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생식기에 이렇게 무지했다니 [책&생각]

한겨레 2024. 3. 15. 05: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프로이트는 1931년에 쓴 '여성의 성'에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서로 다른 성적 발달을 보인다고 봤다.

여자아이는 어릴 때 남자가 되고 싶어하다가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부터 반항하며 자신의 성기가 주는 즐거움에 탐닉하다가 결국에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여성은 질을 통해서만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명제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집어졌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버자이너
과학의 ‘아버지’들을 추방하고 직접 찾아나선
레이철 E. 그로스 지음, 제효영 옮김 l 휴머니스트 l 2만7000원

프로이트는 1931년에 쓴 ‘여성의 성’에서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서로 다른 성적 발달을 보인다고 봤다. 여자아이는 어릴 때 남자가 되고 싶어하다가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부터 반항하며 자신의 성기가 주는 즐거움에 탐닉하다가 결국에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음핵’을 이 과정의 열쇠로 보았다. 아동기에 남자아이들이 음경을 만지듯 여자아이들은 음핵을 만지며 자연스러운 성적 쾌감을 느낀다. 여기서 음핵은 음경의 대체재일 뿐이기에 여자아이는 어느 순간 ‘남근이 없는 작은 존재’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생식기의 중심이자 쾌감의 중심을 음핵에서 질로 옮겨간다. 이에 따라 프로이트에게 성인기 여성이 음핵 중심의 쾌감을 추구하는 것은 음경을 가지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유물에 집착하는 태도로 정신병리학적 치료 대상이었다.

정신분석적 해석에서뿐만 아니라, 인류 의학사에서 음핵은 철저하게 무관심 또는 무쓸모의 대상이거나 또는 성적 타락을 예기하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 초까지 여성의 성욕이나 자위를 막는다는 이유로 음핵 절제술이 무분별하게 시행됐고, 지금도 아프리카에서는 음핵을 비롯한 여성생식기를 영유아기 시절 절단하는 시술이 만연해 있다.

정상적인 여성은 질을 통해서만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명제는 2000년대 들어서야 뒤집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의학자가 수많은 문헌 자료와 해부,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종합해 ‘질은 발기 조직이 아니며 특별한 감각기관도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킨제이 보고서’ 등을 통해 알려진, 대다수 여성들이 부부관계에서 질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실의 이유가 규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질을 통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삽입 성교의 움직임이 질 벽을 통해 인근 음핵의 여러 부위에 자극을 전하면서 쾌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의학사에 ‘질 중심주의’가 있었다고 해서 여성의 질이 그렇게 열심히 연구된 것도 아니다. 여성 3명 중 1명 꼴로 세균성 질염을 앓고 있지만 치료법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도 없었고, 연구 지원도 연구 의지도 없었다.

‘버자이너’는 음핵, 질, 난자, 난소, 자궁 등 여성의 몸에 대한 의학적 무관심으로 비롯된 오류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연구를 촉구하는 책이다. 책은 또 남성 과학자, 남성 의학자 주도 하에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외되고 탄압받아왔는지 보여주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미국의 여성 과학저널리스트가 방대한 인터뷰와 문헌을 바탕으로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썼다. 한편의 소설처럼 단숨에 읽히는 것은 섬세한 번역의 공이 크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