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문화유랑]‘호러’는 금기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했다. 동네 재개봉관에서 부모님과 한국영화 <목없는 미녀>를 봤고, TV에서 방영하는 <전설의 고향>에 빠져들었다. ‘소년중앙’ ‘새소년’ 등 아동잡지에서 세계의 불가사의, 유령이 나오는 집 꼭지는 반복해서 읽었다. <엑소시스트> <오멘>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의 몇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서운 이야기를 지금도 좋아한다. <심야괴담회>를 즐겨 보고, 종종 유튜브의 괴담 영상을 틀어놓고 일한다. 흥행에 실패했으나 수작인 한국영화 <소름>과 <불신지옥>을 모르는 이에게 늘 추천한다. OTT에 올라오는 낯선 공포영화들도 찾아본다. 가끔 공포영화를 함께 보는 소모임에 나가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호러영화를 보고 담소한다. 그곳에 모인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공포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대부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본다고 한다. 끔찍한 걸 왜 봐? 이상한 걸 좋아하네? 성격이나 취향에 하자가 있다는 편견일까.
지난 2월22일 개봉한 <파묘>가 800만을 넘어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다. 100만을 넘길 때마다 제작사에서는 자축 사진과 멘트 등을 SNS로 공개한다. 감독과 배우 이름, 영화 관련 단어 등을 해시태그로 나열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파묘>의 장르는 미스터리와 오컬트다. 각종 매체에서도 ‘오컬트’영화 흥행에서 <파묘>가 <곡성>의 680만명을 넘어 1위가 되었다고 나온다. 어디에도 공포, 호러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마치 아비를 아비라 부를 수 없는 누구처럼, <파묘>를 차마 호러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인가 싶다.
홍보를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에서 이해한다. 한국에서 ‘호러’는 소수취향이다. 호러를 전혀 보지 못하거나 되도록 피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호러영화를 개봉할 때, 대작이라고 판단하면 ‘호러’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스릴러나 미스터리 등으로 홍보한다. 호러 장르를 기피하는 관객도 끌어들이기 위해서. <사바하>도, <곡성>도, <파묘>도 공식적으로 호러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저 미스터리라고만 할 수 없으니, 호러의 하위장르인 오컬트영화라고는 한다.
한국 호러의 흥행작 <여고괴담>과 <장화, 홍련>을 개봉할 때에는 당연히 공포영화라고 홍보했다. 다만 요즘은 순수하게 하나의 장르로만 구성된 작품이 드물고, 대부분 여러 유형의 장르가 뒤섞인 복합장르다. 호러이면서 미스터리이고 스릴러이고 또 러브스토리인 작품도 충분히 가능하다. 소재만 가지고 따질 생각도 없다. <사랑과 영혼>은 귀신이 나오지만 사랑 영화다. <곡성>과 <파묘>는 의심할 여지 없는 호러영화다. 동시에 미스터리, 스릴러이다. 혹은 드라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호러와 공포라는 단어를 피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대중의 편견을 한순간에 부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파묘>를 호러영화라고 부를 수 없어서가 아니라, 호러나 무서운 이야기가 단지 말초적인 자극뿐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아쉽다. 호러는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합리성과 잔혹함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장르다.
<파묘>의 악령이 살았던 일본은 무수한 ‘호러’의 원형이 존재하는 곳이다. 와세다대학에서 강의한 ‘호러론’의 내용을 엮은 <호러국가 일본>의 저자 다카하시 도시오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미 무너져내렸다고 말한다. ‘현실 문제를 해석하고 설명하여 해결의 방향을 제시해왔던 상식’이 의미도, 효용성도 사라진 세계인 것이다.
다카하시의 말은 지금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과 모든 나라에 적용된다. 과거의 상식과 해결책은 쓸모가 없다. 사회의 양극화, 성과 세대의 갈등, 극단적인 팬덤 정치 등등 한국 사회의 당면한 문제들은 오리무중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이 가자지구의 학살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이미 괴물이다.
해결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붕괴한 세계를 인정하고 처절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뿐이라고 다카하시 도시오는 말했다. <파묘>를 빗대 생각하자면, 과거의 묘를 파헤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거대하고 뒤틀린 질서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유난히 편견이 심했던 호러 장르의 영화를 1000만이 보고, 칭찬이건 비난이건 우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무수한 말을 쏟아내며 떠들썩해지는 것은 붕괴해가는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사건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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