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유튜버 문지혁 "1세대 이민자 이야기, 우리문학서 중요"
뉴욕 유학 경험 녹인 소설집 '고잉 홈' 출간…"할 얘기 아직 많아요"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고요. 제 문학적 경험을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엔 많이 헤맸는데 5~6년 하다 보니 실력도 조금 늘었네요."
최근 소설집 '고잉 홈'을 출간한 문지혁(44) 작가는 본업인 소설 창작 외에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종종 번역을 하면서 짬을 내 집중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유튜브다.
구독자 5천800여 명의 '문지혁의 보기드문 책'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그는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진 국내 전업 작가 중에선 사실상 유일한 소설가 유튜버다.
문지혁은 지난 11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설가로서 글쓰기에 몰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시 거기서 빠져나와 분위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한 데 내게는 유튜브가 그렇다"고 했다.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하거나, 소설 쓰기 특강과 노벨문학상 리뷰를 올리는가 하면, 여러 문학 고전에 관한 짧은 영상을 만들어 '먼슬리클래스'(월간 강의)라는 제목으로 주기적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촬영과 편집 등 모든 제작은 본인이 직접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좀 방황하던 2018년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사진과 영상을 좋아하기도 했고, 대학에서 글쓰기와 소설창작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만들었지요."
가장 화제가 된 영상은 3년 전 올린 '2020 수입 결산 : 나는 글을 써서 얼마를 벌었나?'이다.
작가는 2020년 한 해 동안 순전히 글쓰기(번역료 포함)로 번 돈을 본인의 계좌 입금내역을 짚어가며 공개했는데, 글쓰기로만 생계를 꾸려 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예술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신비와 비밀의 영역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돈을 못 버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거든요.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그땐 구독자가 훨씬 적을 때라 부담 없이 했는데 지금은 좀 민망하긴 하네요 (웃음)"
가장 최근에 올린 영상은 최신작인 '고잉 홈'(문학과지성사)의 북 트레일러다.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제목의 홍보 영상에서 문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이렇게 직접 소설집을 소개했다.
"여기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사연은 모두 다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담긴 얼굴은 결코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헤매고 방황하는 미로 속에서 기록하고 기억하며 길을 찾아가는 이들의 느리지만 반짝이는 여정. 문지혁 세 번째 소설집 '고잉 홈'".
'고잉 홈'은 타국에 이민 가거나 유학해서 마주친 생경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방황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담은 단편집이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와 은행 등 직장을 잠시 다닌 그는 미국 뉴욕대에 유학해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전업 작가가 됐다.
전작 장편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는 유학생으로서 겪고 관찰했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냈다. 수록작 '나이트호크스'나 '골드 브라스 세탁소' 등에선 뉴욕의 화려한 이면에 가려진 가혹하고 매정한 현실이 생생한 필치로 담겨 있다.
고국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에 터를 잡고 사는 한국인 이민자나 유학생 이야기들을 다뤄온 그의 문학 세계는 어느덧 문지혁이라는 작가 고유의 정체성과 스타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른바 '디아스포라 문학' 또는 '이민 문학'이다.
"저는 1세대의 이민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창래나 이민진 작가 같은 경우 이민 1세대가 아니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분들이잖아요. 그런 문학도 물론 중요하지만, 1세대 이민자의 이야기는 우리 문학에서 아직 자리가 협소합니다. 제가 외국에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봐요. 그래서 '초급 한국어'라는 작품부터 본격적으로 그런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그에게 유학생으로 잠시 경험한 뉴욕은 어떤 도시였을까.
"저도 뉴욕을 동경했지만 다녀온 지금은 아주 차가운 도시라는 인상으로 남아있어요. 전 세계에서 온갖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누구의 사정을 봐줄 그럴 여유가 다들 없는 거죠. 현실적으로는 유학 당시 돈이 항상 부족하니까 제가 나중에 소설에 쓴 구차한 일들이 많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과학소설(SF)과 소위 순수문학을 오가며 쓰고 있는 문 작가는 이민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을 당분간 집중해서 쓸 계획이라고 했다.
"아직 단편집 하나 정도 더 낼 이야기들이 남아 있고요.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에 이어 장편 '실전 한국어'도 출간계약이 돼 있습니다. '고급 한국어'도 나오냐는 얘기가 많았는데, '고급'은 너무 무거운 말이라 일단은 '실전'부터 해보려고요 (웃음)"
문지혁은 이른바 '미등단 작가'다. 주요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출판사의 신인 문학상을 통해 데뷔하지 않은 작가라는 뜻이다.
그는 2010년 네이버를 통해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면서 데뷔했다. 등단이라는 제도로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대형 출판사에서 장편과 소설집을 꾸준히 내오면서 이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켜왔다.
"데뷔 후 10년 정도까지는 미등단 작가라는 자격지심이 있어서 가명으로 신인문학상에 응모도 많이 했어요. '초급 한국어'를 출간한 이후에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이후 2022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때 '문단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문단의 태도가 좀 달라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제가 하나의 예로서 보여드린 것 같아서 자부심도 느꼈어요."
소설에서 다시 유튜브 얘기로 돌아와 앞으로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냐고 물었다.
"올여름에 소설 작법서를 하나 출간할 계획이에요.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기도 하고요. 글쓰기 방법론 콘텐츠를 좀 더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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