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사태 160일, 이스라엘-하마스 출구 전략 찾아야

박종원 2024. 3.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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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병력, 게릴라 단위로 흩어져 조직적인 작전 불가능
터널 네트워크 이용하면 앞으로 몇년 동안 도발 정도는 가능
하마스 역시 휴전 원해...소규모 정치 조직으로 명맥 이어갈 듯
이스라엘, 하마스 완전 파괴는 어려워
안보 불안 해소하려면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해야
13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의 디에르 엘 발라에서 현지 주민들이 무너진 집의 잔해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전쟁이 14일(현지시간) 기준 160일을 맞은 가운데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공세에 뿔뿔이 흩어졌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마스는 약 절반의 병력이 사라지고 조직적인 작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치적 타협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서방 매체들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며 차라리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해 하마스가 회복할 기반을 제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마스, 소규모 게릴라로 흩어져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5일 발표에서 하마스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같은달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선 다음 하마스 병력의 75%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 전 24개였던 하마스 휘하 전투 대대 가운데 18개가 제거되었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3일 보도에서 하마스의 전투 병력이 전쟁 전 약 4만명이었다며 이 가운데 약 절반이 죽거나 다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대원들이 소규모 집단으로 흩어져 로켓포나 사제 폭발물을 이용한 유격전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의 이스라엘군 관계자는 "하마스가 아직 군사력을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잔존 세력이 "조직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그들을 완전히 분쇄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고 강조했다.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전사자는 약 6000명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남은 6개 전투 대대 가운데 4개가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역에 숨었다고 본다. 나머지 2개 대대는 가자지구 중부 디에르 엘 발라 및 누세라트의 난민촌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 정보기관 18곳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지난달 5일 보고서에서 하마스가 가자지구 전역에 깔린 지하 터널을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ODNI는 하마스가 터널에 "숨어 다니다가 다시 힘을 회복해 이스라엘군을 기습한다"라며 "앞으로 몇 년에 걸쳐 무장 저항을 이어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공격을 주도했던 하마스 군사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조차 아직 잡지 못했다. 가자지구 북부와 중부를 평정한 이스라엘군은 남부 라파 지역의 하마스 잔당과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해 주변을 포위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압박으로 라파 진입을 미루고 있다. 라파에는 피난민이 몰리면서 가자지구 전체 주민 약 230만명 가운데 약 150만명이 머물고 있다. 미국은 라파에서 작전이 벌어지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며 이스라엘 측에 민간인 대피 계획부터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을 맡은 다니엘 하가리 해군 소장은 13일 "가자 중부의 '인도주의 구호 지역'으로 가면 임시주택과 음식, 물 등 필수품이 제공될 것"이라며 라파의 피난민들에게 중부로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같은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라파에서 전면전이 아닌 테러 진압 작전 수준의 초정밀 타격을 진행할 경우, 미 정부도 이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익명의 아랍 외교 관계자는 FT에 "하마스 대원들이 지상에서 군사적으로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하마스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첨단 이스라엘 군대를 이토록 오래 붙잡아두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친구들은 고통을 겪고 있다"며 하마스 대원들 역시 휴전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하마스같은 조직은 일반적으로 너무 압박하면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13일 발표에서 지난해 10월 충돌 이후 이날까지 누적 사망자가 3만1272명이며 7만302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지난달 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본부 인근에서 발견된 하마스의 지하 지휘 터널.로이터연합뉴스

정치 해법 노리는 하마스...전후 처리 어떻게?
일부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최근 협상에서 강경 태도를 유지한 이유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카타르, 이집트, 이스라엘은 지난 1월부터 협상을 통해 6주일 휴전 및 하마스 수감자·이스라엘 인질 교환을 골자로 하는 임시 휴전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지난달 휴전안에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 및 무기한 휴전 조항을 넣자며 고집을 부렸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 소탕 및 인질 구출 전까지 철수하지 않겠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팔레스타인 싱크탱크 호라이즌 센터의 이브라힘 달랄샤 센터장은 완전 철수 요구에 대해 "해당 요구는 민간인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전쟁을 재개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랄샤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을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보험"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하마스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약 1200명을 살해하고 약 240명을 납치했으며 지난해 11월 임시 휴전 당시 약 100명을 석방했다. 현재 가자지구에 남은 인질은 130명 남짓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생존자 숫자는 불분명하다. 풀려난 인질들은 하마스가 지하 터널에 인질을 감금했다고 전했다. 달랄샤는 "하마스는 인질을 풀어준 상황에서 전쟁이 재개된다면 자신들이 끝장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휴전 협상에서 타협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만약 하마스가 극적인 협상으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예전처럼 가자지구를 지배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1987년에 창설된 하마스는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출발한 조직이다. 하마스는 창설 초기 지하 무장 조직인 동시에 지역 사회의 종교 단체 역할을 했다. 하마스는 유엔이 공인한 유일한 팔레스타인 정부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1994년 출범하자 정치 정당으로 변신했으며, 2007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PA를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점령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축출한 다음 PA에게 다시 가자지구 지배를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FT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하마스가 이미 PA와 접선하고 있다며, 하마스가 전후 가자지구에 "임시 지도 위원회" 혹은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에 참여해 가자지구를 다시 통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설 초기처럼 지하 조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분석했다. 달랄샤는 "하마스는 가자지구 지배권을 상실했지만 일개 조직으로 정치 생명을 이어갈 생각이다"라고 주장했다. 달랄샤는 "하마스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일반 대중과 국제사회가 자신들을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동시에 가자지구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는 13일 보도에서 이슬람국가(IS)를 언급하며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완전히 파괴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014년 건국을 선언한 이슬람 극단세력 IS의 잔당은 2018년 미국의 승리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동 및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포린어페어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중단하고 아랍 및 서방 국가들의 도움을 받아 가자지구를 서둘러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외국 군대에 재건 및 무장해제 감독을 맡겨 하마스의 부흥을 차단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포린어페어는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받는 순간, 하마스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기능이 마비된 PA를 개혁한 다음 가자지구를 맡긴다면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안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28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모처에서 하마스 무장 대원들이 지난해 10월 7일 납치했던 이스라엘 인질(가운데)을 적십자 직원들에게 인계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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