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美 서열3위·부통령 후보들 불러 모았다, 넘버원 로비스트의 정체
트럼프 캠프·인수위서 재정 담당
12일 저녁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과 의사당을 잇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한 사무실에서 파티가 열렸다. 연방 의전 서열 3위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필두로 하원 법사위원장인 짐 조던, 플로리다 주지사 출신 릭 스콧 상원의원 등 공화당 거물 정치인 수십명이 몰려들었다. 이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선 레이스에서 승리를 위해 필요한 대의원 수인 ‘매직 넘버’를 확보해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가운데, 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팀 스콧, J D 밴스 상원의원도 모습을 드러냈다.
파티의 주인공은 50번째 생일을 맞은 제프 밀러. 트럼프와의 연결 고리 때문에 지금 미 정·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비 회사 ‘밀러 스트레티지스’의 창업자 겸 대표다. 지난 7일에도 밀러가 백악관에서 한 블록 떨어진 호텔에서 주최한 선거 자금 모금 행사에 트럼프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존슨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 100여 명이 모였다. 미국에선 로비스트가 대선 후보를 대신해 모금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날 입장료가 많게는 1만달러(약 1300만원)나 됐는데 행사는 2시간 만에 200만달러(약 26억원)를 모으고 끝이 났다. 이후 존슨을 비롯한 공화당 핵심 20명 정도가 자리를 옮겨 전략 회의를 겸한 만찬을 가졌는데 밀러도 거기 배석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밀러는 고등학생이던 열일곱 살 때 시급 5달러를 받는 컨 카운티의 공화당 인턴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의 대선 경선 캠프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페리 주지사는 2016년 경선에서 탈락한 뒤 트럼프를 지지했고 트럼프 당선 후에는 에너지부 장관을 지냈다. 당시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밀러는 캠프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재정을 담당했다. 이어 트럼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1월 자신의 이름을 딴 로비 회사를 세웠다. 워싱턴 엘리트를 혐오하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등장에 백악관과 인접한 오피스 밀집 지역인 ‘K스트리트’의 많은 로비 회사와 로펌들이 대정부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다. 반면 밀러는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 등 자신이 구축한 인맥을 바탕으로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는 곧 ‘워싱턴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 불렸다.
트럼프는 2017년 백악관에서 당시 퀄컴 인수를 타진하던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혹 탄 최고경영자(CEO)와 만났는데, 이 회사가 밀러를 로비스트로 고용한 지 2주 만이었다. 트럼프가 공개 석상에서 밀러를 만나 “당신만큼 돈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해준다는 것을 들었다”고 칭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2020년 트럼프가 재선에 도전할 땐 밀러가 1500만달러를 모금해줬다. 밀러의 회사도 덩달아 명성을 얻었는데 그해에만 77개 기업이 로비 명목으로 약 1400만달러를 지불했다.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애플,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 그룹 등이 그의 고객사다.
최근에는 밀러의 역할이 대관·모금 외에도 정무까지 확대되면서 트럼프의 재선 도전과 맞물려 몸값이 더 뛰고 있다. 밀러는 지난해 공화당 내 대표적 반(反)트럼프 인사인 리즈 체니 하원의원의 재선 캠페인에 당 선거 전략가들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압박해 체니의 경선 패배를 이끌었다. 폴리티코는 “밀러가 선출직은 아니지만 워싱턴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밀러는 지난달 뉴욕타임스에 “나는 그저 고객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친구들에게 옳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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