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피폐했던 조선 후기, 민중은 공유와 공생을 염원했네
조선후기 문학 속 이타·시여 연구
순수 선행에 보상 따르는 이야기
피폐해진 현실의 낭만적 탈출구
이타와 시여
조선 후기 문학이 꿈꾼 공생의 삶
강명관 지음 l 푸른역사 l 1만7000원
조선 후기의 동래 상인 김성우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오로지 남을 위하는 일에만 쓴 인물로 이름이 높았다. 스스로는 “겨우 끼니를 때우고 몸만 가렸을 뿐, 한 뼘 땅뙈기를 일구지도, 한 자 집을 짓지도 않”고 “오직 궁한 사람을 구제하고 급한 사람을 돕는 것만 일삼았을 뿐이었다. 자신의 이목이 미치는 한, 혼기를 놓치거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양식이 바닥난 나그네가 있으면, 친하거나 소원하거나를 따지지 않았고 또한 도와주었노라 생색을 내는 법도 없었다.” 한운성(1802~1863)이 쓴 ‘김성우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문학자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가 새로 낸 책 ‘이타와 시여’에는 김성우와 비슷하게 이타와 시여(조건 없는 증여)를 업으로 삼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상인 최순성은 수만금을 따로 갈라 두고 ‘급인전’(急人錢)을 설치해 “가까이로는 친척과 친구로부터 멀리로는 다른 군읍의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까지 만약 곤궁한 자라면 급인전을 내어 도와주었다.”(김택영) 누군가를 도울 일이 생기면 “허둥지둥 달려가는 것이 나그네가 해가 저물기 전에 발길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고 박지원은 묘갈명에 썼다.
조귀명(1693~1737)이 쓴 ‘김유련전’의 주인공 김유련은 어떤가. 그는 “거지가 찾아와 구걸을 하면, 사람 수가 많건 적건 따지지 않고 밥을 차려 먹이고 필요한 것들을 넉넉히 챙겨 보냈다.” 소문을 듣고 걸인과 유민들이 더 많이 찾아오자 그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비웠고, 넓은 집과 행랑을 따로 지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머무르게 했다. 김유련은 “유민들 사이에 끼어 그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밥을 먹었”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 심지어는 관아에서 공명첩을 내리겠다고 했음에도 끝까지 거부하다가 매를 맞기도 했다.
‘이타와 시여’는 조선 후기 문학작품에 나타난 이타적 행위와 그에 대한 보상이 어떤 맥락과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고든 책이다. 1795년 제주도에 기근이 들었을 때 거금으로 쌀을 사들여 굶주린 이들을 구제한 김만덕, 평생 모은 돈을 성균관에 기증한 두금처럼 여성으로서 시여에 적극 나선 이들도 있고, 구전되는 이야기의 형태로 시여와 그에 대한 보상을 다룬 작품들도 소개된다. 지은이 강명관 교수는 특히 조선 후기에 이타적 행위와 시여를 담은 단편소설과 설화 등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보고, 그 작품들에 반영된 사회 현실과 민중의 염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타와 시여라면 물질적 도움을 베푸는 형태가 가장 흔하지만, 의료 행위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충청도 태안의 의사 조광일은 오직 침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몰두했으며 가난하고 힘 없는 백성들을 특히 챙겼다. 홍주목사로서 조광일을 접했던 홍양호(1724~1802)는 그를 두고 이렇게 썼다. “조생은 의술이 높았지만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널리 베풀었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남의 급한 일에 달려갔지만 반드시 궁하고 권세 없는 사람에게 먼저 달려갔으니, 그 어짊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조광일만이 아니었다. 경상도 예천의 장씨 집안 사노였던 응립은 대가를 전혀 받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치료했는데, 그 덕에 병을 고친 부자가 감사 표시로 몰래 응립의 아내에게 돈을 보내자 그 사실을 알게 된 응립은 그 돈으로 소를 사서 보내며 이렇게 말한다. “이 길을 열 수는 없는 법이지.” 치료비를 받는 길을 열 수는 없다는 말이다.
박지원의 한문소설집 ‘옥갑야화’에 실린 역관 홍순언 이야기는 홍순언의 은혜를 입은 애첩 때문에 명나라의 예부시랑 석성이 조선을 도왔다는 내용인데, 강 교수는 관련 사료를 검토한 결과 이것이 “사실이 아닌 창작”이라고 바로잡는다. 그럼에도 홍순언의 선행이 커다란 보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이타-보상’의 구조를 지닌 서사물에 대한 민중의 갈망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그는 헤아린다. 조선 후기 한문 단편 가운데 시여를 다룬 ‘거여객점’ ‘고담’ ‘귀향’ ‘비부’ 등의 작품들은 대체로 실패하고 좌절한 주인공이 보상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 행위를 한 뒤에 스스로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가 뜻밖에도 커다란 보상을 받는다는 비슷한 구조를 지닌다. 이런 작품들에서 이타가 보상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낭만적 상상력의 발현이라 하겠는데, 이런 낭만적 상상력이야말로 ‘이타적 심성의 리얼리즘’이라 부를 만하다고 강 교수는 쓴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 이타-보상담을 담은 문학작품이 양산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시는 전쟁과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 기근, 전염병 등으로 민중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진 무렵이었는데, 그들을 보살펴야 할 국가와 양반 계급은 오히려 수탈과 비윤리적 부의 축적에 매달리고 있었다. ‘흥부전’에서 놀부가 흥부의 빈곤을 방치한 것은 “농민의 빈곤화를 방치했던 사족-관료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고, “비윤리적인 부자는 징치되어야 하고 그 부는 분배되어야 한다는” ‘흥부전’의 결말은 그에 대한 문학적 해결책이었다는 게 강 교수의 해석이다.
흉작이 들자 같은 동리의 500여 가구 1300여명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소와 농량(농사짓는 동안 먹을 양식), 종자까지 대어 준 단편 ‘귀향’의 주인공 최생, 그리고 실존 인물들인 김성우와 최순성, 김유련 등의 이야기는 커다란 사회적 위기 앞에서 이타-보상담에 목말랐던 민중의 염원을 보여준다. 부는 나누어야 하고,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유와 공생의 관념이 그 이야기들에는 담겨 있다. 강 교수는 머리말에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와 노숙인에게 점퍼를 벗어주는 시민의 모습을 담은 ‘한겨레’ 보도사진을 언급한 뒤 이렇게 쓴다. “지금 사회에 이런 이타적 행위가 존재한다는 것, 또 너나없이 그 이타행에 깊이 감동한다는 것은, 이 아비지옥을 건너 저쪽 언덕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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