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65] 메이지유신 촉발한 ‘영국책론(英國策論)’
‘조선책략’은 19세기 후반 조선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 외교 방략서다. 저자인 황준헌은 일본 주재 청국 공사관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외교관이었다. 조선에 조선책략이 있다면, 일본에는 메이지유신의 촉매 역할을 한 ‘영국책론’이 있다. 원래는 책이 아니라 1866년 요코하마 거류지에서 유통되던 한 영자지에 기고한 익명 칼럼이었다. 칼럼에는 일본의 주권자는 천황이므로 이전에 쇼군이 맺은 조약을 폐기하고 적법한 조약 체결을 위해 천황 중심으로 정치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대담한(또는 불온한) 주장이 담겨 있었다.
작성자는 뜻밖에도 주일 영국 공사관에서 근무하는 23세 신입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Earnest M. Satow)였다. 기고문은 ‘영국책론’이라는 일본어 소책자로 시중에 유포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막부의 권위를 인정하는 ‘좌막(佐幕’) 분위기가 간신히 우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책론의 주장이 공론화되자 막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정국의 무게중심이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도막(倒幕)’으로 기우는 결과가 초래된다.
사실 영국책론의 내용은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것으로, 외교관에게는 금지된 행위였다. 그러나 잘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이 영국 정부가 우회적으로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식의 추측이 더해지면서 영국책론은 도막 정국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었다. 메이지유신 주역 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영국책론의 내용을 공공연히 언급했고, 막부에 대해 미묘한 견해차를 보이던 사쓰마번과 조슈번 간의 ‘삿초 동맹’은 명실상부 도막 동맹으로 성격을 굳혔다.
미국 역사학자 돈 리트너는 “역사는 타이밍, 사람, 상황 그리고 우연의 복잡한 얽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찌 보면 신중하지 못했던 젊은 외교관의 글 하나가 의도치 않게 메이지유신이라는 일대 역사적 사건을 촉발하는 과정을 접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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