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NOW 구독중] TV 앞에서 킥, 2034년에도 킥
10년 후 일상 담아 '뇌절 코미디' 장르 탄생
"세대불문 시청 콘텐츠 시장 '블루오션'…
스마트폰 이어 VR시대와도 웃음 선사할 것"
1인 미디어 전성시대, 숱한 채널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채널을 찾아 참 구독을 추천 드리는 유튜브 '서평' 시리즈 '희대의 NOW 구독중'
'희극(喜劇; Comedy)'은 기원전 고대 아테네에서 격년으로 열린 디오니소스 축제의 메인 공연인 연극 경연 중 한 갈래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본인의 저서 시학에서 희극을 비극, 서사시, 서정시와 함께 문학의 네 장르 중 하나라고 정의했다. 당시 공연의 주축을 이루었던 비극이 너무 진지하고, 우울한 정서로 진행되다 보니 극과 극 사이에 다소 부드러운 내용과 해피엔딩을 다룬 짧은 막간극을 넣어 관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기분을 전환하기 위하여 구성한 장르가 희극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비극과 희극의 경연을 관람하면서 그리스 시민들은 정서적인 정화(katharsis)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흔히 특정 TV 프로그램명들과 함께 떠올리게 되는 이 코미디라는 장르가 2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의 주된 문학 장르란 것과 더불어 그 당시도 경연이라는 형식으로 무대 위에 올려졌다는 사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는 현시대까지 극을 통해 관람객들의 선호와 관심, 선택을 받는 일이 영원한 난제였음을 상기하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유명한 희극 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본인의 작품 The Knight(BC 424)에 등장하는 코러스를 통해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코미디 작가라며 코미디 작가의 고충을 역설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을 웃기는 희극은 창작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장르였던 것. 이 희극이 공연의 형식에서 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영화, 라디오, TV 등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접점을 확대했다. TV 전성기 시절에는 주요 채널별로 희극 배우들을 기수별로 직접 선발해 간판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스타로 성장시키는 사례가 일반적이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 1번지', '개그콘서트', '쇼비디오 자키', '웃찾사', '코미디 빅리그'까지 계보를 이어가던 이들 TV 기반 코미디 콘텐츠의 인기는 미디어이용행태가 TV에서 OTT, SNS, 1인 미디어로 중심을 옮김에 따라 함께 변화의 기로를 맞았다. 관객이 코미디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변화를 맞게 된 것은 현실이지만 2500년을 면면이 이어온 희극인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창작에 대한 열망과 능력은 고대 디오니시스 극장에서나 스마트폰속 유튜브 채널에서나 변함없이 지속 중이다.
관객과 배우가 극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라는 예술과 인간의 교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장르는 경로가 다를 뿐 우리 곁에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 시대 희극인, 창작자들을 '희대의 NOW 구독중'이 찾았다. 스케치 코미디 채널 '킥서비스'의 주인공 박진호 개그맨과 나눈 코미디에 대한 철학 이야기는 스케치처럼 짧지 않고 먼 미래까지 이어지는 장편 극 영화 이상이었음을 미리 밝힌다.
2022년 초부터 박진호, 정진하 두 명의 KBS 공채 개그맨이 중심이 되어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킥서비스'의 기획 회의실 겸 사무실은 말 그대로 단출했다. 눈에 띄는 가구라고는 작은 냉장고를 빼곤 의자와 회의 테이블이 다였다. 이들의 콘텐츠가 어떻게 탄생하고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모습이었다. 촬영 때 외에는 머리를 맞대고 지속하는 아이디어 회의가 이들의 일상이자 창작의 원천인 것. 큰 키에 연신 미소를 머금은 웃는 상이 인상적이었던 박진호 개그맨에게 콘텐츠 기획을 위해 이 테이블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냐고 물었다. 그는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라 통상 하루 10시간, 혹은 밤샘을 하며 일주일 5일 회의만 할 때도 많다고 한다. 가끔 소품 준비 등에 시간 소요가 있기도 하지만순위는 무조건 아이디어 회의가 우선이라고 한다. 필자가 만나본 다수의 인플루언서들 또한 '킥서비스' 채널의 주인장들처럼 기획이라는 순수 창작의 과정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음을 새삼 상기했다.
개그콘서트 첫 파일럿 방송이 방영되었던 1999년,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들 TV키즈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장기자랑에서 박수 좀 받아 본 경험이 있다면 미래 꿈의 후보에 과학자, 대통령이 아닌 개그맨이라는 새 직군을 인식시켰다. 그러나 꿈은 꿈이었고 심리상담사를 목표로 관련 전공을 선택했던 그에게 군 입대를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청했던 개그맨 공채 시험은 최종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 군 생활 내내 이후의 선택지에 대한 방향을 흔들었다. 제대 후에 일명 '망생(개그맨 지망생)'으로 대학로 소극장의 극단 생활을 시작한 배경이었다. 다소 늦은 입문인 셈이었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라 즐기며 임했다고 한다. 다만, 나이는 분명 이슈의 하나였다. 웃기는 일이 좋아서 '망생'을 자처한 이들이었지만 당시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얻는 방법은 단 하나, 방송사 공채뿐이었다. 나이 제한이 없다곤 했지만 30대가 넘어가면 공채 벽을 넘기가 어렵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극단에서 개그 잘 한다고 정평이 있는 선배들이 20대 청춘을 다 바치고도 30대 초입에서 지망을 포기했던 사례 또한 많았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2016년 KBS 공채 31기로 개그맨이라는 공식적인 직군에 들어선다. '킥서비스'의 콤비 정진하도 2018년 공채 32기로 데뷔한다. 점차 지상파의 시청률이 예전 같지 않다는 분위기를 감지하면서도 매주 촬영에 임했던 이들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인지도를 쌓기도 전인 2020년 개그콘서트는 시즌 1을 종영한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얻는 기회인데 청천벽력이 아니었을지 당시 심정을 물었다. 그는 태풍을 예로 들었다. 밖에서는 태풍이지만 태풍의 핵에 있는 이들은 오히려 둔감하다고. 그저 매주 녹화를 준비하고, 촬영하고 또 다음 주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바빠서 막상 종영이 된 뒤로도 크게 실감을 못하고 동료들과 매주 모여 아이디어 회의하듯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오히려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배려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직 현실 인식은 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개콘이 종영한 뒤 2021년 11월 예능 서바이벌 형식으로 새 개그프로그램인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에서 신인팀으로 등장한다. 신인이 아닌 당당한 공채 출신임에도 중고 신인의 타이틀을 달고 참가했지만 그들은 경연에서 탈락한다. 탈락 발표에 2년 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터졌을까? 무대 뒤에서 대성통곡하는 박진호는 카메라에 잡힌다. 그가 개콘 출연 시절보다 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시점이 이때라고 하니 아이러니다.
한바탕 쏟아낸 이후 현실을 각성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유튜브다. 개콘 편성이 없던 시절 그들뿐 아니라 개그맨들 다수가 이미 기본적인 촬영과 편집을 배워 두었다고 한다. 기획력도 있고 1인 미디어 운영을 위한 기본기는 갖췄으니 도전만 남은 셈인데 실상 이미 개그맨 선후배, 동료들이 당시에 다양하게 채널을 만들어 유튜브 생태계로 들어오거나 자리를 잡은 상태라 경쟁력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특히 '연애'를 소재로 한 숏폼 코미디 채널들이 MZ 세대들의 공감을 받으며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때라 후발주자인 그들 입장에서는 다른 공략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트렌드라고 해도 박진호, 정진하라는 캐릭터가 공감의 포인트를 '연애'로 잡는 건 무리고 다른 공략 점을 노렸다고 한다. 이때 떠올린 것이 개콘 종영 시절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오갔던 아이디어를 소재로한 현재 '킥서비스'의 대표 콘텐츠인 '10년 후' 시리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 선배를 만나 함께 MT나 학교생활을 해보지 못한 후배들은 후에 학교에 복귀하더라도 공백기만큼 선배들의 문화 코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설정이었다. 예를 들어 후에 MT를 갔더니 선배들은 아는 술 게임을 후배들은 전혀 동참하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다. 이러한 기획 방향은 비단 코로나가 아닌 현시대의 여러 사회 문제를 '만약에~'라는 설정으로 옮겨보면서 10년 후 미래라는 새로운 스케치 코미디 장르를 만들게 한다. 과장에 과장, 반복에 반복을 더한 이런 설정을 1절에 그치지 않고 2절, 3절 계속하는 모습을 빗대어 MZ세대들이 '뇌절'이라 부르고 "뇌절하지마(=적당히 해)"와 같은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이들의 콘텐츠는 이른바 '뇌절 코미디'라는 신장르로 등극하며 인기를 구가한다. 물론 채널 초기부터 이들의 콘텐츠가 MZ들의 눈에 들었던 건 아니다. 오랜 회의를 통해 어렵게 만들어낸 초기 영상들은 사실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틱톡, 인스타그램 릴스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다소 늦게 진가가 알려진다. 촬영과 편집을 배웠다곤 하지만 채널 초기엔 연기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데 서툴렀다고 한다. 심지어 초반에는 마이크 사용법에 어두워 별도 마이크 없이 카메라 마이크에 녹음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카메라 가까이 앵글을 잡고 대사를 크게 하는 방식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스케치 코미디는 대략 1편에 100만 원 이상 소요되는 유튜브에서는 꽤 제작비가 수반되는 장르라고 한다. 덕분에 코미디뿐 아니라 사업자로서 비즈니스 역량을 배우며 성장하게 된 것 또한 유튜브로의 진출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선후배이자 동료, 막역한 형, 동생 사이지만 수익 배분은 확실하게 하는 것이 롱런의 비법임을 먼저 채널을 개설한 선배들로부터 전해 들었고 실천 중이다. 둘 이외 출연에 함께하는 개그맨 동료들과는 일종의 출연 품앗이를 하며 상부상조하는 것이 룰이라고 한다.
TV가 미디어의 중심이던 시대에 데뷔 했지만 그 흐름의 변화와 굴곡을 몸으로 경험한 독특한 경력의 그에게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대답은 담담했다. 시청자들의 기호가 바뀐 것일 뿐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TV 황금시대에는 전문가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즐기는 방식으로 코미디를 즐겼다면 스마트폰, 1인 미디어, SNS가 대중화된 현재는 단순 시청이 아니라 소통하면서 즐기는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으로 변화된 것이란 것. 그래서 매체 자체의 특성에 맞추어 기획한 콘텐츠들은 수명이 짧은 것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즉, 함께 시청하는 TV와 달리 개인 시청 성향이 강한 스마트폰이라고 해서 너무 자극적인 소재나 톤을 구사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콘텐츠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안방에서 함께 봐도 재미있는 세대 공감의 순한 맛이 인기의 비결이 아닌가 한다. 그럼에도 매 순간 변화하는 갈대 같은 시청자들의 기호가 또 영원할 것음 아님을 알고 있다고 했다. 숏폼 스케치 코미디가 현재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이후를 그들은 또 준비할 것이라 전했다. 미디어가 발전을 거듭해서 애플의 비전프로처럼 VR, AR 기기가 주요 시청 기기가 되어도 온몸으로 웃길 준비가 되어 있다 한다. 천상 희극인인 이들이 회의실 탁자에서 또 머리를 맞댈 미래를 생각하니 미소가 스친다.
희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속에는 음악, 댄스, 개인적인 풍자, 걸죽한 말장난, 당대 아테네인의 가정생활, 정치풍자 등이 총망라된 다양한 스타일들이 담겨있다. 작품제목은 44편이 알려져 있으나,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고 있는 것은 11편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싸움, 교육에 대한 논란, 페르시아세력과 부에 대한 양가적 감정,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새로운 의식,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중산층의 부상 등 당시의 모든 문제와 갈등들을 작품에서 반영하고 있다. 심지어 그의 작품 '구름'에 등장한 조롱의 대상에는 소크라테스도 있었다. 2500 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 희극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무대는 바뀔지 몰라도 이 희극을 만들고 연기하는 사람과 또 기꺼이 이를 통해 웃을 수 있는 인류라는 종족이 지속하는 한 말이다. 현 시대상을 독특한 시각으로 비틀어 현재, 그리고 미래, 시청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21세기 희극의 킥서비스 채널이 보여주는 코미디가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다. 박진호 개그맨과 지면에서 못 담은 이야기는 곧 공개될 '희대의 NOW 구독중' 유튜브에서 살펴보시기 바라며 현 시대 코미디에 대한 고찰과 만남은 한 줄 서평으로 대신한다. "미디어는 변해도 '즐거움' 전하는 역할은 영원할 것"
이희대 광운대 OTT미디어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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