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우파 보수주의에 생존 걸린 오늘의 자유주의 [책&생각]
“보수주의 역사는 자유주의와의 타협과 저항…
‘강경우파’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뒤흔들 것”
보수주의
전통을 위한 싸움
에드먼드 포셋 지음, 장경덕 옮김 l 글항아리 l 4만2000원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다른 ‘주의’들도 마찬가지지만, 보수주의는 특히나 우리가 그 알맹이가 무엇인지 설명해내려 할 때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함정들을 파놓는다. 예컨대 보수주의는 재산권을 보호할 ‘큰 정부’를 요구하는가, 경제활동에 간섭하지 않을 ‘작은 정부’를 요구하는가? 자국 산업을 키우기 위해 ‘보호 무역’을 주장하는가, 더 큰 경제적 번영을 위해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가?
영국의 정치 전문 언론인 에드먼드 포셋(78)은 정치에 대한 3부작 저작을 이어가고 있는데, ‘자유주의: 어느 사상의 일생’에 이어 두 번째 책 ‘보수주의: 전통을 위한 싸움’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지은이는 이번 책에서 서구 역사 속 보수주의를 “정치적 전통 또는 관행”이란 틀로 파악하려 시도한다. ‘무엇’에 해당하는 보수주의가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라고 묶일 수 있는 발자취가 있다고 보고 이를 뒤쫓는 접근법이다. 영국·프랑스·독일·미국 네 나라를 분석 대상으로 삼아, 보수주의 역사를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를 ‘정당과 정치가들’과 ‘사상과 사상가들’로 나눠서 살펴보는 작업이 이채롭다.
기본적으로 지은이는 보수주의를 ‘자본주의적 근대’와 이를 떠받친 힘인 자유주의에 대한 저항과 타협의 역사로 파악한다. 프랑스 혁명 등으로 유럽에서 옛 체제가 해체될 때 에드먼드 버크(1729~1797), 조제프 드 메스트르(1753~1821) 같은 이들은 ‘혁명의 비판자’가 되어 뒷날 보수주의가 물려받아 활용하게 될 자원들을 남겼다. 이 보수주의 선구자들이 볼 때 “혁명은 변화를 실행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그릇된 관념에 오도돼 안정과 질서를 파괴했다.” 근대 자본주의를 끌어안은 자유주의자들은 갈등을 인정하고, 권력에 저항하고, 진보를 믿고, 모든 이를 시민으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근대의 변화를 기획했다. 이런 변화가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파괴한다고 본 이들이 보수주의자가 되었다. 체스에 견주자면, 자유주의가 백을 잡아 먼저 움직였고 보수주의는 “내일이 오늘 같기를 바라며” 흑을 잡은 셈이었다.
주목할 대목은 흑을 잡은 보수주의가 결국 이 체스판을 주도했다는 역설이다. 옛 체제가 이미 깨어진 상황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확립된’ 질서의 구도를 공유하자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면 그 그림은 변화하는 시대에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적응하고 현대화해야 했다.” 보수주의 1기(1830~1880) 때부터 보수주의자들에겐 ‘저항 아니면 타협’이라는 두 갈래 길이 주어졌는데, 타협은 자유시장·선거민주주의 등 자유주의가 만든 틀 안에서 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했다. 중산층을 확보하여 근대 정당정치 속에 보수주의를 안착시킨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 등은 보수주의의 타협과 그 보상으로서의 정치권력을 잘 보여준다. 타협에 나선 보수주의는 ‘모두를 위한 투표권’(선거민주주의)에서 우파 자유주의와 만났고, 이들은 함께 왼쪽의 ‘모두를 위한 경제적인 몫’(경제민주주의)에 저항했다. 보수주의 2기(1880~1945)를 거치며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공개 경쟁 속에 “마침내 민주적 자유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선거 승리와 집권으로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적인 현재의 소유자가 됐”지만, 보수주의는 “차별성과 정체성 면에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파 자유주의와 다른 보수주의란 과연 무엇인지 등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와 지향은 여전히 모호한데다 때로 모순적이고,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저항하는’ 우파는 늘 보수주의 내부에 남아 있어 언제든 그 공간을 차지하려 들었다. 카를 슈미트(1888~1985)나 샤를 모라스(1868~1952) 같은 사상가들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극단으로 끌고 가 질서와 욕망을 모두 충족시켜준다는 자유주의 자체가 모순적임을, 그래서 “진실한 보수주의자가 보기에 민주적 자유주의와의 타협은 절대 전술적인 것 이상이 될 수 없”음을 강변했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교집합 삼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공개 경쟁은 보수주의 3기(1945~1980)를 지배했고, 4기(1980~현재)로 넘어온 뒤엔 전지구적으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승리했다는 섣부른 예견까지 낳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요구가 늘어남에 따라 보수의 타협에 따르는 비용도 커졌”다. 지정학적으로 미국에 대한 테러 공격(2001), 아프가니스탄·이라크에서 미국이 주도한 분열적인 전쟁, 경제적으로 세계적인 금융 붕괴(2008)와 그에 따른 긴축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들은 더 오른쪽에 있는 반대 세력을 깨웠다. 트럼프, 브렉시트 등 2016~2017년 미국·영국 등에서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이 흐름을 지은이는 ‘강경우파’라 부른다. 강경우파는 “작은 정부를 원하고 사회적으로 관대하고 국경을 무시하며 경제적 세계화를 선호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문화적 정체성 및 국가 쇠퇴에 몰두하며 자국민을 우선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이상한 짝짓기에서 유래”했다. 지은이는 이들이 ‘극우’, ‘파시스트’와 다르다고 보고, 새롭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언제나 거기 있었던” 것, 곧 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보수주의의 한 전통으로 파악한다.
문제는 이들이 극우나 파시스트가 아니어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데에는 치명적이란 사실이다. “강경우파는 요컨대 이상하거나 극단적이지 않았다. (…) 실제로 그들은 대중적이고 정상적이어서 걱정스러웠다.” 지은이는 무엇보다 그들이 “권력으로부터의 보호와 모두를 위한 존중이라는 한쌍의 자유주의적 요구”를 내팽개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의 큰 전제는 “자유민주주의가 번창하는 것은 차치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우파가 지지하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할 때 자유민주주의의 건전성은 위태로워진다.” 과연 오늘날 보수주의는 강경우파의 유혹을 뿌리치고 다시금 ‘흔들리는 중도’를 함께 재건하는 데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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