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왜 4강은 해고하고 8강은 유임됐을까

이영빈 기자 2024. 3.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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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매치 6연승 직후 2024년 아시안컵 4강. 그리고 A매치 3승 4무 직후 2019년 아시안컵 8강. 비교하자면 전자가 나은 성적표다. 그런데 첫째 감독은 대회 직후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경질됐다. 둘째 감독은 그 뒤 3년 더 팀을 지휘했다. 2024년 위르겐 클린스만과 2019년 파울루 벤투 전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이야기다.

물론 2024년 대회의 선수들 기량이 더 뛰어났다. 손흥민, 김민재 등이 더 성장했다. 이 점을 감안해도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 대회에서 4강 진출은 나쁘지 않은 성과다. 단적인 예로 클린스만 감독은 과거 2006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4강으로 이끌고 난 뒤 계약이 끝나자 더 지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시안컵 4강 역시 100억원에 이르는 위약금을 주면서까지 감독을 경질할 만한 성적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결국 여론에 고개 숙였다.

엇갈린 운명은 선임 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클린스만은 대한축구협회 고위층이 소위 ‘내리꽂은’ 감독이었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클린스만에게 대중은 싸늘했다. 그렇기 때문에 클린스만호는 출항부터 위태로웠다. 클린스만이 한국보다 미국 자택에 더 오래 머문다는 등의 문제는 부수적이었을 뿐이다. 권위가 땅에 떨어진 감독은 선수들에게 외면당했다. 선수단 안에서 싸움까지 일어났는데도 손을 쓸 수가 없었고, 결국 1년 만에 경질됐다.

벤투 감독 선임은 달랐다. 김판곤 당시 전력강화위원장은 모든 과정을 상세히 공개했다. 어떤 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부터 최종 감독 후보군 3명이 내민 조건을 전부 밝혔다. 김 위원장의 설명에는 궁금한 점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벤투 감독은 힘을 얻었다. 아시안컵 8강이라는, 15년 만에 겪은 아픈 결과에도 벤투를 경질하자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감독 선임 과정이 투명하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벤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역대 두 번째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흔히들 여론을 ‘냄비’라고 한다. 줏대 없이 빨리 끓어오르고 빨리 식는다는 멸칭이다. 우중(愚衆)이라는 말도 있다. 여러 의사 결정자는 대중의 비합리성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과정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는 뚜렷한 결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대중은 그렇게 우둔하지 않다. 상급자에게 보고하듯 의사 결정자들이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면 지지가 따라온다. 물론 전부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과정이 깨끗하다는 전제가 있다. 대신 밀실에서 해결하고 결과만 보여주려 하면 어김없이 여론의 철퇴가 따라온다.

숱한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원순, 오거돈의 공백을 메우고자 실시한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다. ‘원인을 일으킨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당헌을 명분 없이 고쳤기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역시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뚜렷한 이유 없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내세웠다가 졌다. 전부 불투명한 과정 탓에 당한 패배였다. 대중의 지지를 갈구하는 지도자라면 마음에 담아둬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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