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죽음 천착한 욘 포세와 그 글이 ‘나를 살렸다’는 독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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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민음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세계문학전집 신간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다.
'멜랑콜리아'만 해도 그나마의 줄거리가 있다.
"나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을 쓰고 싶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으며, 오직 글로 쓸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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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l 문학동네 l 1만3500원
지난해 민음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세계문학전집 신간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다. 2023년 주어진 노벨문학상의 후광을 감안해도 기록될 만한 일이다. 국내 전례 없이 낯선 소설로 독서 지평을 넓혔단 얘기이기 때문이다. 몇몇 인플루언서를 좇는 대세 추종의 독서 풍토 바깥, ‘사건의 지평선’이랄까.
이번 작품은 ‘샤이닝’(원제 ‘Kvitleik’, 순백색)이다. 욘 포세(65)가 데뷔 40주년인 지난해 발표한 최신작이 속도감 있게 직역 소개됐다. ‘멜랑콜리아’만 해도 그나마의 줄거리가 있다. 인물이 있고, 오가는 거리와 대화들이 있다. ‘샤이닝’은 그조차 소거시켜, 침묵의 언어로 “지금 이 순간” “여기”의 내막을 파고든다. 작가 특유의 분절된 독백, 그 언어의 강박적 반복 내지 전복과 시적 리듬이 한 호흡으로 절정까지 치닫는 모양새다.
소설 속 남자는 신원을 알 수 없다. 차를 몬다. 정처가 없다. 지루해지고 공허해진다. 눈앞의 숲으로, 급기야 숲속으로 계속 들어간다. 더는 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을 때야 차는 선다. 눈이 내리고, 피곤이, 어둠이, 추위가, 공포가 몰려온다. 남자는 숲을 벗어나고 싶다. 묻는다. “…내가 숲속으로 들어온 것은 얼어죽고 싶어서였을까. 아니,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죽고 싶은 것일까.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차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숲속 눈길을 헤매는 남자에게 “순백색의 밝은 빛”의 형체가, 남자를 찾는 부모의 형체와 목소리가,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과연 숲을 헤쳐 나갈(올) 것인가. 아니, 벗어나고는 싶은 건가. 그렇다면 왜인가. 애초 숲으로 들어간 덴 이유가 있던가. 내면의 질문들은 ‘침묵’으로 도달 가능하고, 어떤 질문도 혹여나 답을 구하기 전 질문 자체에 도달되어야 함을 소설은 하나의 거대한 시처럼 은유해낸다. 남자의 시간은 하루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집)―길―숲’으로 전개되어, 마침내 ‘맨발의 존재’로 “텅 빈 무(無)”의 공간에 들어서는 생애 전체를 압축한 듯 보인다. 신과의 만남일까. 이야기의 끝은 ‘죽음’으로도, 또 다른 삶의 기점으로도 읽힌다. 분명한 건 “이해가 아니라 단지 경험할 수 있는 일”투성이라 소설은 “문득” “문득”으로 잇대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실을 표명한다는 점이다. 남자가 처음 만난 ‘빛’은 말했다. “나는 항상 여기 있고, 여기에는 항상 내가 있다.”
“나는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을 쓰고 싶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으며, 오직 글로 쓸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일부다. 그해 내놓은 소설 ‘샤이닝’이 저 명제의 가장 선연한 입증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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