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반장 선거를 앞둔 너와 함께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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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시간에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과 '선거용 문구'를 만들어 보았다.
지우는 2학년 때부터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반장을 안 뽑는다고 해서 막 울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지우네 반 선거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까 봐 망설였는데, "저는 안 나갈 건데, 그래도 써보고 싶어요." "재미있겠다!" 하며 벌써 연필을 든 어린이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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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의 선거
다비드 칼리 글, 마갈리 클라벨레 그림, 김이슬 옮김 l 다림(2021)
글쓰기 시간에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들과 ‘선거용 문구’를 만들어 보았다. 지우의 제안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지우는 2학년 때부터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반장을 안 뽑는다고 해서 막 울었다고 했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조만간 선거가 있을 것이고, 자기는 꼭 나갈 거니까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할지 연습하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지우네 반 선거에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까 봐 망설였는데, “저는 안 나갈 건데, 그래도 써보고 싶어요.” “재미있겠다!” 하며 벌써 연필을 든 어린이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말풍선 모양 메모지에 공약을 써보기로 했다.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을 거라고 하자 지우는 “당연하죠. 선생님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 하고 응수했다.
후보들의 공약은 각양각색이었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다 사주겠습니다! 여러분의 의자를! 푹신하게 해주겠습니다!” 하는 희수 발표에 지우가 “그런 거 쓰면 안 되는 거야. 지킬 수 있는 걸 써야지” 하고 대꾸했다. 지우는 야무지게도 “교실에 (상비용) 우산을 놓겠습니다” “연필깎이를 교실 곳곳에 놓게 선생님께 말하겠습니다” “쉬는 시간에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을 가져오겠습니다” 같은 현실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과연 일 년을 별러 온 후보다웠다. 서훈이는 자기소개를 중요하게 썼다. 운동을 잘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러느라 정작 공약은 못 썼다. 나는 “그렇게 튼튼하니까... 친구들을 잘 도와주겠다는 뜻이겠지?” 하고 조심스레 의견을 붙여 마무리를 지었다.
우리는 ‘늑대의 선거’를 읽었다. 농장의 새로운 대표를 뽑는 선거가 시작되자, 돼지 피에르는 “모두에게 더 많은 진흙을”을, 암탉 잔느는 “알을 낳지 않을 자유를 위하여”를, 생쥐 형제는 “치즈로 하나 되는 사회” 등을 내걸며 후보로 나선다. 여기에 처음 보는 후보, 늑대 파스칼이 등장한다. “모두의 친구 파스칼”이라는 구호에 걸맞게 파스칼은 동물들에게 친근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선거 운동을 펼쳐 간다. 동물들 사이에는 파스칼이 다정하고 친절하며, 무엇보다 미남이라는 이미지가 자리를 잡았다. 투표 결과는 당연히 파스칼의 승리였다.
어린이들은 “잠깐, 파스칼은 늑대잖아요. 혹시?” “혹시 막 잡아먹는 거 아니에요?” 하며 이어질 이야기를 짐작했다. 역시 그렇게 된다. 양, 닭, 생쥐 들이 사라지자 고양이 경찰(파스칼의 선거운동원이었다)은 외계인이 잡아갔다는 둥, 이사 갔다는 둥 황당한 결과만 발표할 뿐이다. 참을 수 없게 된 동물들은 힘을 모아 파스칼의 집무실을 찾아가 진실을 확인한다. 그간 파스칼과 그의 측근들이 동물들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치르는 선거에 이번에는 처음 보는 여우 제라르가 등장한다. 과연 이번 선거는 어떻게 될까? 독서교실 어린이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그래도 한 번 당했으니까 이번엔 잘 뽑을 것 같아요” “근데 또 여우를 뽑을지도 몰라요” 수업이 끝난 뒤 지우를 슬쩍 불러 “반장 되면 좋겠지만, 혹시 안 되어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 하고 일렀더니 “그럼요. 2학기도 있으니까”라며 씩씩하게 교실을 나섰다. 첫 선거를 치르는 이 어린이들에게 다음 달 어른들의 선거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았다. 여우를 경계하며 병아리를 조심시키는 닭과, “흠, 괜찮은 후보 같은데?” 하는 양들 중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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