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단색화 작품 같아요”

박상훈 기자 2024. 3. 1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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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노동자가 칠한 본드자국
8일 아침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마루노동자 이모씨(가명)가 시멘트 바닥에 본드를 바르고 마루작업을 하고 있다. 익숙한 솜씨로 빠르게 펴 바른 본드자국이 마치 단색화 작품같다. /박상훈 기자

“이게 예뻐보여요? 특이하게 보시네” 마루 작업 모습이 회화 작품처럼 멋있다는 기자의 말에 이씨가 의아해 한다.

마루 노동자 이씨 입장에선 하루 작업의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숙련된 솜씨로 펴 바른 접착제 자국은 단순히 고된 노동의 흔적일 뿐이다.

“빈틈없이 얇고 고르게 펴 발라야 돼요. 비는 데가 있으면 밟을 때 소리가 나거든. 수십 년에서 평생 쓸 건데 중요한 작업이지. 이때가 제일 예민해져”

필요에 의해서 얇고 고르게 반복되지만, 공간의 형태와 진행 방향에 따라 변하는 비정형의 빗살무늬가 기자의 눈에는 아름다워 보인다.

하루종일 바닥에 무릎을 댄 채 엎드려 12시간 정도 꼬박 일해야 10~15평 정도에 마루를 설치할 수 있다는 이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작업환경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애들이 도와주겠다고 따라온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했어요. 친형도 같은 일을 하는데 형의 아이들이 현장에서 청소나 심부름 조금 하고 용돈 벌겠다고 따라다니다가 아버지가 고생하며 일하는 모습을 보고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렸거든.”

지금은 훌쩍 커 대학원생이 돼 버린 자식이지만 아직도 철이드는 모습을 보기가 싫다는 이씨다. 가족을 위해 매일 먼지 속에서 일하는 마루노동자의 땀이 빛나 보였다.

접착제를 붓고 빠르게 펴내려 간다. /박상훈 기자
이른 아침 햇살에 빗살무늬 본드자국의 질감이 느껴진다. /박상훈 기자
이른 아침 햇살에 빗살무늬 본드자국의 질감이 느껴진다. /박상훈 기자
접착제가 마르기 전에 재단한 합판을 올리고 두드려 이어 붙인다. /박상훈 기자
마루로 채워지는 시멘트 바닥. /박상훈 기자
어두운 새벽 수도권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이모씨가 스스로 전구를 옮겨 달고, 마루 작업 전 그라인딩 평탄작업을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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