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길동이라 불려요" 나경원 vs "정권심판하라고" 류삼영...동작을 격돌
"교육특구, 사통팔달, 15분 도시 나경원"
시민들의 '퇴근 러쉬'가 시작되는 지난 12일 오후 5시30분. 서울 동작구 이수역 사거리에 나경원 전 의원(61)의 공약을 담은 네 박자 구호가 울려 퍼졌다. 오는 4·10 총선에서 5선에 도전하는 나 전 의원이 지난 4년 간 '닦고 조이고 기름 친' 지역 특화 공약이다.
오전부터 띄엄띄엄 내리던 보슬비가 다시 찾아온 퇴근길이었다. 나 전 의원은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지나가는 시민 한 명 한 명에 인사하며 공약이 적힌 명함을 쥐여줬다. 손에 쥔 명함이 다 떨어지면 우산대를 어깨와 볼 사이에 끼고 재빨리 주머니에 넣어둔 명함을 꺼내 들었다.
귀갓길을 재촉하던 시민들도 "잘 부탁드린다"는 나 전 의원 인사에 목례로 화답했다. "화이팅"이라며 한 손을 들어 올리거나 먼저 악수를 청하는 시민도 보였다. 몇몇 시민은 인근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공약을 읽어보기도 했다.
이날 퇴근길 나길동의 발도 손만큼 바빴다. 그와 캠프 구성원들 서울지하철 7호선 이수역 10번 출구 앞에서 나눠주다가도 약 30m 떨어져 있는 버스 정류장 줄이 길어졌다 싶으면 재빨리 정류장으로 뛰어가 시민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한 고등학생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나 전 의원을 보고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며 캠프 직원에게 휴대전화를 건네기도 했다. 30년 이상 동작구에 살고 있다는 박모씨(81)는 "나 전 의원은 지역구민 뜻을 경청하고 실천해주는 식구 같은 사람"이라며 "세금이 아깝지 않은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1963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해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로 일했다.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제17대 국회에 입성한 뒤 내리 4선을 지낸 중진이다. 이 중 두 차례 동작을의 민심을 얻는 데 성공했으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2020년 총선에서 같은 판사 출신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지역구를 내줬다. 오는 4월 총선에서 류삼영 민주당 후보와 경쟁한다.
나 전 의원은 '와신상담'하며 바닥 민심부터 훑고 지역구 탈환을 준비했다. 그는 이날 더300(the300)과 만나 "여의도 정치를 오래 하다 보면 민심과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온오프라인으로 모든 세대와 꾸준히 소통했다"며 "하루에도 여기저기 번쩍번쩍 다닌다고 주민들께서 저를 '나길동'이라고 부르신 지 꽤 됐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의 1호 공약은 '교육특구 동작'이다. 관내 고등학교 IB 교육(스위스식 학생 참여 중심 수업) 선택적 도입, 과학 중점 자율학교 신설, 학원가 유치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질을 동시에 개선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동작구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교통 체증, 도로 상습 침수 등을 해소하기 위한 '사통팔달 동작'도 내놓았다. 2025년 착공 예정인 이수-과천 복합터널의 착공·완공 시점을 앞당기고 사당로를 지하철 숭실대입구역까지 넓혀 제2의 '테헤란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숭실대에서 삼성역까지 시내버스 노선 신설, 주민 출퇴근 편의를 위한 마을버스 노선 연장 등도 담겼다.
'15분 행복 동작'에는 누구든 집에서 15분 안에 걸어서 문화·체육 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도서관·공원 등 문화 체육시설 확충, 한강 수변공원 조성, 주민 휴양·치유 공간으로의 현충원 재조성 등이 담겼다.
아울러 나 전 의원은 △장애인 가족 활동 보조 수당 도입 △신노년을 위한 인생 2모작 일자리 제공 △군 제대 복학생 월세 지원 1회 추가 지원을 포함한 '든든한 복지 동작' △상업지역 용적률 대폭 상향 △남성사계시장, 먹자골목 등 시장 활성화 △중앙대·숭실대·총신대 파트너십 강화 등 '상전벽해 동작'을 준비했다.
나 전 의원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만나는 시민들께서 '이번 총선에서는 꼭 돼요' '지난번 너무 섭섭했어요'라고 할 때 정말 힘이 난다"며 "지역을 발전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굉장히 어려운 숙제를 푼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으며, 주민들께도 공약을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해 드린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었다.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윤재옥 원내대표, 이철규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땡벌'로 유명한 가수 강진 등이 참석해 응원을 전했다. 나 전 의원은 총선 출정 연설을 통해 "제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곳이 동작"이라며 "지난 4년 주민들 말씀을 듣고 사랑을 느끼면서 정치 속 근육을 키웠다"고 말했다.
이어 "무차별 정쟁과 사법 리스크, 방탄이라는 21대 국회의 오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혐오와 부정의 정치를 단절하고 양보와 타협의 룰을 새로 짜야 한다. (총선에서 당선돼) 합의 정신이 실종된 의회 민주주의를 복원하겠다"고 했다.
"다들 '왜 이제서야 왔냐'고들 하십니다. 제게 '꼭 승리해서 정권 심판해달라'고들 합니다."
지난 12일 오후 1시30분. 류삼영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60)가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쓰인 파란 점퍼를 입고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상도1동 경로당에 빠른 걸음으로 들어섰다. 10여 명의 어르신들 앞에서 큰 절을 한 뒤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한 어르신에게는 "저희 어머니 같으시다"며 "저희 어머니는 아들만 넷인데 제가 셋째라 이름이 '삼영'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앞서 류 후보는 이날 오전 남성사계시장에서 상인들과 인사하던 중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깜짝 방문을 맞았다. 류 후보는 "바쁜 와중에도 직접 와주셔서 큰 힘이 됐다"며 "중요한 지역이라 그런지 이 대표가 내일(13일) 또 함께 해주신다고 한다"고 했다.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류 후보의 유세 현장에 동행 취재를 나선 12일은 류 후보가 선거캠프를 꾸린지 열흘이 갓 지난 때였다. 이날 방문한 류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는 벽 한 켠에 이제 막 인쇄돼 나온 류 후보의 얼굴과 이력이 담긴 대형 플래카드를 붙이고 있었다. 류 후보는 오전 7시 출근길 유세를 시작으로 밤 11시쯤까지 쉬지 않고 지역을 돌면서 유권자를 만나는 강도 높은 일정을 매일 소화한다. 캠프 관계자는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분들을 만나 얼굴을 알려야 한다"라며 "이미 하루에 수 천 명은 족히 만나는 것 같다"고 했다.
부산 출신의 류 후보는 경찰대 법학과(4기)를 졸업한 뒤 35년 간 경찰로 살아왔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장과 반부패수사대장 등을 거쳐 부산연제·부산영도·울산중부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립에 반발해 2022년 전국 경찰서장회의를 주도했다가 한직으로 좌천됐으며, 이후 결국 경찰 조직을 떠났다.
류 후보를 영입인재로 맞이한 민주당은 지난 2일 그를 서울 동작을에 전략 공천했다. 서울 한강벨트 중에서도 핵심 거점으로 꼽히는 동작을에서 '정권 심판론'에 바람을 일으켜달라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심지어 상대는 4선 중진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다. 정치 신인에 PK(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만 살아온 류 후보에게는 선뜻 받아들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다만 류 후보는 "경찰을 지키기 위해 정권에 맞서 싸운 나에게도 명분 있는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충분히 승산도 있다고 봤다"고 했다. 류 후보 캠프에는 그의 막내 딸 류수진(24)씨도 합류해 일을 돕고 있다. 류씨는 "어린 시절 기억 속 아버지는 정의로운 경찰이었다"며 "정치를 하신다고 했을 때 얻는 만큼 잃는 것도 많을 것 같아 걱정도 됐지만 대의명분 없는 일은 안 하시기에 늘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동작구는 호남향우회 조직이 탄탄해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다. 상도동에서 20년 가까이 부동산을 운영해왔다는 48세 이 모씨는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지지 정당도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역시 상도동에 거주하는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52세 남 모씨는 "집값이 오르면서 자신을 '강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막 선거에 뛰어들었지만 길거리에선 벌써 많은 이들이 류 후보를 알아봤다. 지나가다 류 후보와 인사를 나눈, 상도동에서만 10년 넘게 살았다는 60세 김 모씨는 "예전부터 TV에서 워낙 많이 봤고 우리 지역에 나온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경로당에서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류 후보를 본 한 50대 여성은 류 후보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하며 "동작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류 후보의 명함을 웃으며 받으면서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이도 있었고, 지나가던 트럭은 류 후보를 발견하고 잠시 멈춰 창문을 내리고는 "류삼영 화이팅"을 외치고 갔다. 류 후보는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분들이 왜 이제 왔냐며, 꼭 이겨달라고들 하신다"고 했다.
이날 오전 이 대표의 깜짝 방문도 현장 유세에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유세 중 나타난 유튜버 3명은 한 음식점에서 인사를 하고 나서는 류 후보를 기다렸다가 그를 촬영하며 "오늘부터 류 후보만 밀착 마크하기로 했다"고 했다. 선거사무소로 들어가려는 류 후보에게 다가와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고 반가워서 인사드린다"며 사진을 찍자고 하는 여성도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는 이날 이 대표가 류 후보 지지 방문을 하는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류 후보는 이번 총선 공약으로 흑석 수변 공원 조성 및 수변으로 지하 연결통로 개설 △사당·이수·남성 역세권 상업벨트 확대 △총신대·숭실대 4차선 터널 추진 △ 이수·과천 대심도 복합터널 조기 착공 등을 내걸었다. 상도1동 경로당 어르신들을 만난 류 후보는 민주당 총선 공약 3호인 '경로당 5일 무료 점심 제공'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저를 뽑아주시면 경로당에서 무료로 점심을 드실 수 있게 하겠다"며 "제가 파출소장도, 경찰서장도 했다. 제가 상도동을 범죄로부터 안전한 동네로 만들겠다"고 했다.
류 후보는 "선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의 자세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상대 후보는 지지율이 이미 상한선에 다다랐지만 저는 하한선에서 시작하는 단계다. 이제 쭉 치고 올라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서울 동작을은?
서울 동작을은 서울 한강벨트 승부처 중 한 곳으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설욕전'이 펼쳐지는 지역으로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나 전 의원은 21대 총선에서는 초선의 이수진 민주당 의원에게 약 7%포인트(p)차로 패배한 후 지역 탈환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현역 이수진 의원 대신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행정안전부 경찰국 설립에 반발하다 좌천된 '경찰 출신' 류삼영 후보를 전략 공천했다.
서울 동작을은 정동영, 정몽준, 노회찬 등 굵직한 정치인들이 출마해 종로에 이어 '신정치 1번지'로도 불린다.
또한 역대 선거 결과를 살펴보면 동작을 지역 민심은 특정 정당의 손을 맹목적으로 들어주지는 않는 경향을 보인다. 매 선거마다 여야 간 구도와 바람, 인물 등 판세 영향이 강해 정치권이 주요 전략지로 주목하는 배경이다.
17대 총선에서는 이계안 민주당 의원, 18·19대 총선에서는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이 곳에서 당선됐다. 정몽준 의원이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치러진 19대 보궐선거에 이어 20대 총선까지 동작을 민심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21대 현역은 민주당을 탈당한 이수진 의원이다.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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