찬반으로 팽팽하게 갈려 있다. 현장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건 드문 현상. 이해충돌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LG 트윈스를 필두로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사령탑은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유는 '팬 퍼스트'다.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경기 시간을 줄여 팬들에게 스피디 하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사하겠다는 의지다. 어차피 하려면 올시즌 시범운영을 통해 빠르게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
롯데 자이언츠, KT 위즈, 한화 이글스, SSG 랜더스는 반대 입장이다. 물론 아예 도입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당장은 시기상조로 현장 혼란이 있으니 피치콤 등 제도보완을 통해 조금 더 철저히 준비하고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현장의 선수들도 입장이 엇갈린다.
투수, 타자, 포수 등 포지션에 따라 입장이 조금씩 다르다.
선수 간 입장 차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의무감의 차이가 입장 차이를 만든다. "불편해도 필요한 변화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적응 입장과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걸 꼭 해야 하느냐"는 저항 입장이 공존한다.
사실 선수들의 전반적 정서는 "신경 쓰인다. 불편하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생소함을 동반하는 변화는 불편함을 동반한다. 익숙해지기 전까지 저항은 불가피 하다.
그 부작용을 명분 삼아 극심한 저항이 일어난다. 야심차게 기치를 올린 수많은 개혁이 제자리걸음 하듯 표류하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다.
개혁 주체의 의지와 돌파력, 그리고 문제해결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현장 목소리도 있다. "시범운영만 할거면 올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사실상 피치클락을 영원히 하지 말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시범운영이란 적응과정 없이 퓨처스리그에서만 시행하다 1군에 갑자기 도입할 경우 큰 혼돈이 불가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려면 시행착오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범운영이란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칠 수 있다. 올시즌 1군 시범운영을 통해 크고 작은 부작용을 파악하고 KBO 실정에 맞는 '한국형 피치클락'을 찾아내야 한다. 투포수 간 소통 도구인 피치콤의 도입도 주파수 허가 문제로 미뤄지고 있지만 올 시즌 중 이뤄져야 한다.
자동투구판정시스템(로봇심판·ABS)과 피치클락 도입은 KBO와 10개 구단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한 사안이다. 다만, 한꺼번에 두가지 큰 변화가 현장에 혼돈을 줄 수 있어 피치클락 만은 정식 시행과 페널티를 유예한 것 뿐이다.
구단 프런트의 독단적 결정에 현장 감독들이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부 소통 문제일 뿐이다. 이미 캠프 전 각 구단에 올시즌 피치클락 시범운영은 고지가 된 사안이다.
주도했든, 따라갔든 합의에 의해 시험 범위와 날짜가 정해졌다면 캠프 기간 동안 시험 준비를 했어야 했다.
겨우내 공부를 열심히 해온 학생도 있는데, 처음부터 불만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안한 학생이 임박한 시험을 보지 말자고 강짜를 부리고 있는 모양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당 과목이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피할 길이 없다.
공교롭게도 피치클락 찬성팀들은 활발한 기동력 야구를 펼치는 팀들이다. 지난해는 LG, 두산, NC가 팀 도루 1,2,3위를 기록한 바 있다. 삼성도 올시즌 적극적인 뛰는 야구를 천명하고 있다. 기동력과 도루 저지력의 차이 같은 현실적 유·불리가 피치클락 찬반의 진짜 이유라면 명분은 없다.
승리팀 감독과 선수들은 소감 끝에 늘 팬들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당장 불편하더라도 프로야구의 주인인 팬을 위한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제도로 메이저리그에서 검증된 피치클락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명분이 있고, 방향성이 확실하다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피치콤 등 기술적 보완장치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노력이 병행되야 한다.
변화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생소함도 불가피하다. 적응하고, 완화해 현실에 맞는 최선의 제도를 제련해 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올시즌 시범운영 기간 중 KBO와 각 구단이 해야 할 일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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