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경험하니 와...' 류현진 오목 제구에 3구삼진, KIA 외인도 깨달았다 "공 하나도 놓치면 안되겠구나"
지난 12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KIA의 경기는 비록 시범경기지만,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KBO리그 복귀전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이 경기에서 류현진은 선발 등판해 4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3탈삼진 1실점으로 한화의 9-1 강우콜드 승을 이끌었다.
명불허전의 피칭이었다. 이날 던진 62구 중 66%(41구)가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갔고, 직구(29구)는 최고 시속 148㎞, 평균 144㎞에 달했다. 평균 128㎞의 체인지업(12구), 평균 112㎞의 커브(11구), 평균 138㎞의 커터(10구) 등 변화구도 고르게 활용했다.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건 4회초 무사 2루에서 맞이한 소크라테스 타석이었다. 소크라테스는 2022년 KIA에 입단해 2년간 269경기 타율 0.298, 37홈런 173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27로 정교함과 힘을 고루 갖춘 강타자.
하지만 류현진은 시속 113㎞의 커브, 두 번의 140㎞의 직구로 너무나 쉽게 3구 삼진 처리했다. 소크라테스의 몸쪽에서 바깥쪽으로 멀어지는 커브는 방송사 중계 화면의 스트라이크 존 상 바깥쪽 경계선 한가운데에 정확히 걸쳤다.
그다음이 더 놀라웠다. 2구째 직구는 1구보다 야구공 2개 반 정도 높은 코스로 또 한 번 경계선 바깥쪽에 걸쳤다. 2구와 똑같은 구속의 3구째는 1구째보다 공 2개 정도 낮은 위치에 조금 더 스트라이크 존 안쪽으로 들어온 스트라이크였다. 큰 화면으로 봤을 때는 마치 오목을 둔 듯 일렬로 나란히 형성된, 그야말로 아트 피칭이었다. 이 타석은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 급속히 퍼지며 야구팬들로부터 열렬한 반응을 끌어냈다. '오목 제구'라는 신조어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류현진의 제구력에 가장 놀란 건 직접 타석에서 경험한 소크라테스였을 터. 당시 중계 화면에는 소크라테스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혼잣말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잡혔다. 이날 소크라테스는 류현진과 두 번 만나 내야 땅볼-삼진으로 2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14일 두산 베어스와 시범경기를 앞두고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때의 황당함은 류현진의 제구력에 놀란 건 아니었다. 더 정확히는 ABS가 정해준 스트라이크 존의 생소함이 더 컸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느끼기에는 (3개의 공 모두) 볼이라고 느껴졌다. ABS 시스템이 정한 존이 내가 생각한 거보다 약간 넓은 것 같았다"고 당시 맞대결을 떠올렸다.
류현진의 피칭에 놀라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공 반 개 차이도 조절할 수 있는 류현진의 정확한 제구가 ABS의 강점과 무서움을 실감케 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류현진과 맞대결 후 KIA 타자들 사이에서는 ABS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펼쳐졌다.
소크라테스는 "류현진이 제구를 통해 스트라이크존과 ABS를 워낙 잘 활용하는 선수다 보니 타자들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들 ABS 시스템에 더 적응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만나보니 류현진은 정말 좋은 선수였다. 워낙 대단한 선수다 보니 어떻게 경기를 풀어나가는지 궁금했다"며 "(타자에게) 좋은 공 하나를 놓치면 이제 류현진이 어떻게 나올지 알게 됐다. (계속 놓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좋은 공이 들어왔을 때 하나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도입한 ABS 시스템은 그동안 아쉬운 볼 판정으로 속을 끓였던 선수들을 달래줄 해결책으로 여겨졌다. 아직 메이저리그도 1군 무대에는 도입하지 않은 시스템인 탓에 정확도와 신뢰도에 있어 많은 우려가 뒤따른 것도 사실. 하지만 모든 팀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준에 ABS를 먼저 도입했던 아마야구 현장에서도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1군 무대에서도 현재까진 순조롭다. 13일 KBO의 발표에 따르면 12일까지 진행된 시범경기 19경기 동안 ABS 시스템의 투구 추적 성공률은 무려 99.9%였다. 0.1%의 실패는 중계 와이어 카메라가 이동 중 추적 범위를 침범해 투구 추적이 실패한 경우 정도가 꼽혔다.
그러면서 타자들은 자신에게 적용된 스트라이크 존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해졌다. KBO가 발표한 ABS 관련 운영 개요 및 시행세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 설정은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면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상단은 선수 신장의 56.35%를 적용하며 하단은 선수 신장의 27.64%를 적용한다. 타격 자세는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 타격 자세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지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스파이크의 높이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신장은 맨발 기준으로 측정했다. 이러한 부분을 KBO 심판들이 직접 10개 구단 스프링캠프를 돌며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크라테스는 "(스프링캠프 때 들은 설명과)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다만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번 시범경기는 ABS 시스템을 실전에서 처음 접하고 숙지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빠른 적응을 통해 류현진과 정규시즌 맞대결에서도 조금은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KIA와 한화의 정규시즌 첫 맞대결은 4월 12일부터 14일. 하지만 3월 23일 LG 트윈스와 개막전에 등판하는 류현진의 로테이션 순서를 따진다면 KIA전 등판은 5월까지 밀릴 가능성도 충분하다.
소크라테스는 "다음에 류현진과 만났을 때 안타나 홈런을 치겠다고 말할 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경쟁할 것이고 다음엔 이기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잠실=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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