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서 ‘그리운 금강산’ 부른 원조 프리마 돈나
‘영원한 프리마 돈나’로 불렸던 소프라노 이규도(84)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별세했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이 교수는 6·25 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 출신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방송 어린이 합창단원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이화여중 때는 합창단원으로 3개월간 미국 순회 공연에도 참가했다. 고교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콩쿠르에 입상했고 이화여대 성악과에 입학한 뒤에도 2차례 독창회를 열었다.
미 줄리아드 음대 유학 시절에는 공개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서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칼라스의 애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생전에 고인은 “칼라스나 레나타 테발디처럼 세계적인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노래 부를 마음이 싹 가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1968년 김자경 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를 통해서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스승인 고(故) 김자경(1917~1999) 이화여대 교수는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나의 첫 그물에 걸린 학생이 이규도였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리가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회고했다. 그 뒤 1972년 미국 뉴욕에서 오페라 ‘라 보엠’의 ‘미미’ 역으로 출연했고 35년간 300여 회의 국내외 오페라 공연에서 여주인공을 도맡았다. 한 해 6편의 오페라에 출연할 만큼 인기를 독차지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에는 영결식에서 박목월 작사, 김동진 작곡의 추모가를 불렀다. 당시 문공부 실무자였던 고(故)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은 “이규도씨는 사흘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했고 장례식 날 중앙청 광장에 나가 추모의 노래를 불렀다. 추도식장은 곧 눈물바다가 됐다”고 회고했다.
1985년 남북 예술단 상호 방문 당시 평양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열창하기도 했다. 평양 공연에서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라는 노랫말을 그대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그 바람에 평양 호텔 방에서 두문불출했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이규도씨는 2014년 TV조선 교양 프로그램 ‘낭만논객’에 출연해서 “당시 북한으로 떠나기 전에 한 달 동안 합숙 아닌 합숙을 했는데 평양에서 노래 가사는 ‘못 가본 지 몇몇 해’로 바꿔 불렀다”고 회고했다.
1997년 ‘프리마 돈나 앙상블’을 창단해서 70대까지도 미국·호주·러시아 등 국내외 무대에서 제자들과 함께 노래했다. 프랑스 파리, 스페인 빌바오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최근까지 서울사이버대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주부와 직장인을 위한 성악 교육에도 열정을 쏟았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세일한국가곡상, 대원음악상 특별공헌상 등을 받았으며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유족은 아들 박상범씨.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8일 (02)2227-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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