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장 검토만 5개월?... '이종섭 담당' 공수처엔 수사할 사람이 없다

최동순 2024. 3. 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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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병사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중심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를 피해 외교사절로 출국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어지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실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폭우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해병대 병사 사건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관련 고발장은 지난해 8월23일 공수처에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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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고발 후 올 1월에서야 강제수사
인력 부족 속 유병호 집중 수사로 '실기'
정치권이 공백상황 의도적 방치 의혹도
주호주 대사로 부임한 이종섭(오른쪽)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 정부 관계자와 악수하고 있다. 호주 ABC방송 캡처

해병대 병사 순직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중심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를 피해 외교사절로 출국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어지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 실기'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고발 접수 후 5개월이나 기초수사만 진행하느라,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 시점을 놓쳤다는 비판이다. 다만 여야가 제각각 잇속을 챙기느라 공수처 무력화를 방치한 측면도 있어, 수사 지연의 책임을 공수처에만 묻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폭우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해병대 병사 사건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 관련 고발장은 지난해 8월23일 공수처에 접수됐다. 고발인인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을 조사하고 해병대 1사단을 방문조사하는 등 일부 참고인 조사가 이뤄지긴 했지만, 본격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은 올 1월 17일에서야 처음 진행됐다. 고발장 접수부터 첫 강제수사까지 약 5개월 걸린 셈이다.

압수수색 후 공수처는 지금까지 압수물 선별 및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큰 틀에서 사실관계를 일정 부분 확인한 뒤 의심스러운 부분을 짚기 위해 관계자를 소환하는 것이 통상의 수사 방식임을 감안할 때, 이 전 장관을 소환하기에 앞서 실무 책임자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졌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수처는 압수수색 대상자(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등)도 조사하지 않은 상태다. 결국 '윗선'인 이 전 장관을 지금 단계에서 조사하는 건 그의 입장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수사 과정에 밝은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피의자를 대사에 임명한 대통령 결정이 이상한 것은 사실이지만, 출국금지를 걸어두고도 상당기간 조사를 못 한 것도 공수처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수사 지연은 공수처의 고질적 인력 부족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공수처 수사는 주요 현안이던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에 집중돼 있었다. 지난해 9월 감사원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의 주거지 압수수색과 소환조사가 12월까지 이어졌다. 김진욱 당시 공수처장이 퇴임 전 이 사건을 처리하겠다며 상당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과 수사외압 의혹 사건 모두 수사4부(부장 이대환)에 배당돼 있었던 걸 감안하면 동시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과 같은 속도감 있는 수사를 공수처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인력이 부족한 공수처엔 공수처만의 속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 받는 전직 장관을 대사에 임명할 거라 예상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정치권이 공수처장 임명을 차일피일 미루며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를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여당 입장에선 감사원 조사와 해병대 의혹에서 현 정부를 겨누는 공수처의 수장이 빨리 자리를 잡는게 불안하고, 야당 입장에선 현 정부와 성향이 같은 공수처장이 임명돼 자신들에게 칼을 겨누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첫 회의를 했으나 7차례 회의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다가 지난달 29일 열린 8차 회의에서 마침내 최종후보 2명을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주 가까이 인선을 미루고 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여야 모두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변수를 만드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각자의 셈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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