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쇳조각 박혀도 수십곳 거절… 軍 병원만 “당장 오라”
13일 오전 11시 36분쯤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으로 119 구급차 한 대가 달려 들어왔다. 피가 흐르는 다리에 붕대를 감은 남성이 들것에 실려 차에서 내렸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모(63)씨는 이날 오전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다가 자신의 왼쪽 무릎 위쪽 10㎝도 같이 잘랐다.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분당서울대병원과 분당차병원 등 인근 4개 종합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중증이 아니라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출혈과 통증이 모두 심한데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발을 굴렀다. 구급대원이 인근 국군병원을 떠올리고 연락을 취하자 병원 측은 “바로 오라”고 했다. 김씨는 긴급 봉합 수술을 받고 오후 1시 20분쯤 병원을 떠났다. 아내는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하는 서민들만 피해를 겪고 있다”며 “군 병원 덕분에 위험을 넘겼다”고 했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의 집단 이탈 이후 국군 병원이 갈 곳 잃은 응급 환자들의 ‘최후의 보루’가 되고 있다. 정부는 ‘의료 파행’ 첫날인 지난달 20일부터 전국 군 병원 15곳 중 12곳 응급실을 민간에 개방했다. 지난 13일 오전까지 군 병원에서 치료받은 민간인은 217명이다. 국군수도병원에서만 103명을 진료했다. 서울대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들의 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지고, 환자들이 2차 병원(종합병원·전문병원)으로 몰리면서 의료 시스템의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민간 병원의 체증 일부를 군 병원이 소화하는 것이다.
이날 수도병원 입원실에서 만난 최모(62·경기 용인시)씨는 지난 2일 오후 가스통 폭발 사고를 당했다. 회사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미처 뚫지 못한 가스통이 터져 쇳조각 파편이 최씨의 얼굴 등 온몸에 박혔다고 한다. 두 눈에도 쇳조각이 꽂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실명 위기 상태였다. 그는 119 구급차를 타고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상처 소독 등 단순 처치만 받을 수 있었다. 최씨 아내는 “당시 중형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상태가 심각하자 병원 측이 4시간 동안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 병원 수십곳에 전원 요청을 했지만 전부 ‘안과 의사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실명할까 봐) 눈앞이 깜깜하고 손이 벌벌 떨렸다”고 했다.
병원 측이 거의 마지막으로 국군수도병원에 전화했더니 “바로 오라”는 답변을 받았다. 최씨는 5~6시간이 지난 오후 10시쯤 국군병원에 도착해, 새벽 1시쯤 국군병원 안과 전문의인 김윤택 교수에게 눈에 박힌 파편을 제거하는 응급수술을 받았다. 이틀 뒤 성형외과 과장인 권진근 소령에게 얼굴에 박힌 쇳조각을 빼는 수술도 받았다. 지금 최씨는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회복했다. 18일 퇴원하는데 국군병원에서 외래진료도 받을 예정이다. 시력 회복을 위한 2차 수술도 군 병원에서 하기로 했다. 최씨는 “국군병원 덕분에 (수술) 시간이 더 미뤄지지 않아 실명을 면할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했다.
이날 국군수도병원에는 경기도 한 요양원에서 낙상 사고를 당한 이모(90)씨도 응급차로 들어왔다. 환자와 동행한 요양원 관계자는 “어르신 눈썹 위 2㎝ 열상을 꿰매러 동네 정형외과에 갔는데 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며 “인근 분당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병원 측은 당연하다는 듯 ‘꿰매는 건 안 되는 거 알고 오셨죠. CT만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어르신 귀에서 피도 났는데 분당서울대병원에선 이비인후과 진료도 어렵다고 해서 (구급요원의 제안으로) 군 병원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미리 대기 중이던 군 의료진이 이씨를 외상 소생실로 옮겨 치료했다.
국군수도병원 관계자는 “군은 장병 진료에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군을 믿고 와주신 민간인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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