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투자자들, 소송 들어가도 ‘불안’
투자자책임 근거로 기각 땐 판매사가 제시한 금액마저 못 건져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에 대한 금융당국의 분쟁조정기준안이 나왔지만 상품을 판매한 은행들과 투자자 간 갈등은 봉합되지 않는 양상이다. 투자자들이 더 많은 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법조계에선 법적 다툼으로 갈 경우 오히려 배상액이 더 깎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ELS 가입자들은 15일 서울 농협 본점 앞에서 ‘계약원천 무효’를 요구하는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 집회는 이달 초 일정이 잡혔는데 지난 11일 조정안이 발표된 뒤에도 참여 열기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전체 배상 규모를 집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작업에 돌입했다. 각 계약별로 배상비를 정하는 절차까지 마무리되면 은행이 투자자 개개인에게 연락해 배상안을 전달한다. 은행이 제시하는 배상안을 투자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남은 선택지는 소송뿐이다.
법조계에선 소송으로 가더라도 ELS 투자자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LS 같은 고위험 투자상품은 투자자가 모든 손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자본시장법상 기본 원칙이다. ELS 투자자들이 판매창구에서 ‘불완전 판매’를 당한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배상받을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증거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일단 투자자들이 판매점에서 받을 수 있는 자료는 최초계약서, 투자성향분석표, 해피콜 녹취자료 등이다. 본인이 써야 할 내용이 직원의 대필로 작성됐거나 투자성향분석표에 본인 의사와 다르게 체크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법원에서 불완전 판매로 인정받기 어렵다.
금융 사건을 전문적으로 대리하는 A변호사는 “가입 최종서류에 서명이나 도장이 찍혔다면, 법원은 사문서위조가 아닌 이상 당사자 의사에 따라 대필이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고 말했다.
최초 판매 시 ‘손실이 날 위험이 절대 없다’는 말을 들었더라도 이를 입증할 구체적 녹음 파일이 있어야 한다. 증거 없이는 ‘모든 위험 요소를 설명 들었다’고 동의한 해피콜이 은행 측의 반박 증거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상품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투자자들이 승소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파생결합펀드(DLF) 투자자가 하나은행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배상 책임을 60%로 인정받았다. 당초 15%였던 배상금이 1심에서 올라간 것이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투자자들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도 ‘손실액 80%를 배상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ELS는 재투자자가 전체 투자자의 90% 이상으로, DLF나 라임펀드보다 대중화돼 있고 손실 발생률도 낮은 편이다. 소수의 고액투자자를 대상으로 했던 DLF나, 1심에서 판매행위 자체가 사기로 인정된 라임펀드보다 불완전판매 여부를 더 까다롭게 따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A변호사는 “ELS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서, 판사 성향에 따라선 금융당국의 배상안이 투자자책임 원칙을 지나치게 훼손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재가입한 행위를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인지했다는 증거로 여겨 기각할 경우, 원래 판매사가 제시했던 배상액도 건지기 어렵다. 실제 그런 판례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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