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드골 장군, 드골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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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 독일의 압제에서 해방된 직후인 1944년 11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했다.
프랑스 임시정부 수반 샤를 드골 장군이 처칠 일행을 영접했다.
나중에 프랑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장군'으로 불리길 더 좋아했던 드골은 실은 장성 중에서 가장 낮은 준장 계급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전쟁 기간 '자유프랑스'의 이름 아래 저항군(레지스탕스)을 지휘한 드골을 육군 대장 또는 원수로 진급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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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난 뒤 전쟁 기간 ‘자유프랑스’의 이름 아래 저항군(레지스탕스)을 지휘한 드골을 육군 대장 또는 원수로 진급시키자는 논의가 있었다. 드골은 단호히 거절했다.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할 때까지 4년여 동안 독일군 군홧발에 짓밟혔다. 드골은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그런 암흑시대에 진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선을 그었다. 전쟁 도중도 아니고 종전 후에 진급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1970년 사망할 때까지 드골은 프랑스 육군의 예비역 준장이었다. 그가 왜 프랑스인의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다.
1921년 12월 태어난 드골의 장남 필리프 드골은 아버지와 달리 해군을 택했다. 해사에 재학 중이던 1940년 그는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를 탈출해 아버지가 이끌던 자유프랑스에 합류했다. 해군 장교로서 영불해협과 대서양 등에서 벌어진 숱한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전후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전사들에게 수여된 ‘해방훈장’을 받지는 못했다. 임시정부 수반인 드골 입장에선 차마 아들에게 훈장을 주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 드골은 “내 아들인 너를 해방의 동지로 만들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해군에 계속 남은 필리프는 대장까지 진급했다. 1982년 전역한 뒤에는 18년간 상원의원도 역임했다.
필리프 드골 제독이 그제 10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부고 기사에서 “프랑스 해군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지만 평생을 아버지의 그늘에서 살았다”고 평가했다. 비록 아버지와 육군과 해군으로 소속은 달랐으나 프랑스의 진정한 애국자였던 드골 제독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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