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놀라운 ‘AI 화가’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혼자 그렸다. 비계를 오르내리며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그리느라 4년이나 걸렸다. 후대 화가 루벤스나 렘브란트였다면 몇 달 안에 끝냈을지 모른다. 두 화가는 ‘그림은 화가가 직접 그려야 한다’는 오랜 통념을 깼다. 밑그림만 직접 그리고 완성은 조수들에게 맡겼다. 자신의 대표작 ‘스폿 페인팅’ 연작을 조수와 함께 그린 현대 영국 화가 데이미언 허스트도 “작품의 개념만 잘 전달된다면 그리는 작업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예술의 통념을 깨는 시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세기 초 마르셀 뒤샹은 세라믹 재질의 남자 소변기에 ‘샘’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했다. 작품 앞에 선 이들은 당혹스러워했지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현대미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1위로 선정했다. 미국 팝아트 화가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해 판매한 매릴린 먼로 판화는 ‘작품은 독창적이고 희소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이었다.
▶재작년 미국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 출품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란 그림이 디지털 아트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런데 작가는 화가가 아니라 게임 기획자였다. 붓을 드는 대신 생성형 AI에게 ‘이러저러하게 그리라’는 명령만 했고 그림은 AI가 그렸다. AI에 준 명령어를 ‘프롬프트’라 한다.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수백개 프롬프트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작가는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그림이 아니라 프롬프트가 독창적인 창작물’이란 이유였다.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인 휘트니 비엔날레가 20일 뉴욕에서 개막한다. 그리는 행위를 표현하는 액션페인팅의 신세계를 펼친 잭슨 폴록, TV 수상기가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백남준 등을 등장시키며 현대미술을 선도해온 이 비엔날레가 올해 주목한 것도 AI다. 한 출품작은 화가가 프롬프트를 써서 AI에게 자기 뒷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이 AI는 루벤스나 렘브란트의 조수 역할을 넘어서 창작에까지 발을 디딘 것 같다.
▶휘트니 비엔날레는 AI 시대에 ‘실제’가 갖는 의미를 탐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수 비비가 부른 ‘밤양갱’이 크게 히트하자 누군가 AI에게 아이유와 김광석 목소리를 학습시킨 뒤 두 사람 목소리로 AI가 부른 밤양갱을 유튜브에 올렸다. 조회 수가 폭발했고 노래를 들은 이들은 “대체 AI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AI가 시작한 혁명의 끝이 어디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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