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엘 콘도르 파사… 케트살 등 남미 國鳥들, 점차 실종

김나영 기자 2024. 3. 15.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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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트살·검독수리 등 중남미 國鳥
기후 변화·서식지 파괴로 ‘실종’
멕시코의 국조(國鳥)인 검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검독수리는 개체 수가 매년 줄어 멕시코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로이터통신

멕시코 국기 한가운데는 선인장에 앉아 뱀을 물고 있는 용맹한 검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신성함의 상징인 검독수리가 뱀을 물고 앉은 선인장이 있는 곳에 도읍을 정했다는 아스테카 제국 건국 설화 내용을 문장(紋章)으로 만든 것이다. 국기 정중앙에 등장할 정도로 검독수리는 멕시코 국조(國鳥)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멕시코에 남아있는 검독수리는 불과 200여 마리에 불과하다. 검독수리는 북중미와 유라시아 등에 널리 분포하지만, 정작 이 새를 가장 신성하게 떠받드는 나라에서 절멸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처럼 중남미 나라들의 국조로 사랑받던 새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서식지 파괴 등으로 빠르게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11일 보도했다.

과테말라 국조 케트살./매컬리 도서관

미국 남부에서 중남미에 이르는 지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조류 서식 지역이다. 세계 1만1000여 종의 새 중에 36%가 이 지역에 터전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중남미 여러 나라가 새를 상징으로 삼는다. 하지만 농지 개간과 도시화로 인한 급속한 서식지 파괴로 ‘나라의 상징’이 심각한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 멕시코 베라크루스대학 생태학자 에르네스토 루엘라스 인준자는 “검독수리는 아름답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연관이 깊은 새이지만, 오늘날 눈에 잘 띄지 않게 됐다”고 했다.

국기에 등장하는 또 다른 새인 과테말라 국조 케트살도 생존 위협에 직면해 있다. 과테말라 국기에는 이 나라가 독립을 선언했던 1821년 9월 15일이 적힌 종이와 그 위에 긴 꼬리 깃털을 가진 초록색의 케트살이 앉은 모습이 그려져 있다. 케트살의 깃털은 옛날에 화폐 대신 사용됐고, 지금도 화폐 단위 이름이 케트살일 정도로 과테말라인에게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개발의 직격탄을 맞아 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새가 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산림의 13%가 농업·축산업 등의 영향으로 사라졌는데, 같은 기간 과테말라 산림의 26%가 사라지면서 파괴 속도는 두 배에 달했다.

여러 나라에서 신성한 새로 추앙받아온 콘도르도 이런 수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대 중남미인들은 펼치면 3m가 넘는 날개를 양옆으로 뻗고 안데스 산맥을 유유히 활공하는 콘도르를 영웅이 죽어서 부활한 존재로 여겼다. 페루의 전래 민요 ‘엘 콘도르 파사(콘도르는 날아가고)’를 남성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1970년 번안곡으로 발표해 세계적으로 히트시키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몸집이 큰 맹금류로 알려진 안데스 콘도르. 이 새는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등의 국조이기도 하다./스미스소니언 매거진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국기의 한가운데에도 두 날개를 활짝 편 콘도르가 그려져 있고, 칠레와 콜롬비아 등에서도 국조로 여긴다. 하지만 서식지 파괴와 함께 콘도르를 가축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는 농장·목장 주인들이 독극물 등으로 대거 박멸에 나서면서 급속도로 숫자가 줄었다. 볼리비아와 칠레에서도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고,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선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정작 콘도르는 살아있는 동물은 좀처럼 사냥하지 않고 사체만 집중적으로 먹는 새다. 콘도르가 망자의 영혼을 하늘로 보내준다고 믿는 중남미 일부 지역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콘도르에게 내주는 조장(鳥葬) 풍습을 유지했을 정도다. NYT는 “맹금류의 위협적인 크기는 그들을 카리스마 넘치는 국가 상징으로 만드는 요소지만, 동시에 인간으로부터 핍박받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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