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시간 ‘느림’에 맞춰… 현실 너머 세계를 사유하다
김신성 2024. 3. 14. 21:34
‘2024 예감전-자연 회귀적 열망’
앞날 주목되는 4인 작가 작품세계 소개
모혜준, 단순 반복으로 무념무상 선사
우병윤, 석고 작업 통해 조화와 균형 담아
이상덕, 착시로 다른 시각 세상보기 제안
이채영, 현실이 바로 ‘소외된 풍경’ 일깨워
작가마다 쌓아올린 흔적, 삶의 궤적 투영
앞날 주목되는 4인 작가 작품세계 소개
모혜준, 단순 반복으로 무념무상 선사
우병윤, 석고 작업 통해 조화와 균형 담아
이상덕, 착시로 다른 시각 세상보기 제안
이채영, 현실이 바로 ‘소외된 풍경’ 일깨워
작가마다 쌓아올린 흔적, 삶의 궤적 투영
작가 모혜준은 한지에 펜으로 깨알 크기만 한 타원형을 부지런히 그려 커다란 형체를 만든다. 다 버리고 단순반복작업만으로 자신을 정화해나가는 것이다. 고통과 안식, 그리고 성장의 과정을 거치는 그만의 방법이다. 반복은 위안과 심적 안정을 선사한다. 고요한 치유 과정이자 시간을 사유하는 행위다.
솔직하고 가식 없는 반복이 일상과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체감한다. 날마다 한순간들은 고통과 기쁨 사이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작은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반복 동작을 통해 무념무상에 빠져든다.
석고로 작업하는 우병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조화’와 ‘균형’에 대해 이야기한다. 석고에 색을 입혀 말린 뒤 긁어내 하단의 석고가 드러나는 과정을 반복한다. 중첩의 산물이다. 한 화면 안에서 충돌이 점점 융화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자연의 순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 과정과도 비슷하다. 인간이 충돌과 타협, 이해를 통해 균형을 이루듯이 우병윤의 화면에 드러나는 물성과 행위는 작가의 정신을 담아내면서 그의 삶 철학을 대변한다.
이상덕은 디지털 화면이 현시대 인간들의 감각을 다 흩트려놓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화면 안에 착시를 의도적으로 설계해 우리에게 다른 시각으로 세상보기를 제안한다. 스마트폰과 모니터의 가상세계는 실제 주변 환경과 자연을 직접 대면했을 때의 시각적 경험과 정서적 감동을 오히려 가두는 경향이 있다. 현대인의 닫힌 시공간 장막을 한 겹씩 걷어내 전방위를 넘나들 수 있도록 작가의 화면이 창구가 되어주고자 한다. 콜라주를 활용해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고, 그림자를 추가해 현실인지 가상인지 모호한 흥미를 선사한다.
이채영은 소외된 풍경을 그린다. 또 다른 정서를 전달한다. 자신만의 구도를 통해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보여준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켜 있는 모습 속에 오직 ‘풍경‘과 ‘나’만이 자리한다. 대부분 스쳐 지나가는 소외된 풍경들 속에서 비정하거나 슬프거나 아주 고독한 것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려 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장소가 우리의 세계라는 것을, 무척 낯설고 이상해 보이는 풍경들이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 풍경임을 일깨운다.
‘2024 예감전’이 ‘자연 회귀적 열망 : The Longing to Return to Nature(더 롱잉 투 리턴 투 네이처)’이란 주제를 내걸고 4월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해마다 선화랑이 개최하는 ‘예감전’은 앞으로 작품 활동의 귀추가 주목되는 작가들을 선정하고, 그 역량과 비전을 보여주는 자리다. 올해는 모혜준, 우병윤, 이상덕, 이채영 4명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가속화의 절제, 느림의 미학을 다시 한 번 일깨우기 위해서다. 조금 더 자기 충만의 시간과 영혼의 해방을 추구하며 정신적인 안위와 안정에 가치를 둔다.
인간이 성장해 나아가는 과정은 완성된 예술작품을 닮았다. 무언가 발현되자마자 하나의 완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나의 개체는 수많은 시간과 물리적 자발적인 여러 과정, 노력의 결실이 쌓인 무르익은 완성체다. 각 작가의 작업을 살펴보면 화면 위로 시간을 머금은 흔적과 반복, 순환의 과정이 축적되어 있고 이는 자연의 순리와도 직결되어 보인다.
화면 속 여백은 다른 공간과 차원의 연결을 의미하며 의식이 머무르는 장이 된다.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것은 금세 사라져버리기 쉽지만 작가 저마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과 행위 흔적은 우리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만든다.
속도는 기계의 시간이며, 느림은 자연의 시간이라는 말은 4인 작가의 화면과 잘 어울린다. 느림은 빠른 속도에 박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무능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더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작품들의 화면은 일상의 시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전이시키고 시간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현실을 벗어나 그 너머 세계를 사유케 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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