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들어오면 하향화? 한국에 럭셔리 호텔 없는 이유는… [호텔 체크人]

권효정 여행플러스 기자(kwon.hyojeong@mktour.kr) 2024. 3. 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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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경 폴라리스 어드바이저 대표 인터뷰
20년 넘게 전세계 돌며 글로벌 호텔 세워
한국엔 진정한 럭셔리 호텔 없는 이유 명확해
호텔의 종착점은 ‘웰니스 리트리트’
광화문 포시즌스여의도 페어몬트는한국에 들어오면서 하향됐다.

20년 넘게 호텔로 본인을 증명해온 사람이 있다. 호텔 전문가 한이경 ‘폴라리스 어드바이저’ 대표다. 한 대표는 미시간대와 하버드대학원에서 건축을,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대학원에선 부동산 개발을 공부했다. 전 세계를 돌며 메리어트·힐튼·스타우드 등 글로벌 호텔·리조트 개발 현장을 누볐다. 2018년 ‘폴라리스 어드바이저’ 대표를 맡아 서울 ‘조선 팰리스’, 판교 ‘그래비티’ 등을 오픈했다. 현재 메리어트 그룹 컨설턴트로 국내 신규 호텔 개관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서대문 복합문화공간 ‘원앙아리’에서 한 대표를 만났다. 2021년 저서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과 지난해 ‘웰니스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서 한국 호텔의 현주소와 호텔의 미래를 ‘웰니스(Wellness)’로 제시한 그에게 업계 현황과 한국에 럭셔리 호텔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한 대표는 긴 시간동안 원고 하나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Q. 한국 호텔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한가.
한이경 대표 / 사진 = 김규란 PD
한국 호텔 산업은 전 세계에서 비중이 작다. 한국 시장이 상대적으로 마켓이 작아서 그렇다. 현재 메리어트의 한국 호텔 개수는 약 30개다. 2018년 5월부터 내가 오픈한 게 16개다. 과반수가 2018년부터 지금까지 생겼다. 이를 보면 한국 호텔 산업이 세계적으로 뒤처졌다고 보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다. 호텔은 관광과 연결된다. 한국같이 마켓이 작은 나라는 외국 관광객·출장객으로 호텔을 채우는 게 필요하다.

관광 산업이 나라 GDP에 기여하는 비중이 전 세계 평균 10%다. 한국은 2~3%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남아있는 7~8%를 할 수 있다는 게 기회다. 치고 올라갈 여지가 있다. 케이팝으로 한국에 관심이 높다. 이례적 시기다.

팬데믹 전후로 세상이 크게 변했다. 진정성이 중요해졌다. 인생 목적과 의미와 일치한 곳은 찾아간다는 관광객의 마인드가 주류를 이룬다. 예전엔 에펠탑같이 유명한 곳만 찾았다. 방탄소년단(BTS) 팬덤인 아미만 봐도 지구 끝에서도 온다.

Q. 한국 호텔 산업의 문제점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호텔이 귀족 살롱과 같이 특별한 장소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대불 호텔처럼 외국 자본이 호텔을 세웠다. 이후 일본 자본이 주류를 이었고 70년대 미국 자본이 한국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역사로 인해 쭉쭉 발전해나간 게 아니라 약간 침체를 겪었다. 어디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는데 호텔은 특정 계층의 공간이며 여성이 오면 안 되는 곳이라는 고리타분한 선입견이 있었다.

팬데믹 이후 호캉스 경험 대중화로 호텔은 보다 더 소비되고 있다. 이에 호텔은 소비자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책을 쓴 이유도 대중이 호텔을 쉽게 받아들이며 소비하길 원했다. 고객이 어려워하면 호텔 오너 입장에선 상품을 개발할 동기가 그리 필요치 않다.

호텔은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기에 재벌·자산가의 영역, 남들이 못하는 하나의 취미라는 인식이 있다. 한국 금융 구조와도 연결되는데 한국 사람들 성격이 급하다.(웃음) 투자를 하면 빠른 자금 회수와 수익을 보려고 한다.

호텔은 분양해서 파는 게 아니다. 운영하고 수익을 내서 호텔 전체 가치를 올리는 건데 금융권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더라. 이게 모두 합쳐져 호텔이 늘어나고 발전하는데 구조적인 방해 요건이 되지 않았나 한다. 다행인 건 호텔에 자산운용사들이 뛰어들었다. 호텔을 투자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소비자들 요구가 많아지는 게 요즘 추세다.

업계에선 럭셔리 호텔도 등급이 있다. ‘우버(Uber) 럭셔리’와 ‘어퍼(Upper) 럭셔리’다. 리츠칼튼 리저브·불가리·아만·더 페닌슐라·더 오베로이 같은 호텔이 우버 럭셔리, 리츠칼튼·세인트 레지스·포시즌스· 만다린 오리엔탈·로즈우드는 한 단계 아래인 어퍼 럭셔리에 속한다.
Q. 일본만 해도 아만·불가리 등 럭셔리 호텔이 대거 진출해있다. 한국에 진정한 럭셔리 호텔이 없는 이유는.
미국 ‘아만기리’ 리조트 / 사진=아만
럭셔리 호텔은 일반 호텔보다 투자비가 많이 든다. 객실 크기는 보통 33㎡(10평)이 아닌 49~66㎡(15~20평)은 돼야 한다. 호텔 내 레스토랑이 3개에 연회장 규모도 커야 한다. 럭셔리 호텔 경험이 있는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투입된다. 냉난방 시스템은 사계절 내내 사용 가능해야 한다.

높은 투자비는 곧 ‘땅의 사이즈’와 연결된다. 투자비 회수를 위해 호텔에서 수익 창출을 하려면 객실 가격이 높아야 한다. 팬데믹 이후로 대규모 연회나 결혼식은 잘 안 하는 풍조다.

호텔 주 수입원이 식음(F&B)도 있지만 객실 판매가 중요하다. 한국의 객실 가격은 낮다. 40만 원대를 뚫은 것도 팬데믹 때다. 한국 호텔은 럭셔리 수준의 가격을 설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럭셔리가 들어오려면 1박에 100만~150만 원 쓰는 고객층이 두터워져야 한다. 1년에 한 번 가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런 소비 풍조가 이른 감이 있다.

가능성이 없진 않다. 큰 소비가 가능한 외국 관광객과 출장객이 들어오면 된다. 고객 군은 나뉜다.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고객 포트폴리오 형성을 잘 해내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럭셔리 호텔 진출이 가시적으로 일어나기보단 태핑(수요조사)은 하는 것 같다. 아만과 메리어트 측에도 기존에 없었던 브랜드 의뢰가 들어온다. 중도 포기가 나오는 게 ‘투자비’다. 고급 브랜드들은 요구 조건이 까다롭다. 용산에 ‘로즈우드’란 럭셔리 브랜드가 있다. 또 아만의 ‘자누’가 들어온다는데 좋은 일이지만 개관 이후를 봐야 할 것 같다.

포시즌스나 페어몬트도 격조있는 럭셔리 브랜드다. 한국에 들어오면서 하향됐다. 광화문에 있는 포시즌스나 여의도에 있는 페어몬트도 브랜드가 추구하는 진정한 모습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개관했을 때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지, 수익을 계속해서 낼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한다. 통틀어 봤을 때 한국 호텔이 개선될 여지가 가깝구나 아니면 시간이 걸리겠구나 판단이 나올 것 같다.

Q. 럭셔리 호텔이 한국에 오면 하향화된다고 했는데 어느 부분에서 그런가.
지금까지 경험을 보면, 처음에 20억~30억 원으로 해외 디자이너를 고용해 콘셉트 디자인을 한다. 그들 역량만큼 좋은 객실 그림이 나온다. 개관하면 객실은 그림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는 디자인을 잘해도 한국 업체가 시공 도면을 그리고 비딩해서 건설업체가 짓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손실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오너가 비용 절감을 해야 하는 경우다. 화장실 수전이나 벽지를 해외 브랜드 대신 국내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수입하거나 국내 생산품 위주로 셀렉션이 작다. 모두 수입하면 비용이 드니까 섞어서 하거나 국내로 대체하는데 디자이너가 지정해놓은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포시즌스 브랜드는 원래 도착 경험부터 감동을 주는 호텔로 알려져 있다. 광화문 포시즌스는 부지 크기에 어려움이 있어 들어가기 힘들다. 포시즌스 나름대로의 도착 경험이라는 게 부재한다. 차는 늘 줄 서 있어야 한다.

여의도 페어몬트는 호텔 로비가 맞는지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준다. 로비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호텔 데스크여야 한다. 프런트 데스크를 알려주는 ‘피처 월(Feature Wall)’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보고 간다. 호텔 공식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한이경 대표 / 사진 = 김규란 PD
Q. 한국 럭셔리 호텔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바라보나.
풀어야 할 문제가 첫째로 호텔 오너의 진정성이 중요하다. 왜 다들 호시노야와 아만을 얘기할까. 그곳에 갔을 때 각인된 이미지와 경험이 있는 것이다. 호텔 오너가 진정한 철학을 갖고 있으면 색깔이 분명하게 구현되는 호텔을 만들 수 있다. 프로젝트적인 시각으로 호텔을 접근하면 오너의 진정성이 녹아들 수 없다. 미래에는 해외 경험이 풍부한 진취적인 호텔 오너들이 더 많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는 정부가 같이 움직여야 한다. 한국엔 중요하고 가치 있는 도시들 많지만 관광 인프라가 아직 취약하다. 외국인들이 일생에 한 번 체험할 텐데 관광 산업이 발전하려면 계속 와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케이팝 외에도 관광자원과 문화를 적극 알려야 한다. 백제 문화유산이 예술성이 높다.

Q. 한국인과 외국인이 호텔 이용에 있어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인은 공격적으로 호텔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호캉스 와서 쉴줄도 알아야 하는데 체크인해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더라.

외국인들은 리조트에서 며칠 동안 머물거나 휴식을 취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외국인이 여행 목적에 따라 호텔 이용을 보다 목적에 충실하게 하는 편이다. 역사 도시에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잠만 잘 것인지, 리조트에만 머물 것인지, 치유를 위해 웰니스 리트리트에 갈 것인지.

Q. 전문가 입장에서 바라본 좋은 호텔이란 어떤 곳인가.
서체 마을 돼지여관 / 사진= 한이경 대표 인스타그램(@leekyung_han)
여행 목적에 맞는 호텔이다. 중국 황산 근처 1시간 정도 시골길을 따라가면 명나라와 청나라 양식을 간직한 서체 마을이 있다. 서체 마을에 돼지여관(Pig’s Inn)이 있다. 호텔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다. 중국인은 딱딱한 침대를 선호한다. 침대도 딱딱하고 수압은 약했다. 그런데도 호텔보다 좋았다.
서체 마을 돼지여관 / 사진= 한이경 대표 인스타그램(@leekyung_han)
역사·예술적 체험이 편안함의 잣대를 덮어버린 경우다. 돼지여관은 10만 원 초반대로 가격도 저렴하다. 출장을 가면 회의 장소와 가까운 호텔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숱이 많아 헤어드라이기에 예민하다. 드라이기 소비전력이 1600와트(W) 이상이라 빨리 머리를 말릴 수 있고 인터넷 환경이 좋고 책상이 큰지만 본다.
Q. 중국 최초 웰니스 리조트 ‘상하 리트리트’를 개발했다. ‘웰니스 리트리트’는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데 국내 시장 수요를 전망해 보면.
상하 리트리트 / 사진=호텔 사이트
우리나라는 지금 시작 단계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명상·사운드 힐링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이다. 중국에서 ‘상하 리트리트’를 만들 때만 해도 중간부터 수요에 핵폭풍이 왔다. 중국에는 종교가 없다. ‘마인드풀니스’ 행위가 혼란한 정신 상태를 잡아주는 데 도움을 준다.

한국도 그런 곳이 많다. 예약이 어떨 때는 밀려 있다. 가서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차 마시면서 명상하고 명상 선생님 따라 하고 불 멍하고 별 보는 체험 등이다. 잠재적인 수요가 더 늘고 있다.

Q. 웰니스 사업에서 한국의 막강한 가능성을 얘기해왔다.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보는지.
한국에는 ‘영지(신성한 장소)’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땅은 작지만 국토 70% 이상이 산이다. 산에 대한 많은 얘기와 보물이 묻혀 있다. ‘영지’는 땅의 기운이다. 땅의 기운은 어떠한 치유 효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내추럴 힐링 파워(자연치유력)’다. 요즘 흔히 말하는 탄소 절감과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요소가 의식주에 전통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의’는 촌스럽다고 장롱 구석에다가 처박아 놓은 ‘색동’이 있다. ‘색동’은 음양오행의 상징인 오방색이다. ‘식’은 여러 발효 음식과 나물들로 우린 이미 갖고 있다. 중요한 건 호텔·리조트·웰니스 리트리트 간에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한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스토리텔링에 있다.

우리나라는 건국신화도 있고 구전으로 내려온 민담도 있고 얘기의 스펙트럼이 넓다. 이를 어떻게 버무리느냐. 해외의 웰니스 리트리트를 가보면 좋은 위치에 건물을 지었다. 치유 프로그램은 액티비티나 의료 킬레이션(Chelation) 호르몬 테라피(혈중 중금속 제거)등이 있다.

지리산을 가면 사람들은 ‘빨리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밥 먹어야지’ 하는데 지리산 원래 의미는 ‘지혜의 산’이다. ‘더 엑스퀴짓 위즈덤 마운틴(The Exquisite-Wisdom mountain)’이라고 하는데 이런 성격을 가진 땅에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웰니스 리트리트를 만든다고 하자. 땅을 경계로 지상과 지하가 융합해 시너지가 나오는 웰니스 시설을 만들 수 있다. 산나물이나 절음식을 얹고 지혜의 산과 관련한 선화까지 녹이면 방문객은 일원화된 경험을 누린다.

고객은 감동을 받는다. 감동을 받는다는 건 머릿속에 오래 기억한다는 거다. 그래야만 또 온다. 이런 조합을 가진 웰니스 리트리트를 거의 못 봤고 얘기도 못 들어봤다.

한국의 웰니스 가능성은 매력적이다.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다. 외국 웰니스 주요 인사들과 매년 콘퍼런스에서 얘기한다. “한국은 이런 조합으로 웰니스 리트리트 만들 수 있는데 상품성이 있을 것 같니?” 묻자 마케팅 전문가들이 “내가 가고 싶다”라고 대답한다. 작년에 영국 레저 미디어 그룹이 발행하는 웰니스 매거진 ‘스파 비즈니스’와 인터뷰했다. 주제는 ‘새로운 웰니스 여행지로의 한국’이다. 위의 얘기와 찜질방 문화를 설명했다. 기사 반응을 염려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Q. 가장 이상적인 ‘한국형 웰니스 리트리트’ 시설을 만들면 어떤 모습일까.
한국은 공사비가 많이 올랐다. ESG 실천과 탄소 절감 등을 고려하면 하나의 해결책이자 방안으로 ‘프리패브 조립식 건축(Prefabrication construction)’이 있다. 최근 좋은 상품이 많이 나와서 굳이 기존에 내려오는 건설 공법으로 지을 필요가 없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조립한 것들을 얹으면 된다.

​전통과 기술을 결합하면 더 선도적인 웰니스 상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해외에선 이미 시도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 콘퍼런스를 위해 멕시코 바칼라르에 갔다. 창업가 한명이 멕시코시티에서 만든 조립식 고급 텐트를 선보였다. 정글을 파헤치지 않고 완성했더라. 그게 가능한 시대다.

한이경 대표 / 사진 = 김규란 PD
​Q. 작년까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 위험’ 지역은 118곳으로 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는데, 지방 소멸 위기의 답을 어디에서 찾나.
재밌는 게 지자체 담당자랑 얘기해보면 “여기에 호텔 지으면 오겠어요?”이러더라. 왜 자포자기 발언을 할까 아쉬웠다. 사람들은 없어서 못 가지,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건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국내 관광지를 소비하는 패턴이 생겼다.

​글로벌 체인 호텔이 지방 소도시에 들어가면 장점이 있다. 힐튼이나 메리어트 사이트에서 ‘한국’을 검색하면 아무리 호텔이 오지에 있어도 웹사이트에 뜬다. 예약 시스템은 글로벌망의 고속도로다. 그 자체가 굉장한 PR이다. 글로벌 체인 호텔이 소도시에 들어가면 외국 관광객 유입도 더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호텔 직원을 메꿔야 하니 일자리 창출도 되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호텔 규모는 100실 정도면 괜찮다. 글로벌 브랜드에는 아침만 주는 호텔이 있다. 투자비도 훨씬 적게 든다.

호텔과 관광은 맞닿아 있다. 관광이 파생할 수 있는 ‘GDP 기여도’ 측면에서 봤을 때 처음에는 효과가 적을지언정 점차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Q. 건축가로 일하다가 호텔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유가 있나.
우연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부동산 개발은 백인 남성이 주도하는 업계였다. 동양인 여자, 영어가 제2외국어인 사람은 힘들었다. 이력서를 100군데를 돌려도 어렵더라. 그러던 중 하나 받아준 곳이 스키 리조트를 개발하는 캐나다 회사 ‘인트라웨스트(Intrawest)’였다. 그때부터 호텔 리조트 복합사업 분야로 들어섰다. 다른 상품 개발 사업보다 재밌었다. 쭉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Q. 당시 남초 집단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일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이겨냈나.
지는 것을 싫어한다. 외적인 평가에 의존하기 싫어 죽기 살기로 일했다. 그때 아이가 5살이었다. 아이도 내팽개치고 일단 증명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호텔은 나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살다 보면 다른 이의 잣대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세계 각지를 가도 결국 ‘팩트’로 승부했다. 지식, 경험과 팩트는 직접 일해서 얻을 수밖에 없기에 중요한 자산이 됐다.
Q. 세계를 돌며 호텔 세우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이 50년 넘은 작은 여관을 산 일이다.
원앙아리 외관 / 사진=권효정 기자
원앙여관을 처음 봤을 때 감정적으로 끌렸다. 뭘 할지 생각도 하지 않고 덥석 사버렸다. 원앙여관은 1960년대 서대문 구치소에 옥바라지를 하던 가족이 머무르던 곳, 도시에서 경제적 약자들이 거처하던 곳이었다. 공간에 사연이 많았다.

인간의 역사는 보통 사람들의 삶도 포함한다. 좋은 역사는 쉽게 얘기하는데 슬픈 역사는 뒤로 빼는 경향이 있다. 슬픈 역사를 앞으로 내놓고 웰니스 공간으로 전환시키고자 했다. 웰니스 공간은 위로와 감동을 전할 수 있어서다.

원앙아리 1층 내부 / 사진=권효정 기자
그리고 30년 만에 한국을 왔는데 적응을 못했다. 왜 다들 똑같은 방향으로 생각하는지, 왜 하나의 정답만 있는지가 답답했다. 다양한 해결책이 있고 정답이라는 건 관점에 따라 재정의되기도 한다. 원앙여관 역사와 내적갈등을 해소하고 싶었다. 웰니스 공간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 ‘원앙아리’를 만들었다.
Q. ‘원앙아리’ 는 무슨 의미인가.
건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드물지만 슬픈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는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여관의 역사를 보존하고 싶었다. 앞 글자 ‘원앙’과 ‘아리아리’가 순우리말로 ‘힘내자’란 뜻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머물던 분과 오게 될 분이 ‘힘을 내서 각자의 인생을 재밌게 살자’란 의미를 담았다.
Q. 좋은 호텔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경험을 하려고 하나.
상하 리트리트 / 사진=호텔 사이트
우선 ‘관찰’이다. 새로운 분야에 진입하면 그간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야한다. 웰니스를 처음 접한 2012년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지나고 보니 이 길을 가야만 했구나 생각한다. 당시엔 명상도 요가도 안 했다. 웰니스에 적합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이해하는 게 필요했다. 도교 명상부터 인도 명상까지 다양하게 시도했다. 요가와 필리핀 전통 무예인 타이치도 해봤다. 유럽 유명한 웰니스 리트리트도 찾아 갔다.

웰니스나 호텔 같은 곳은 경험을 통해 공간 분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라는 건 개인적으로 하드웨어로 표시하는데 소프트웨어적인 측면(프로그램과 서비스 등)을 함께 고려하며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웰니스 포럼 이미지 / 사진= 한이경 대표 인스타그램(@leekyung_han)
해외를 다니며 얻은 경험·지식·네트워크를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 직업은 한국에서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거의 없는 일이다. 재밌는 직업이다. 노하우를 물려주고 싶은데 호텔 숙박업은 할 일이 많다.

호텔을 완성할 때마다 배우는 게 많았다. 남들은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난 뭘 피해야 할지 아니까 관광 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 지방 소도시에 숙박료 10만~15만 원 사이의 글로벌 브랜드 최저가 호텔을 생각하고 있다.

지방 소도시 호텔이 사람들을 유입하는 창구가 되고 전 세계 기류인 웰니스를 녹여 가장 한국적이지만 글로벌한 성격의 웰니스 리트리트를 만들고 싶다. 다른 차원의 한국을 알게 하고 싶다.

해외에 나가서 감사하게 30년 동안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간 보고 배우고 느꼈던 것을 다음 세대에게 나눠주고 싶다. 스스로가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결국 본인이 행복하다. 딸이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쉽게 펼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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