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감독 ‘디테일 농구’ 우승 안겼다

원주/이영빈 기자 2024. 3.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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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의 DB 정규리그 우승
프로농구 원주 DB 김주성 감독이 14일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한 후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고 있다. 현역 시절에도 DB에서 뛰었던 그는 선수로 정규 리그 5회, 챔피언 결정전 3회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감독 정식 부임 첫해 곧바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뉴스1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정규리그 우승은 마지막에 웃기 위한 전제 조건. 적어도 우승 헹가래를 받던 원주 DB 김주성 감독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하고 있었을 것이다. 프로농구 DB는 이날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수원 KT를 연장 접전 끝에 107대103으로 꺾었다. 개운한 마침표였다. 남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농구연맹(KBL) 2023-2024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DB는 이날 20점 차 이상으로만 지지 않으면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승패와 상대 전적이 같아져도 맞대결 골득실에서 앞서면 순위에서 앞선다는 KBL 규정 때문. DB는 이 경기 전까지 2위를 달리던 KT와 골득실에서 20점으로 앞서고 있었다. 20점 차 이내로만 져도 됐지만 안방에서 멋지게 우승 순간을 장식하고 싶다는 DB 선수들은 심판 판정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선수들끼리 수시로 지시를 주고받으며 끝까지 분전했다. 종료 15초를 앞두고 105-101로 앞서면서 사실상 승리가 눈앞에 오자 주먹을 쥐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겐 54경기 중 한 경기라 생각하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연장이 끝나고 우승이 확정되자 DB 벤치에서 하얀색 반팔티와 모자를 쓴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옷에는 영어로 ‘KBL 정규시즌 챔피언(REGULAR SEASON CHAMPIONS)’이라고 써 있었다. 선수들은 부둥켜 안았고, 주장 강상재(30)가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관객석을 가득 채웠던 팬들은 어느새 코트 사방에 서서 선수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DB 우승은 이변으로 통한다. 원래 DB는 올 시즌 중하위권을 맴돌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시즌도 7위에 머물렀다. 주된 전력 보강은 외국인 선수 디드릭 로슨(27·미국) 1명을 교체한 것 말고는 없었다. 게다가 사령탑은 처음으로 정식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 김주성(45). 김 감독은 지난 시즌 도중 감독 대행으로 들어와 11승 14패로 마감한 바 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면서 DB는 초반 7연승을 달리며 다른 팀들과 격차를 벌리기 시작했다. 우승을 확정 지을 때까지 선두 자리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이른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다. 김 감독은 DB를 저평가하는 분석가들 단견을 깨기 위해 ‘디테일’에 집중했다. 지난 시즌 갑작스레 부임해 바꾸지 못했던 세세한 부분들을 고쳐나갔다. 공수에서 선수들이 있어야 하는 코트 위 위치부터 발 간격과 팔꿈치 각도까지 신경 썼다. 종종 선수들과 함께 연습 경기를 뛰면서 몸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전술도 손을 봤다. 내외곽에 둘 다 능해 행동반경이 겹쳤던 두 ‘빅맨’ 김종규(33)와 강상재 동선을 교통정리했다. 김종규는 골밑, 강상재는 외곽에 주력하게 했다. 직접 영입을 추진한 로슨에게는 컨트롤타워를 맡겼다. 로슨이 이전 소속팀이었던 고양 캐럿(현 고양 소노)에서 수행했던 역할과는 달랐다. 로슨은 한 경기 평균 22.7점 10.0리바운드 4.7어시스트와 함께 올 시즌 KBL 최고 외국인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상재 역시 평균 14.1점 6.3리바운드 4.3어시스트로 유력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다. 강상재는 “감독님의 세심함 덕분에 한층 성장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잔소리를 좋게 포장해준다”면서 웃었다.

김 감독에게 이번 정규리그 우승은 남다르다. 2002년 시작한 프로 선수 시절부터 김 감독은 DB와 계속 함께했다. 현역 시절 정규리그 5회,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을 차지했다. 16년 동안 DB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던 건 3번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 김주성이 은퇴한 뒤 DB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근 5시즌 중 4번을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19-2020시즌 서울 SK와 정규리그 공동 1위를 달렸지만 코로나 때문에 플레이오프 없이 시즌이 조기 종료됐다. 나머지 네 시즌은 8-9-8-7위였다. DB 처지에서 김 감독은 현역 때나 지도자 때나 강팀을 일군 영웅에 가깝다. 그는 “아직 궤도에 올려놨다고는 못하겠다”며 “내가 조금 더 많이 배워서 안정적인 강호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DB는 이제 플레이오프를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오른 건 2007-2008시즌. 16년 전이다. 김 감독은 “사실은 매일매일이 위기”라며 웃고서는 “플레이오프에서도 잘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승한다면 전부 선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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