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봄꽃보다 기다려지는 ‘햇우어회’ 한접시

백승철 기자 2024. 3.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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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밥상] (48) 충남 논산 ‘웅어회’
3 ∼ 5월에만 맛봐 … 씹을수록 고소
새콤달콤 양념에 무쳐 김에 싸먹어
‘복탕’과 함께 먹다보면 속 시원해져
제철 웅어는 회나 구이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있는 황산옥에서 웅어회를 주문하면 김이 함께 나오는데 상추·깻잎에 싸 먹는 것보다 훨씬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논산=백승철 프리랜서기자

나뭇가지 끝에 맺힌 꽃망울을 보고 봄이 온 걸 눈치채듯, 충남 논산 사람들은 강경 황산나루터 식당 곳곳에 ‘햇우어회 개시’가 적힌 현수막이 걸리면 봄이 왔다고 느낀다. ‘우어’는 금강 하구에서 잡히는 생선 ‘웅어’를 부르는 충청 방언이다. 웅어회는 못자리 준비가 한창인 때 논산 강경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향토음식이다.

웅어는 청어목 멸치과에 속하는 바다생선으로 20∼30㎝ 크기에 가늘고 긴 몸통을 가지고 있다. 배 아랫부분이 은백색을 띠며 뾰족하게 튀어나온 게 특징이다. 바다에서 서식하다가 산란기를 앞두고 3∼5월 강으로 올라오는데, 웅어를 맛볼 수 있는 시기도 이때다. 웅어는 그물에 걸리자마자 죽어버릴 정도로 성질이 급하다. 논산 외에도 충남 부여와 전북 익산 등 웅어는 잡히는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어 귀하다. 예전에도 웅어는 귀하고 맛 좋기로 유명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이 기록된 ‘경도잡지(京都雜志)’에 따르면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웅어를 잡아 관리하는 ‘위어소(葦漁所)’와 ‘석빙고’를 따로 뒀다고 한다.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이 행주나루 웅어잡이를 하는 장면을 진경산수로 담은 ‘행호관어도(杏湖觀漁圖)’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백제 말기 의자왕이 봄철마다 웅어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강경젓갈시장 골목을 지나 금강을 따라가다 보면 웅어회를 파는 식당들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1915년 황산나루터에 처음 문을 연 ‘황산옥’은 올해로 109년째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3대 사장인 모숙자 대표(67)는 오늘 생물로 잡아온 웅어를 손질해 내보였다. 과거엔 웅어가 남아돌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금강하굿둑이 막히고 나선 제철에도 운이 좋아야 잡을 수 있단다.

“생물로 잡은 쫄깃한 웅어는 봄부터 초여름까지만 들어와요. 3∼6월에 잡은 웅어를 냉동하면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지만 생물에 비하면 맛이 떨어지죠.”

웅어회는 갖가지 채소에 매콤 새콤한 양념으로 버무린 무침회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웅어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비늘을 벗긴다. 작은 웅어는 뼈째 썰기도 하지만 큰 뼈는 억세서 발라내는 게 좋다. 손질한 웅어를 길게 썬 다음 미나리를 비롯한 당근·양파·오이·양배추를 넣고 양념장과 버무리면 완성이다. 식당마다 들어가는 재료는 비슷하지만 양념장과 채소 배합 비율은 조금씩 다르다. 모 대표가 말하는 황산옥의 비법은 과일·마늘 등을 넣어 직접 만든 마늘고추장이다.

“옛날에 시할머니가 황산나루터 뱃사람들이 잡아온 생선으로 술안주를 만들어 줬어요. 웅어를 잡아 오면 썰어서 이 고추장 양념에 무쳐 내놨는데, 그때 만든 웅어회가 지금까지 이어졌어요.”

하얀 그릇에 담뿍하게 쌓아 올린 웅어회가 침샘을 자극한다. 빨갛게 양념된 웅어 한점을 미나리·오이와 함께 입안에 넣는다. 미나리향이 향긋하게 올라오며 매콤 상큼한 양념이 입맛을 돋운다. 뒤이어 쫄깃하게 씹히는 웅어 살점 사이로 연한 가시가 조금 느껴지지만 어금니로 꼭꼭 씹으면 고소하다. 함께 나온 손바닥만 한 생김에 웅어회를 한 젓가락 듬뿍 올려 싸 먹어 본다. 김과 웅어회 조합이 의외로 좋다. 김이 새콤한 양념맛을 살짝 눌러줘 젓가락을 내려놓을 새 없이 먹게 된다. 웅어회를 절반쯤 먹다 보면 밥이 저절로 생각난다. 밥을 비벼 먹겠다고 하면 식당에선 김가루와 참기름을 담은 대접을 준다. 숟가락을 뜰 때마다 웅어 한점이 올라갈 만큼 넉넉히 넣어 비벼보자. 입안 가득한 감칠맛에 밥 한공기를 게 눈 감추듯 싹 비운다.

밀복은 가시가 없고 살이 부드러워 먹기 좋다 .

웅어회만 먹기 아쉽다면 복탕을 시켜 함께 먹는 걸 추천한다. 복탕은 논산에서 꼭 맛보고 가야 할 또 다른 별미다. 밀복·참복·황복 등 계절마다 가장 맛있는 복어를 넣어 만든다. 이 가운데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황복은 5월에만 먹을 수 있다. 복탕을 주문하니 밀복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뚝배기가 나온다. 밴댕이·멸치 등으로 만든 생선 육수에 별다른 양념 없이 마늘·파를 넣은 맑은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주말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웅어회를 먹으러 온 손님으로 줄을 잇는다. 논산 주민 이현덕씨(69)는 지인에게 웅어회가 개시했다는 연락을 돌리는 게 봄철 연례행사란다.

“웅어회 맛을 아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놓치지 않죠. 금강 따라 나들이도 갈 겸 매년 봄맞이 행사처럼 갑니다.”

얼었던 땅에 새싹이 움트듯 겨우내 말라 있던 입맛을 고소하고 상큼한 웅어회로 되살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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