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버텨라” 72년간 강철통 갇히고도 꿈 이루고 떠났다
변호사 꿈 이루고, 33만 명 팔로워 둔 틱톡 스타로도 활약
”삶은 아주 특별한 것...끈질기게 버티면 좋아질 것”
폴 리처드 알렉산더. 13일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78세로 숨진 그는 인생 대부분인 72년을 노란색의 낡은 인공호흡기 강철통 안에 갇혀 살았다.
여섯 살이던 1952년 소아마비에 감염돼 목 아래 전신(前身)이 마비됐고, 자력으로 근육을 움직여 호흡할 수도 없었다. 당시 소아마비는 미국에서도 가장 두려운 병이었고, 소아마비 백신은 1955년에야 나왔다.
알렉산더는 이후 머리만 내밀고, 피스톤이 통 안으로 음압(陰壓ㆍ대기보다 낮은 압력)과 양압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강철 실린더 안에서 살았다. 주사기처럼 피스톤을 뒤로 빼면 실린더 속 기압이 내려가면서 알렉산더의 가슴과 갈비뼈를 끌어올려 그가 숨을 들이쉴 수 있게 했다. 반대로 피스톤이 수축되면, 통 속 기압이 올라가면서 그의 가슴을 조여 숨을 내쉬게 했다.
‘아이언렁(Iron Lung)’이라 불리는 단순한 원리의 이 기계는 발명된 지 100년도 더 됐고, 이후 첨단 휴대용 인공호흡기가 나왔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가슴 근육은 너무 약해, 이 고물 음압기 통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아이언렁은 더 이상 제조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불가피하게 이것을 사용하는 이는 이제 몇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던 것의 대부분을 이룰 수 있었다. 텍사스대학교(오스틴 소재)에서 법학 박사를 받고 개인 파산 회생 변호사로 이름을 날렸고, 2020년엔 ‘강아지를 얻기 위한 3분(Three Minutes for a Dog)’이란 제목으로 아이언렁에서 보낸 평생을 자서전으로 썼다.
@ironlungman
Episode 1 of Convos with Paul! We will be responding to comments and questions about Paul’s life, his polio, and life in an iron lung! Please be positive 😊 #PaulAlexander#poliopaul#ironlung#conversationswithpaul♬ Chopin Nocturne No. 2 Piano Mono - moshimo sound design
심지어 지난 1월에는 소셜미디어 틱톡에 자신의 계좌를 개설해, 33만 명의 팔로워를 둔 틱톡 스타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틱톡으로 ‘배변은 어떻게 해결하는지’와 같은 그의 통 속 삶을 물었다(알렉산더는 환자용 변기를 사용하며, 간병인이 일시적으로 실린더를 열어 이를 치운다).
1952년 집 마당에서 놀다가 39도 가까운 고열과 함께 쓰러진 알렉산더는 이후 병원에서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수개월을 보냈다. 의사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며, 부모가 알렉산더의 죽음을 집에서 맞을 수 있게 퇴원시켰다.
그때 집에 딸려 온 것이 노란 색의 거대한 아이언렁과 발전기였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아이언렁 보증기간을 넘겨서도 살았고, 수 년이 지나 이 강철통은 공기가 샜다. 더 이상 나온 지 100년도 더 된 기계는 만들지도 않았다. 손재주 좋은 주변 사람이 남들이 버린 아이언통 재료들을 갖고 다시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어줬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어린 알렉산더는 신(神)을 원망했다. “왜 저예요? “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합니까?” 아이는 “왜 내게 이런 짓을 했느냐고, 나는 신 앞에서 따질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소아마비에 걸린 걸린 1952년에만 미국에선 5만8000명 가까이 감염돼 3100명이 죽었다. 2만1000여 명은 평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체 마비를 겪어야 했다.
어린 알렉산더에게 아이언렁 없이, 독자적인 호흡은 불가능했다. 호흡을 시도하기도 전에, 공포가 먼저 찾아왔다. 그러나 한 물리치료사가 “3분만 호흡할 수 있으면, 강아지를 사 주겠다”고 했고, 여덟 살 알렉산더는 조금씩 아이언렁의 도움 없이 호흡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물고기처럼 크게 입을 벌여 호흡하는 방식으로 처음엔 3분을 강철 통 없이 숨쉬기 시작해, 나중엔 수 시간 강철 통에서 나와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용기를 준 것은 부모였다. 부모는 통 안에 갇힌 아들에게 “너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격려했고, 아들은 “그 말을 믿었다”고 자서전에 썼다.
아이언렁 밖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는 고교에 진학했고 동급생 중 2등으로 졸업했다. 1등을 못한 이유는 “생물 실험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대학에서 경제ㆍ금융을 전공하고 1984년 법학박사를 받기까지, 그의 기숙사에는 미니 잠수정 같은 아이언렁이 놓여 있었다. 친구들은 알렉산더의 휠체어와 아이언렁을 강의실과 기숙사로 옮겼다.
이후 그는 법정에서 채무자를 돕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틱톡에서 “꽤 잘 나가던 변호사였다”고 했다. 낮에는 휠체어에 의지해서 활동하고, 밤에는 아이언렁에서 보냈다.
그러나 60세 넘어서는 하루 종일 통 안에서 보내야 했다. 56㎏인 그의 몸은 더 경직됐고, 오전7시 간병인이 출근해서 그의 얼굴과 이를 닦아줬다. 이후 누워서 음식을 먹고는, 입에 물려준 펜으로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렸다. 자서전도 이렇게 썼고, 틱톡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에도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감정ㆍ정신적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 시절 한 여학생과 서로 좋아했지만, 장애 탓에 그 사랑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그때 그 여학생에게 “당신은 춤추기를 좋아하는데, 나는 춤도 출 수 없으니”라고 말했다.
그는 2018년 5월 일간지 댈러스모닝뉴스 인터뷰에서 “다른 남학생과 춤을 춰도, 당신 생각을 한다”는 그 여학생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했다.
알렉산더는 한 틱톡 동영상에서 “외롭다. 누구를 만질 수도 없고, 손도 움직일 수 없고…가끔은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동시에 자신의 틱톡 동영상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 놀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느낌”이라며 “여러분 모두를 내가 안아볼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올해 남긴 한 동영상에서 “많은 사람이 우울증과 근심에 시달려 조언을 구하는 이메일과 편지를 보낸다”며 이렇게 조언했다. “삶은 정말 특별한 것입니다. 그냥 버티세요. 나아질 것입니다.”
알렉산더는 최근 코로나에 감염됐다가 퇴원한 뒤 건강이 악화됐다. 그의 동생 필립은 페이스북에 13일 형의 죽음을 알리면서 “이토록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은 내게도 큰 영광이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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