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내 주머니에 몰아줘” 한국 영화의 응석
글로벌 성공 후 모습
“극장서 안 보면 6개월간 못 보게”
“노래방처럼 저작권 달라”
영화 ‘올드 보이’에는 일본 원작 만화에 없는 설정이 들어갔다. 남매, 부녀간 근친상간이다. 영화 개봉은 2003년, TV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불륜 베드신이 조금만 야해도 항의하던 시절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비난은 거의 없었다. 박찬욱 감독의 미학적 성취에 평론가, 기자, 관객까지 똘똘 뭉쳐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문화계에서 영화는 ‘가난한 집 공부 잘하는 장남’이었다. 경제적·심리적 지원을 많이 받았다. 장남 도시락에만 장조림을 넣어주듯, 정부는 공적 자금을 영화에 몰아줬다. 2007년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축소 후 정부는 2000억원을 영화진흥기금으로 투입했다. 2022년에도 15년 만에 800억원을 또 출연했다. 세금 지원 없이 시장에서 큰 ‘K팝’이 먼저 크게 성공했지만, 영화 끼고 도는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다.
‘개천표 이무기’를 글로벌 ‘개천 용’으로 키운 건, 새 전주(錢主)였다. 넷플릭스를 시작으로 쿠팡플레이까지 가세한 OTT가 새 ‘투자자님’이다. 그 뭉칫돈으로 촬영 여건은 개선됐고, 감독과 작가, 배우는 더 많은 돈을 벌었고, 유명해졌다. 정부도 그걸 잘 안다. 윤석열 대통령은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CEO를 두 번이나 만나 부탁했다. “한국에 돈 좀 팍팍 쓰시라.” 넷플릭스도 그러겠다 약속했지만, 귀국 후 고민 좀 했을 것 같다. 한국 영화계는 얼핏 기득권 민노총이 지배한 사업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 주로 목소리 큰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2년 전부터 ‘노래방 저작권’ 같은 시스템을 요구하고 나섰다. “가요 작곡·작사가가 노래방 수입을 가져가듯, 영상물이 VOD, OTT에서 상영될 때마다 감독과 작가 등에게 추가 보상하라”는 주장이다. 거칠게 풀면 이렇다. 라면집이 라면을 팔아 매상이 오를 때마다 공장 면발 생산자에게 몇 원씩 지급하라. “라면 공장 노동자는 매달 월급을 받는데, 왜 라면집 주인에게 돈을 달라고 하느냐”는 반박이 쉽게 나온다. 물론 지적 창작물은 다를 수 있다지만 ‘돈 더 내라’고 요구할 대상은 OTT가 아니라 ‘판권’을 넘기고 목돈을 쥔 제작자다. 외국도 대개 제작자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여기서 내부 문제가 생긴다. 감독 상당수가 영화 제작자인 것이다.
기자 눈에는 보상 요구 주체,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등’에서 ‘등’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대로 영상물 추가 보상안이 타결되어 ‘영화연금’이 가능해진다면, ‘당연히’ 감독과 작가 통장에 매달 돈이 꽂힐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게 당연한가. 제작 인력 수백 명 중 감독과 작가만 창작자이고, 배우 촬영 무대미술 음악 마케팅 담당은 단순 노무자인가. 왕후장상 씨처럼 ‘영화연금 생활자’의 씨도 따로 있나. 이런 비판에 대비한 면피성 단어가 바로 ‘등’이다. 얍삽해 보인다.
또 있다. 한국 영화 극장 관객이 줄어들자 ‘극장 상영 후 6개월 이내 OTT에서 상영 불가’ 조치인 ‘홀드백(유예) 6개월’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규제하다 민간 자율로 넘긴 걸 다시 정부가 조여 달라는 거다. 규모는 작지만 예술성 높은 국내외 영화를 볼 권리는 보호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 ‘소비자 불편’이 그 해법은 아닐 텐데, 놀랍게도 문화관광부까지 영화계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나는 스무 살 이후 부모에게 손을 벌려본 적이 없다. 사회에 벌렸다.” 농담을 가장한 이 성찰의 문장은 개그맨 박명수 입에서 나왔다. 영화계가 그의 말을 한번 곱씹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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