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듯 싸우는 정치, 어쩌다 이 지경 됐나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한국의 정당들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포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 ‘○○○부대’라 불리는 조직화된 소수가 의사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다. 부정적 당파성 및 정서적 양극화가 깊어졌다. “나의 경쟁자는 ‘악’이고 ‘우리’가 아닌 ‘그들’인 데다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득권 집단이라는 프레이밍을 통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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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이겼다. 트럼프는 불복의 노력을 전방위로 펼쳤다. 급기야 이듬해 1월6일, 그의 선동을 받아 지지자들이 의사당으로 몰려가 폭동을 일으켰다. 이후 미국인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바른 마음’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의 전언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비록 폭동까진 아니지만 야당 대표에게 대한 정치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에 퓨리서치센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개 국가 중에서 시민이 생각하는 정치적 양극화와 대립이 가장 심한 나라로 우리와 미국이 꼽혔다.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해 있는 정치인들이나 활동가들, 그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자들 간에 첨예한 갈등과 날 선 대치는 이미 세계적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영국에서는 2016년 브렉시트 찬반을 놓고 격돌하다 하원의원이 살해당하기도 했고, 브라질에서도 2023년 1월 대선 후에 폭동이 일어났다. 어떤 이슈에서 찬반이 나뉘고, 선거에서 성패가 갈리는 것이야 늘 있었던 민주정치의 일상인데, 근래에 들어서는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대한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정치적 양극화 또는 부족주의라는 개념을 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 하는 것이 호불호를 넘어 강한 정체성이 되어 그에 다른 사안에 대한 판단까지 종속시키는 정도라며 파티즘(partyism)이라는 조어까지 등장했다. 최근엔 이들 개념으로는 부족하다며 미국의 저명한 학자 15명이 종파주의 용어를 제안할 정도로 악화일로다. 과거와 달리 반대정당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가 지지 정당에 대한 애착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느 용어를 쓰든 정치 때문에 사회가 둘로 쫙 갈라져 서로 조롱하고, 죽일 듯이 싸우는 행태는 정치의 루틴을 넘어 디폴트가 됐다. “많은 미국인들이 지금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저자)의 지적은 우리 얘기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3명 중 한 사람꼴로 정치 때문에 친구를 잃는 경험을 한다는 보고가 있다. 자녀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차라리 인종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점점 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지지 정당이 다르면 점점 더 거부감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일상 속에서도 정치 때문에 연인들이 다투고, 부모와 자식 간에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됐다. 정치가 왜 이렇게 나빠진 것일까?
대체로 이렇게들 설명한다. 우선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양극단으로 갈라진 데서 원인을 찾는다. 그래서 중도 유권자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최근의 경향은 이념 차이보다 감정적 대립에 주목하는 정서적 양극화론이다. 정당에 대한 지지를 정체성으로 받아들여 지지정당에 대해서는 호감을,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표시하는 현상이다. 낙태, 동성애·결혼 등을 둘러싼 문화전쟁이 자극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8대·19대·20대 대선을 거치면서 정서적 양극화와 이념적 차이가 동시에 확대됐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애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는 지속해서 강해졌다.(김성연, ‘한국 유권자들의 이념적 정렬과 정서적 양극화’)
정치적 양극화를 설명할 때 당파적 배열도 빼놓을 수 없다. 보수성향의 정치인·유권자들은 보수정당에 참여하거나 지지하고, 진보성향의 정치인·유권자들은 진보정당에 속하거나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처럼 우리도 당파적 정렬이 일어났다. 지난 세차례의 대선을 거치면서 보수정당의 지지층에서 보수 유권자의 비율이 열의 여덟으로 늘어났고, 진보정당의 경우도 두 배가량 늘어나 열의 일곱이 진보 유권자들인 걸로 조사되었다.
미디어에 주목하는 연구도 있다. 어떤 이슈에 주목할지, 그 이슈에 대한 어떤 해석을 내릴지 등 이른바 게이트키핑을 담당하는 미디어가 당파적으로 나뉘면서 편향을 낳아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미디어 생태계는 당파적 분열이 매우 심한데, 1980년대 레이건 정부 때 공정방송 독트린이 폐기된 후 편향적 미디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명박 정부 시절 종편의 등장 다음부터 미디어 편향이 점점 강화되었다.
게다가 소셜 미디어에 의해 이런 정보 편식과 반향실 효과는 증폭되고 있다. 제도효과도 있다. 다당제보다는 양당제가 정치적 양극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선택이 2개뿐이면 크게 양분돼 대립하기 쉬운 탓이다. 양당제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와 친화성이 높다. 1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는 사장된다. 2020년 총선의 경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역구에서 각각 49.9%, 41.5%를 득표했으나 지역구 의석 점유율은 64.4%(163석), 32.8%(83석)로 차이가 대폭 늘어났다. 대통령제도 전형적인 승자독식이다. 이처럼 전부 아니면 무의 정치제도가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메커니즘이다.
정당 간에 지지층 규모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게 경합하는 구도, 선거교착(electoral gridlock)으로 인해 양극화의 정도가 깊어진다는 분석도 있다. 더불어 투표율이 하락하니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책과 조직을 통한 유권자의 동원보다는 이런저런 의혹을 폭로하고, 언론과 의회에서의 조사, 그리고 사법적 기소로 이어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경쟁의 주요 무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서로 감정적으로 용인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민주주의 이론의 대가 쉐보르스키는 약한 정당정치와 강한 당파성을 갖는 시민들의 조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한국의 정당들은 강성 지지층에 의해 포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파티 세력이 미국의 공화당을 우경화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런 현상이 매우 격렬하게 나타나고 있다. 당내 경선 및 그 과정에서의 당원 비중의 확대가 이뤄지면서, 정보기술의 변화로 개인의 의사 표출이 자유로워지면서 ‘친○’ ‘○○○부대’라 불리는 조직화된 소수가 의사결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됐다. 정치인들이 이런 변화를 전략적으로 추동하기도 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편승하기도 하면서 팬덤정치·개인정당화가 활성화되고, 부정적 당파성 및 정서적 양극화가 깊어졌다. “나의 경쟁자는 ‘악’이고 ‘우리’가 아닌 ‘그들’인 데다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득권 집단이라는 프레이밍을 통해 네거티브 캠페인에 집중한다.” 권혁용(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지적이다.
어떻게 설명하든 이런 원인들이 작용해 정치가 실제로 나빠진 터닝포인트가 있을 텐데, 언제일까? 역사학자 윌렌츠나 정치학자 긴스버그와 세프터는 1994년의 깅리치혁명에 주목한다. 공화당이 레이건의 1980년 대선 승리와 더불어 구축한 다수연합이 12년 만에 허무하게 ‘뺀질이’ 클린턴에게 패배한 것이 1992년 대선이었다. 충격에 빠진 공화당이 1994년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하면서 강경파가 득세하기 시작했고, 의회에서의 대여 투쟁에 올인했다. 그때부터 끊임없이 온갖 의혹을 쏟아내면서 급기야 대통령 탄핵까지 밀어붙였다. 또 다른 계기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등장과 리더십이었다. 그가 금융위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티파티 운동이 등장했고, 이로 인해 온건파들이 축출되기 시작했다.
인종정치도 표면화됐다. 그 결과 자당의 롬니가 주지사 시절 도입한 방안을 벤치마킹해 오바마가 추진한 건강보험개혁안에 대해 공화당은 단 1표의 찬성표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정치는 언제부터 극한의 대치와 내로남불,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양극화 정치가 시작된 것일까?
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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