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피부로 만든 책, 성인 키만 한 책, 세상에 이런 책이!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3. 15.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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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차분히 앉아 온 정신을 집중해 읽어야 하는 책이 있고, 긴장을 풀고 침대에 엎드려 책장을 넘겨보며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이하고 발칙하고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희귀한 책들만 모아서 소개한 책이다.

이상한 책들을 모으고 관련 정보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별종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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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서적 수집가가 정리한 ‘별종책’
기이한 책 삽화만으로도 호기심 폭발
네덜란드 학자이자 상인, 요하네스 클렝커가 높디높게 만든 ‘클렝커 아틀라스’. 영국 왕 찰스 2세에게 왕위 복위를 기념해 바친 선물이었다. 높이 1.76m, 너비 2.3m인 책. 갈라파고스 제공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
희귀 서적 수집가가 안내하는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저속하며 발칙한 책들의 세계
에드워드 브룩-히칭 지음, 최세희 옮김 l 갈라파고스 l 3만3000원

의자에 차분히 앉아 온 정신을 집중해 읽어야 하는 책이 있고, 긴장을 풀고 침대에 엎드려 책장을 넘겨보며 즐길 수 있는 책이 있다. ‘이상한 책들의 도서관’은 후자 쪽에 가깝다. 글자보다도 책에 실린 흥미롭고 신기한 이미지에 먼저 눈이 간다. 희귀한 책 사진만 둘러봐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낚시용’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고 이 책이 가볍거나 대충 만든 책은 결코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이하고 발칙하고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희귀한 책들만 모아서 소개한 책이다. 앞으로도 이런 주제의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책을 보는 내내 독자는 “세상에, 이런 책도 있어?” “와~ 이런 책도 있네” 하고 감탄사를 쏟아내며 볼 수 있다.

망자를 위한 기도문이 빼곡히 새겨진 해골. 저자는 이 해골을 ‘책이 아닌 책’으로 분류했다. 1895년 영국의 군인이자 작가였던 로버트 베이든 파월이 이끈 아샨티(현재의 가나) 탐험대가 수집한 유물이다. 갈라파고스 제공

이 책의 저자는 희귀 서적상 프랭클린 브룩-히칭의 아들인 영국의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에드워드 브룩-히칭이다. 첫돌을 넘겼을 때부터 아버지 손을 잡고 고서를 구하려 경매장을 드나들었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10년 가까이 전 세계 도서관과 경매장을 돌고, 고서 전문 판매업자들의 상품안내서를 살펴왔다. 이상한 책들을 모으고 관련 정보를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별종책’들을 주제별로 분류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별종책’들을 ‘책이 아닌 책’ ‘살과 피로 만든 책’ ‘암호로 쓴 책’ ‘출판 사기’ ‘괴상한 사전들’ ‘초현실세계를 다룬 책’ ‘종교계 괴서들’ ‘이상한 과학책’ ‘기상천외한 크기의 책’ ‘제목이 이상한 책’ 등으로 분류해 정리했다.

인간의 피부로 제본한 책. 1663년 암스테르담에서 인쇄된 ‘처녀의 순결과 타락에 관하여’로 프랑스 외과의 세베랑 피노가 여성의 순결, 임신, 출산 관련 조약에 관해 쓴 책이다. 이 책의 주인이었던 뤼도비크 불랑 박사는 책의 첫 페이지에 “이 작지만 진기한 책은…내가 직접 무두질한 어느 여성의 피부 조각으로 표지를 덧입혔”다고 썼다. 이처럼 이러한 책들은 그 책을 쓴 사람들과 그 책이 쓰인 시대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갈라파고스 제공

살과 피로 만든 책이 있다니 엽기적이지 않은가. 조폭 영화에서 피로 두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경우는 봤지만, 피로 책을 만들었다니 믿기지 않는다. 이런 일이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지난 1997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한 서예가를 불러 자신의 피로 코란을 필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나는 당연히 많은 피를 흘려야 했으나 실상 거의 흘리지 않았다. 알라신의 은총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의미에서 그의 언어를 내 피로 써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피 27리터와 기타 화학물질을 혼합한 ‘잉크’로 2년의 세월을 들여 ‘피의 코란’이 만들어졌지만, 그가 죽은 뒤 그 책은 수많은 논란 속에서 지하 금고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책은 전한다.

가오리나 원숭이, 타조, 상어, 캥거루, 뱀 등 각종 생물의 살가죽으로 만든 책도 있다. 18세기엔 책의 내용과 표지의 소재를 일치시키는 ‘교감형 제본술’이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필립 총독의 보터니만 항해’(1789)라는 책은 오스트레일리아 여행기라는 내용에 어울리도록 캥거루 가죽으로 표지를 제본했다.

19세기에는 호두 껍데기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책을 제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갈라파고스 제공
권총을 품은 기도서. 이탈리아 베니스의 공작 프란체스코 모로시니(1619~1694)의 주문으로 제작됐다. 권총은 사적인 호신 용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책을 덮어야만 발사되도록 설계되었다. 방아쇠는 비단 실로 감싼 핀으로, 책갈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갈라파고스 제공

이외에도 너무 커서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면 모터를 동원해야 하는 책, 호두 껍데기 안에 들어갈 만큼 작은 책, 권총을 품은 책, 사막에서 기계가 고장 날 경우 생존을 위해 먹을 수 있는 책처럼 눈이 휘둥그레지는 책들이 계속 소개된다. 다양한 책들과 그 책들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이나 사연을 읽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조성을 가진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희귀한 책들에 대한 이 희귀한 책은 책을 읽고 보는 즐거움을 선물해준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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